대통령에게 취업 제안 받은 썰

by 박모카

여성 성장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단톡방에 올라온 소식이었는데,
그 날 따라 우연히 카톡방을 유심히 읽었던 터였다.

그 프로그램은 유럽에서 6주간 교육을 듣는 과정이었다.
매력적인 것은, 항공료, 호텔, 식비, 교육비 전액 지원해줬다.
이것도 모자라 매일 용돈까지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마침 석사를 끝마치고, 할 일이 없던 내 입장에서는 이 프로그램에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디서 주최하는지, 누가 주최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얼른 지원서를 냈다.
잘 안 알려진 공모였어서그런지, 의외로 쉽게 프로그램에 합격했고, 오스트리아에 초청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뭔가를 배운다는 것 보다는 해외에서 무료로 생활하고 교육도 받는다는 것에 들뜬 채로 출국하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프로그램 개요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 프로그램에는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님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 기수가 첫 기수인 신생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오리엔테이션 내용이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좋은 기회를 잡은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고, 많은 것을 배워가길 바랍니다'와 같은 일반적인 축하 멘트를 들었던 것 같다.
점심 이후에는 시티 투어를 간략히 하고 저녁에는 만찬 파티가 있었다. 어떤 할아버지께서 나타나셨는데 모두가 예우를 차렸다. 외부인이었던 내가 봤을 때에도 모두가 정중한 태도를 보여서 신기했다.
이 프로그램에 돈 많은 어르신들이 기부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 분도 돈 많은 노신사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풀리지 않던 의문이 있었다. '왜 이 분에게는 특별하게 예우를 갖추지?'

만찬을 시작하기 전, 프로그램 참가자가 후원자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시간이 있었다. 프로그램 담당자가 임의적으로 배정해놓은 시간이었다. 나 포함 총 18명의 참가자가 있었지만 아무도 감사의 말을 전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막 도착해서 어벙벙한 우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처사였다.
다급해진 담당자는 나에게 우리를 대표해서 나서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 역시 꽤 부담스러웠다. ‘감사합니다’ 이 짧은 말을 5분짜리 문장으로 표현할 자신은 없었다. 하지만 나 말고는 대안이 없어 보였기에 알겠다고 했다. 나에게는 10분 정도 생각할 시간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할 말을 정리하고, 바로 이전에 말을 했던 사람의 표현을 기억했다. 일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던 말을 경청했다는 것을 티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0분 후, 내가 청중 앞에서 후원자들에게 전했던 감사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오늘 나는 우리 그룹을 대신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예쁜 도시인 비엔나에 초대해주셔서 영광스럽습니다.
큰 3개 단체 외에도 여러 작은 도움이 있음을 알고 이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우리 참가자들은 모니카(이전의 발언자)가 말한
‘하나의 목소리’가 되려고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다음 기수도 계속 결실을 맺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랍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꽤 많은 생각이 들어간 감사의 말이었다. 첫 번째로, 우리 그룹을 ‘대표하여’ 보다는 ‘대신하여’ 말을 전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싶었다. 또, 국제허브 비엔나의 지리적 명소에 오게 된 것도 인지하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만찬에 참가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들은 꽤 다양한 배경 및 단체에서 온 것 같았다. 내 발언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달해주고 싶었기에 작은 단체의 후원도 감사하게 여긴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을 알고 있는 부자들이 개인적으로 본 프로그램에 후원한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도 큰 결실을 맺기 바란다고 말을 마치며 프로그램 담당자가 원하는 바를 대신 소망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별것이 아닌 그냥 감사의 말이지만 나에게는 뜻이 담긴 감사의 말이었다. 쓸데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이때 쓰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이 끝나자마자 아까 봤던 할아버지께서 불도저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아마 감사의 말에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았다. 그 할아버지는 나에게 외국에 살았던 경험을 물었다.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물었고 나는 백수라고 대답했다. 그는 나에게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데 관심이 있는지 물었다.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어떤 일을 하고 싶냐고 물어보셔서 살짝 당황했다. 사실 국제기구에서 일할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내가 소원하는 일은 없었다. 나는 여행하면서 사람들에게 ‘직장인의 삶은 싫어요’를 외치고 다녔던 사람이었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며, 난감해하는 와중에 누군가가 할아버지를 낚아채갔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어딘가로 훌쩍 떠났다. 예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어떤 회사의 회장님이 일하고 싶으면 연락을 달라고 했었지만 그는 결국 나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희망을 보았지만 할아버지는 나비처럼 포로롱 날아갔다. 내가 일을 하는데 관심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말을 해야 했던 것일까. 가짜 열정을 꾸며 보여주면 그것이 티가 날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할아버지가 돈이 많은 어느 회사의 사장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2016년까지 오스트리아에서 대통령 직에 10년간 계셨던 피셔 전 대통령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대통령이었던 시절 나라에서 대통령에게 당연히 주는 집과 차를 거절했던 사실을 알려줬다. 그가 얼마나 친서민적인지에 대한 일화는 끝이 없었다. 나에게 불도저처럼 다가와 나비처럼 없어진 그분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과 같이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 그를 대신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했다. 그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과 같이 교육을 진행하는 이 단체를 만든 사람이라고 했다.

그 후에도 피셔 전 대통령께서는 종종 우리 수업에 참관하셨고,
생각보다 그를 마주칠 일이 많아서 놀랐다.

나는 프로그램이 끝난 후, 귀국해서 에세이를 출간했다.
책에는 여기까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후, 나는 이 때를 회상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가 예상치 못하게 날씨가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였다.
날씨가 그렇게 좋다는 아프리카에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나이로비에 위치한 UN에서 일하면 된다는 엉뚱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UN에 입사하는 법에 대해 찾아보았다.
UN은 국제기구 답게, 전세계에서 지원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실상 서류통과도 힘들다고 한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내 지원 서류가 검토 되는 것 조차 운에 맡겨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3년 전 만났던 인맥을 통해 운을 만들어보기로 결심했다.
나를 기억하냐는 문구와 함께, 이제는 준비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적었다.

하지만 내가 프로그램에 참가할 당시, 알고 지내던 프로그램 매니저는 더이상 그 곳에 있지 않았다.
내 메일을 전달해 줄 사람이 없었다.
희망을 품고 단체의 대표이메일로 메일을 보냈지만
기다리던 답변은 오지 않았다.
3년 전의 내가 취업을 원하던 상황이었으면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있었을까 상상을 하곤 한다.



대통령한테 취업 제한 받은 썰 비하인드


Q. 프로그램 이름이 뭐야?
A. 반기문재단에서 하는건데, 나도 궁금해져서 찾아보니까 이제는 더이상 안하는 것 같더라구.. 요즘은 아프리카쪽 밀어주는듯? 그래도 재단 홈페이지 구독하구 계속 팔로업 받아봐!

쿠키 1. 나는 프로그램 자체보다도, 인턴으로 왔던 애가 부럽더라고. ㅎㅎ 나는 6주만 하고 가지만, 얘는 높은 사람들을 오래볼 수 있으니까! 인턴으로 왔던 동생은 학부생이었고, 학교에서 광고뜬거 보고 신청했다고 했었어

쿠키 2. 나 말고 다른 참가자들은 스펙이 엄청 좋았어. 누구는 지역사회에서 밑에서부터 으쌰으쌰해서 물결을 일으켰던 애, 누구는 포브스에 소개됐던애... 나는 그냥 학교빨+전공빨로 됐던 것 같아.

쿠키 3. 대통령썰은 내가 냈던 <일기도둑>에 썼었는데, 그 이후는 창피해서 안 썻거든... 사실은 이런 일이 있었닿

프로그램 수료 할 즈음, 라이브로(방송on) 각자 연구(?)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어. 5분 정도씩 주어졌지
나도 발표를 하는데 인트로만 했는데 벌써 시간이 다됐다는거야
어리둥절했지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갔지..?????
조금 더 차분히 생각해보니 내가 발표때 말실수 했던 것 가틈.. 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나는 원자력을 안전하게 쓰자는 입장이거든! 그래서 안전을 강조하려다보니 뭔가 '정부가 우리를 속이고 있어'라는 말이 튀어나왔어
나도 그때 왜그랬는지 모르겠는데 100%내 잘못이었어
아니 대통령에 유엔총장에 완전 정치판인 곳에서 저딴 말을.. 워딩도 쎄게 말함
그 이후로부터 세상 따뜻하게 나만 챙겨주던 분은 얼굴도 못보게 되었고..
얘는 적군이었다!!!! 비상비상!!!!!가 되니까 정말 빠르고 차갑게 식더라고 ㅠ큐ㅠㅠㅠㅠㅠㅠ
그렇게 허무하게 나는 마켓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여러분에게는 해피엔딩일지도?


물론 내 착각일 수 있어. 헤드가 바빴다던지 아팠다던지 컨디션이 안좋았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언제나 입소심 행동조심, 한번에 나락가는구나가 느껴졌던 때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억팔이 세이클럽 타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