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가 둘 전업으로 키우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쁜 줄 알았다. 남편이랑 같이 돌보지만 아기랑 24시간 붙어있는다는게 정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친구를 만났다. 결혼도 안했고 혼자서 자유로운 몸인데도 불구하고 매일 전쟁처럼 바쁘게 산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세상에서 바쁘게 산다는 것을 그제서야 느꼈다.
가만히 있어도 할 일이 생기는 요즘 세상이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접하고 연결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다만 돈을 번다거나 생산적인 일로 이어지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굉장히 어렵다.
이번에 캐나다 집을 비우며, 이후 세입자에게 주려고 했던 그릇을 당근에 내놓았다. 편하게 일괄 양도하려고 했지만, 주위의 누군가가 그릇은 팔만하지 않냐고, 일괄 양도 물품에 포함 시키지 않아도 되는거 아니냐고 했던 것이 시작점이었다.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아서 당근에 올렸다. 빨리 팔기 위해 싸게 내놓으니, 찔러보기식 연락이 많이 왔다. 언제 또 누구에게 연락이 올 지 몰라서 쉬지 못하고 핸드폰을 계속 봤다. 알람 소리를 어떻게 켜는 지 몰랐기 때문인데, 시간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얼른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오겠다는 사람을 찾았으나 내가 이미 공항에 간 이후 시간대에 올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 그릇 세트를 만원에 팔기 위해 스케줄을 조정하고, 머리를 쓰는 것이 꽤 소진적으로 느껴졌다. 전쟁같던 하루의 단비같은 쉬는 시간에 이 짓을 하고 있었다. 고요한 상태로 있을껄 후회가 됐다. 나는 왜 본인을 힘들게 만드는 걸까. 누군가가 '이걸 하세요!'라고 말하면, 왜 그걸 꼭 해야할까.
결론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머리를 쓰도록 유도한 지인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억울한 생각이 드니, 이전에 알게 모르게 쌓였던 부분이 떠올랐다. 아무리 '나는 그걸 원하지 않아.' '나 좀 내버려둬'라고 말해도, 그 때는 알았다고 하지만 1시간 후에는 까먹어버리며 '이걸 해!'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내가 할 때까지 계속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느껴졌다. 그 지인이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조언들이지만, 긴 세월 그녀와 함께하며 그 조언으로 인해 피로가 꽤 적립되었다.
웃긴 것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 행동을 똑같이 하게 된다. 나도 남편에게 '이게 좋은거지'라고 말하며, 특정 행동을 하길 강요하고 있었다. 크게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안써도, 그렇게까지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도록 계속 몰아부치는 것이다. 숲보다 나무를 보는 것이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태풍을 몰아오는 것처럼, 때로는 의도치 않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들이 큰 일이 되곤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보챔이었다. 세상을 보는 상반되는 두 관점을 보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싶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삶은 자전거를 타고 밸런스를 맞춰가는 것과 같다'고 말했나보다.
나는 나에게 끊임없이 조언을 해주는 지인을 끊어내지 못한다. 그렇다고 지인의 성격이 바뀌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나는 괴로움을 겪을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상황을 보는 시각을 바꾸는 것 밖에는 없다. 굉장히 수동적이고 의미없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생각을 바꾸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하지만 이 방법은 나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거라는 생각이다. 무언가를 싫어하는 것은, 내가 가진 컴플렉스로부터 기인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의 약점을 극복한다면, 다른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그릇이 생긴다.
지인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이걸 해!'라고 하는 것을 버겁게 느끼지 않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바로, 그 말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아, 이 사람은 이 방법으로 삶을 사는구나'라고 하는 것이다. 사람을 객관적으로, 대상화해서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는 것은 감정적으로 대꾸하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