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없어질 것 같은 직업, 통역사

by 박모카

노트북을 새로 구매했다. 요즘은 AI가 탑재되어 나온다길래 '오..'하고 신기해하기만했다. 설명을 잘 읽어보니, 라이브 캡션이라는 실시간 통역 서비스도 내장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영어만 지원을 한다고 적혀있어서 그닥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콜에 들어가며, 이 기능을 한 번 써보기로 했다.


라이브 캡션에서 영어를 지원한다는 말이, 어느 언어를 인풋으로 넣어도 그 언어를 영어로 적어준다는 의미인 것은 사용하면서부터 알았다. 한국어, 영어 오디오가 들리면 컴퓨터에서 자막으로 영어가 출력됐다. 정확도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상대측에서 일상적인 속도보다 조금 빨리 말을 하면 컴퓨터가 받아적기 힘들어했다. 특히 인도나 필리핀 억양이 많이 섞이면 컴퓨터가 이를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은 5% 정도밖에 안되었다.


"열이 나요!", "열이 나요!" 컴퓨터가 영어 자막을 출력했다. 내 귀에 들리는 것은 중국어였다.

실수로 중국어 통역에 들어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중국어가 실시간으로 통역이 되는 것을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잘은 모르지만.. 상대측에서 열이 난다고 하는 것 같아요. 저는 한국어 통역이라서 중국어 구사자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내 입에서 뱉어지고 있는 말이 나도 믿기지 않았다. 원래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뭔가 알아듣는 척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초능력자가 된 것 같아서 신기했다.


아직 이 라이브캡션이 상용되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말을 하면, 영어로 출력되는 자막의 정확도가 40% 정도로 아주 낮게 체감되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듣지 못하는 아주 작은 소리나 지지직거려서 잘 안들렸던 오디오를 컴퓨터는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보조용으로 라이브캡션을 키는 버릇이 생겼다. 라이브캡션은 내가 익숙한 대사를 하는 상황에는 유용하게 쓰였다. 예를 들어, 미국 의료보험회사에서는 고객을 대상으로 1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차원에서 의료진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에게 스팸처럼 전화를 돌려서 '무료 검진을 받으시겠어요?'라고 빈번하게 묻는다. 상대측에서는 당연히 의심을 하며 '그런거 안하는데요?'라고 말을 한다. 그래서 보험회사에서는 상대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이 건강검진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프롬프트를 죽 읽어준다. 통역사 입장에서는 고역이다. 이런 것은 통역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한국어로 읽은 스크립트를 한국어도 되풀이하라고 해도,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럴 때 라이브캡션이 유용하게 쓰였다. 컴퓨터가 들은 내용을 자막으로 써주니, 내가 미처 받아적지 못했던 내용은 컴퓨터 자막으로 보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익숙한 내용이기에 컴퓨터가 잘못 들은 부분은 어디서 실수했는지 보면 알 수 있다.


라이브캡션이 아직은 오류가 많지만, 통역이 어떻게든 되고 있는 모습을 보니 통역사라는 직업은 곧 없어지겠구나 싶었다. 내가 소속되어있는 곳은 일을 잘하고, 오래 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시급이 올라가기 때문에 이 일은 오래하겠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내가 떠나기 전에 이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라이브캡션 기능을 좀 더 오래 써보고 나니 생각에 변화가 있기는 했다. 문화적, 비언어적인 소통이 필요한 경우 AI가 이를 완벽히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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