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 통역을 하면서, 분만실 콜을 총 세 번 받아보았다.
한 번은 실수로 노트북을 닫아버리면서 콜이 저절로 끊겼었고, 나머지 두 번은 분만을 하는 소리를 들으며 그 시간 내내 나와 산모가 함께 했다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첫째를 자연분만으로 낳았을 때에는 불만이 많았다. 의사 선생님이 없을 때 도와주시는 분과 힘을 주다가 아기가 거의 나와버렸기 때문이다. 아기 머리가 얼마나 걸려있는지도 모른채, 도와주시는 분은 의사 선생님을 불러온다며 우리를 그대로 놔두고 떠나버렸다. 그녀가 없는 몇 분이 지옥같았다. 내 아기 머리가 부셔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었다. 시간은 왜 이렇게 더디게 가는지, 눈 앞에 놓인 상황이 어이없기도 하고 믿기지 않았다.
외국 분만실은 달랐다. 첫 번째 콜은 4시간 진행되었다. 신기하게도, 그 4시간 내내 의사 선생님이 80%의 시간 상주해 계셨다. 일이 있어서 아주 잠시 나갔다 온 것 말고는 산모와 함께 하셨다. 바쁜 산부인과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당해 주다니.. 신기했고 부러웠다. 그곳에는 의사 선생님 뿐만이 아니라, 응원해주시는 분(?)도 함께 있었다. 산모 숨 쉬는 것 같이 조절해주시는 분의 역할을 하셨다. 처음 한 시간 정도는 숨 쉬는 연습을 했고, 나머지 시간은 열렬히 응원을 하셨다. 그분들은 "YES! YOU CAN DO IT" "ALMOST THERE!" "PUSH!!"라며 본인들이 더 격렬하게, 스포츠 경기를 보는듯한 긴장감으로 젖먹던 힘을 짜주었다. 치어리더 영화에서나 볼법한 하이톤을 들으니 손에 반짝이 제기를 들고 흔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얼마나 감명 깊었던지, 얼마나 오래 들었는지 그 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린다. 나도 산부인과 관련 용어를 찾아보면서 같이 아기의 탄생에 최선을 다해 준비했고 축하했다. 산부인과 의사가 의심되는 남편께서 모든 단어를 다 알고 계셨기에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었긴 했다. 그도 의사 선생님과 응원단장 못지않게 같이 산모와 호흡하고 힘들어하며 아기를 맞았다.
콜이 끝나고, 새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은 잠시, 그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많이 청구될 통역비가 걱정되었다. 통역회사에서 1시간 통역하면 몇 십만원씩 청구될텐데.. 4시간이나 했으니 이를 어쩌나 싶은 마음이었다. 해외는 병원비도 비싼데.. 그들은 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쓸데없는 곳에 헛 돈을 쓴건 아닌가 싶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경우는 의료 통역을 제공해주는 것이 의무적이었다. 언어가 서툰 사람들을 위한 알 권리를 지켜주는 차원이었다. 그래도 뭔가 찝찝했다. 대기하는 시간이 긴 콜로 노동자들의 돈만 뽑아먹는 것이 아닌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혼자 끙끙 싸매다가, 언젠가 통역하면서 살짝 끼어들 틈이 보일 때가 있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얼른 병원 매니저에게 '환자가 통역비를 내야하나요?'하고 물었더랬다. 병원의 그녀는 '안 내도 돼요'라고 친절히 알려주셨다. 병원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다른 병원도 디폴트는 안 내는 쪽인 것 같았다.
두 번째 콜에서 "산부인과인데요.. 분만실입니다."라는 소리를 들었을때 내 마음은 콩닥콩닥 설레었다. 왜냐면 긴 시간 나도 대기를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내 할 일 하면서 쉽게(?)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도 아기를 해외에서 낳기도 했고, 용어는 왠만히 익숙한 느낌이었기에 여유가 조금 더 생겼다. 이번에도 역시 산모에게 숨쉬는 것을 알려주면서 통역 대기조가 시작되었다. 저번에 '생각보다 오래걸렸네요 ^^ 4시간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보아, 이번에는 두시간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번 의사 선생님과 응원단잠을 저번보다 조금 더 침착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인내력있게 "even more" "big push" "deep breath" "everything down"을 읖조리면서 산모를 응원했다. 의사 선생님이 2분 정도 잠시 방을 비웠던 것 빼고는 그 긴 시간을 산모와 함께 했다. 이번에도 남편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었고 나를 별로 필요로 하지 않았다. 총 두 시간 정도라고 생각했던 콜은 시간이 흘러 흘러 힘 주는 시간만 두 시간 일 분이 되고. 외국은 산모를 빨리 분만실에 넣는 것일까? 내가 들어가는 콜이 우연찮게도 오래 대기하는 방에 배정이 된 것일까? 이분 역시 오랜시간 힘주기를 했는데도 아기가 내려오지 않았다. 응원단장이 "힘주기를 오래 했는데요.. 힘을 너무 많이 뺐어요. 조금 더 해보고 안 되면 시술 등 다른 방법을 동원하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시간이 지나도 아기가 내려올 기미가 안보이고 산모도 포기를 하지 않자, 새로운 응원단장이 등장했다. 그들은 지치면 새로운 사람으로 수혈을 하여 응원을 끊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내 첫째가 나왔으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이 오갔다. 캐나다에서는 제왕절개를 하는 수술의와, 아기를 받아주는 전문의가 따로 있다고 했다. 이전에 점검받으러 갔을 때 아기를 받아주는 의사 선생님께서 점심도 못 드시고 일을 하는 것을 보며 우리나라 산부인과 전문의가 생각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던 적이 있다. 걱정을 내비치니 선생님께서는 일주일에 두 번만 병원에 출근한다고 하셨다. 아! 하는 마음에 그정도면.. 할만 할수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서 그렇게 환자들이랑 여유있게 대화를 하시는구나! 싶었다. 산부인과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외국에서도 특히 병원중에서 제일 친절하다. 나보다 더 라포를 형성하고 싶어하시는 의사 선생님을 보며 "왜 이렇게 친절하지..?" "왜 이렇게 시간을 끌지..?"라는 착각도 했던 적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여유가 들어올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차이가 어디서부터 난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모든 산부인과 선생님들이 밥 잘 챙겨드실 수 있는 환경에서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참고로 두 번째 콜의 산모는 어떻게 되었냐고? 너무 오래 힘을 주면 아기만 힘들고 엄마 힘이 빠져서 아기를 낳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분만을 준비하며, 병원에서 '남편 비자에 필요한 문서가 있다면 우리가 최대한으로 도와드릴게요. 편지 필요하면 써드릴게요.'라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나는 남편 비자에 대해 언급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도움이 필요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재정적 도움이 필요한지, 다른 서포트가 필요한지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산부인과는 나한테만 친절한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오는 통역 전화에서도 커뮤니티 도움이 필요한 것이 있는지, 새로 온 사람이니 필요한 것이 많을 것 아니냐며 조목조목 도움을 줄 수 있는 요소를 확인해갔다. 산부인과에는 사회복지사도 상주했다. 우리가 이민자여서 그런건지 알 길은 없지만 도움이 필요할 때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그들을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