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자르러 갔는데 예상치 못하게 들은 질문,
"일하시나요?"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배민같은거 해요. ㅎㅎ 콜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받아서 하는거에요~ 접속하고 싶은 때 접속해서 하는거라서 자유로워요." 솔직히 배민 알바를 해본적은 없었지만 배달기사는 이런걸꺼야하고 상상했던 모습을 말해본다.
"아~ 프리랜서 같은거네요?" 쉽게 얘기하면 그게 맞다. 다만 프로젝트를 끝내야하는 책임감은 없는 편이라고나 할까. 콜에 들어갔을 때 그 콜을 끝내는 것이 최대 책임이라고 하면 책임이다. 아프면 일을 안해도 되고 돈도 안나온다.
그러다가 이어진 우리의 대화였다.
"통역하면 안 좋은 것은 없어요?"
안 좋은 것이라.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다. 복지가 없다는 것, 주휴수당이 없다는 것은 크게 작용하긴 하지만 자유도 같이 얻었으니..
미용사 입장에서 어떤 고초가 있을까 생각하며 무심코 나온 한마디,
"진상을 만나면 '미안해~ 나는 통역 도와줄 수 없어. 다른 분에게 부탁해봐'라고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좋아요. 진상은 상대하지 않아도 돼요." 사실 이 말은 참 무책임한 말이었다. 내가 받는 전화의 한국인은 40% 비율로 60대 이상 고령자가 많은데, 나이가 정말 많아서 귀가 어두우신 분들은 사실 통역하는데 애를 먹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좋지~ 천천히 하지~ 마인드면 답답함이 조금 가라앉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 아주 천천히 얘기를 해도 잘 못알아 들으시면 통역사의 재량으로 설명도 덧붙이곤 했다. 나중에 이것이 내 통역 평가를 깎는 요인이 된 것을 보고 마음이 상했던 기억이 있다.
'기억하세요. 통역사는 타인의 메아리입니다. 다른 단어를 붙이거나 수정하지 마세요.'
직역하면 상대편에서 꽤 높은 확률로 알아듣지 못한다. 쿨하신 분들은 그냥 예~예~ 하며 넘어가기도 한다.
제일 황당했던 것은 내가 'your left eye'를 'your left thigh'로 잘못 알아듣곤,
'왼쪽 허벅지가 안좋으시네요'라고 했는데도 네~ 라고 하며 넘어가신 할아버지다. 안과였는데..
잠시 다른 나라로 가있던 내 정신을 붙잡은 것은 미용실의 그녀였다.
"부러워요. 나도 미용하지 말고 통역사나 할껄. ㅎㅎ"
"00맘 알아요? 인플루언서인데, 그 분도 통역사거든요. 아들 영어 교육으로 유명해져서, 인스타로 공구 많이해서 돈 많이 버시는 것 같더라구요~"
오? 솔깃. 솔깃.
만 2살 딸을 캐나다에 데리고 가서 6개월간 살았던 내 경험으로는,
엄마가 통역사이던, 영어만 쓰는 환경이던 간에 아이의 영어 실력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딸은 내가 영어를 하면 질색을 하며 싫어한다. 그리고 외국인이 말을 걸면 눈치에 맞춰 '끄덕' '끄덕' '도리도리'를 하며 알아듣는 척을 한다. 실제로 알아들었냐? 하면 나도 모르겠다.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코끼리가 냉장고 속으로 들어갔어?"라고 하면 끄덕끄덕거리는, 속을 알 수 없는 나이다. 하여튼 딸의 입에서 나오는 영어는 '하이' '투'(누가 나이를 물으면 대답용) '아!유~'(땡큐) 정도였고, 6개월 후 귀국하고 나서야 '굿~'을 말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는 잘 구사한다는 것을 누가봐도 알 수 있기 때문에 딸의 영어실력이 많이 늘지는 않았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통역사라는 타이틀로 아들 영어 교육을 잘했음을 홍보한 그녀가 꽤 똑똑하다는 것을 느꼈다. (딸이 어렸을 때 영어로 대화하고 그래도 하나도 모르던 우리 딸 ^^! 캐나다에 가서 처음으로 영어라는 것을 들어본 눈치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도 뭔가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마음이 두근두근거렸다. 하지만 아이들의 얼굴이나 신변을 드러내지 않고는 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접었다. 통역 업무를 하며 앞으로 몸 값이 드라마틱하게 뛸 것 같지는 않지만 일단 우리 집을 지키는 수단으로 통역을 지속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