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통역업무를 하게 되면서는 걱정이 많았다.
"응급실 전화를 받다가 트라우마가 오면 어쩌지?"
"응급 상황에 내가 버벅거려서 걸리적거리는 존재가 되면 어쩌지?"
"경찰들이 쓰는 용어를 잘 모르는데, 어리버리하면 어쩌지?"
"법정에서 온 전화를 내가 틀리게 통역하면 어쩌지?" (실제로 성매매 관련 체포 전화라던지, 감옥에서의 전화라던지, 법정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다.)
이 걱정을 모두 없앨 수는 없었지만, 밤에 일하지 않는 것만해도 많은 부분이 해결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내가 선택했던 시간대는 피크 시간대였다. 당시에는 콜에 들어간 시간대로 정산을 받지 않고, 일하기로 미리 정한 시간대로 정산을 받던 때였다. 즉, 가장 바쁜 시기에 같은 돈을 받으며 일했던 것이다. 추후 요령이 생긴 후에는 (콜에 들어간 시간과 상관 없이 돈을 받는 경우에는) 밤 시간대에 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알았다. 콜이 안오는 중간 중간에 쉬고 있어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일은 오히려 안 일어난다고 했던가. 응급 상황이 흔한 편은 아니었다. 밤, 낮 구분 없이 응급실에서 전화가 종종 오곤 하는데, 이 때에도 피가 철철 흐르고 생명이 죽어가는 응급상황은 없었다. 초반에 긴장하던 시절. 화상 통역에 들어갔는데, 새벽 시간에 상대편의 카메라가 깜깜해서 '아.. 큰일이 있는 사건이구나'라며 긴장했던 일화가 있다. 알고보니 안과에서 시력검사를 위해 불을 다 끄고 진행하고 있었던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밤에 오는 전화는 황당하게도, 여행 에이전시가 많았다. 걱정했던 언어 장벽보다는, 인도계 상담원의 억양 장벽, 화내는 손님의 진상 장벽이 훨씬 컸다. 진상이 나타나면 웃기게도 정상인 사람과 유대감이 느껴졌다. 실시간 통역을 하는 상황이라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표정으로 '너를 이해한다'는 뉘양스를 풍기기도 어려웠지만. '고생하십니다~'와 같은 동료애가 있었다. 처음에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언젠가 정상적인 대화 이후 살짝이 들려오는 전화 너머의 속삭임을 들으며 상대도 나와 같은 마음이구나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고생이 많아요)(차근차근 하자구요)
통역계는 상상을 해보지도 않았던 분야지만, 막상 해보려고 했을 때 상상했던 것과는 꽤 다른 세계가 있었다.
내 실력이 좋지 않아서 잘리면 어쩌지? 해외 회사는 사람을 그냥 잘라버리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팽배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이것이 썩은 것인지 좋은 것인지 모르지만 어쨋던 유일하게 있던 내 동아줄이었기 때문에, 이 동아줄이 끊어지는데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나를 평가하는 사람과 통화를 하며 그 걱정은 많이 사라졌다.
"당신에 대한 컴플레인이 한 달 새 몇 개 접수되었네요~" "의사 선생님 이름을 틀리게 말씀하셨고~"와 같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셨지만, 정확하지 않은 단어를 쓰기도하네요는 굳이 언급하지 않으셨다.
"잘리는게 두려워요" 걱정을 내비치자, 컴플레인 들어왔다고 잘리지는 않는다며 나를 토닥여주셨다. 지금 하고 있는대로만 하라고 해주셔서 근본없는 불안의 호수에서 안정의 디딤돌을 찾기도 했다.
신기한 것은, 두려워 하던 것의 99.9%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매 불안이 찾아올 때마다, 이 말을 되뇌이는 습관이 생겼다. 오히려 내가 이 부분에 대해 걱정을 하는 모습을 보면, 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의 시선은 참 신기하다. 막연한 두려움 속에서는 오늘이 힘들고, 내일이 불안했다. 그 두려움이라는 녀석 덕분에 내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꺼라고 사고를 전환하니, 오히려 이것은 나를 지켜주는 아군이 되었다. 일을 계속 해보니 이 곳에서 잘리면 다른 곳에서 일하면 된다는 베짱도 생겼다. 시작은 아주 얇은 뼈대같은 새싹 하나였지만, 이제는 제법 튼튼해져 잎사귀가 하나씩 나고 있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