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의 일상

by 박모카

의료 통역은 생각보다 반복되는 단어가 비슷했다. 새로운 단어를 들을 때마다 종이에 적어놓았는데, 하나씩 쌓이니 100개쯤 된 것 같다. 숫자로 말하면 커보이지만 적어놓으면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다. 단어를 눈 앞에 붙여놓아서, 통역하며 헷갈릴때마다 보면 실수에 대한 부담감도 줄어든다. 가끔씩 알 수 없는 병명을 얘기하는 의사들이 등장한다. 그럴 때에는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고 사전을 찾아보면 되었다. 그들도 내가 모르는 단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꼭 전문가처럼 보여야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 혼자에 국한한다.


생각외의 복병은 발음에 있다. 왠만한 나라의 발음을 잘 알아듣는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정말 말이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이 잊을만하면 등장한다. 오디오 환경이 좋지 않은 통화도 스트레스 요인 중 하나다. '의료'통역이어서 문제점이 생긴다기보다는, '전화'통역이어서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았다. 비디오콜도 들어오는데, 화면을 보면 환자가 끄덕이는 것을 보며 지금이 끼어들 상황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수월해서 조금 더 편하다.


비디오콜의 장점이 또 있다. 이전에 봤던 환자를 또 만나게 되면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화면 너머의 내 얼굴에 관심이 없어서 알아볼 수 없지만,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다. 병원에 오래 있는 것이 그들에게 좋을리가 없지만, 그들을 보며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병원에 온 사람들은 기구한 사연을 가진 사람이 많다. 어떻게 되었으려나 궁금한 와중에 또 다시 얼굴을 보게 되니 반가운 것이다. '이제는 퇴원해도 됩니다.'라는 것에 기뻐서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나는 왜 그렇게 안타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병원 밖은 간호사가 없어서 위험 투성이라는 걱정이 먼저 앞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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