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여러 얼굴을 본다

by 박모카

정말 심각한 병에 걸렸다고 진단을 받은 가족이 있다. 얼마 전 아빠가 진단을 받았는데, 이번 예약엔 딸과 아내도 동행했다.

"무거운거 들거나, 혈압이 오르는 일을 하지 마세요." 의사 선생님이 말한다.

가족은 묵묵히 듣는다.

의사 선생님이 나가고 가족만 있는 시간이 왔다. 수술의를 기다리라고 한다.

수술의 선생님이 늦게 온다. 침묵을 지키던 딸이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집중력에 한계가 보인다.


"개구리 뒷다리 하고 웃어봐" 엄마가 딸한테 말한다.

"팔자 주름 방지하는거래~" 병원에 와서까지 딸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이 우리 엄마를 보는 느낌이다.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가족의 입에서 슬슬 얘깃거리가 나온다.

같은 집에 살아도 얼굴을 보기가 통 어려운 대학생 딸이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이제 화 내지 말래" 아내가 말한다.

"낄낄 아빠 이제 소리지르면 안되겠다~" 딸이 웃는다. 근엄한 상황에 진지함이 빠진 그들이다. 차가운 공간에서 따뜻한 가족애가 전화기를 통해 느껴진다. '혈압이 오르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빠의 더러운 성질과 연관이 되다니 카르마구만 카르마야' 속으로 생각한다. 큰 수술을 해야한다는 소식을 방금 들었지만 가족의 대화 주제는 변함이 없다. 우울함에 빠져있는 것보다 이런 쾌활함이 아빠에게 정신적으로 더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전화를 하다가 꺼이꺼이 우는 사람이 있다.

퇴원하고 집에 간다면 돌봐줄 사람이 있는지, 퇴원 절차를 밟을 때 집에 안전하게 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밟던 중이다. 차트에 아들이 있다고 적혀있어서, "아들이 도와줄 수 있나요?"라고 물어봤는데 "없다"고 답변이 온 것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치료사가 "아들이랑 교류가 잦은가요?"라고 물으니 대답은 눈물로 듣는다. 나이가 들어서 혼자 살며, 자기를 도울 수 있는 가족이 없다는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딸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부모도 있다. 통역사가 전화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통역도 자처한다. 딸이 바빠서 물리적으로 병원에 동행할 수 없을 때에는 화상통화로라도 꼭 참여한다. 엄마는 딸이 유능하다는 의사 선생님을 물색해서 수술을 시켜줬다고 자랑한다. 이 할머니는 자식이 있어서 참 든든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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