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이직 오퍼가 들어온 것이 계기였다. 자고 있던 내 가슴 안 불꽃이 켜졌다. '그래.. 이왕 오퍼가 왔으니, 좀 더 좋은 조건을 찾아보자!' 라는 생각으로 다른 통역회사에도 모조리 지원서를 제출했다. 몇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이제는 내가 우위에 섰다. 그들끼리 요율 경쟁을 붙였다. 내가 기존에 받던 요율보다 140% 인상된 금액이 나왔다. 땡땡땡. 내가 꿈에 그리던 연봉에 다가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게 신기했다. 며칠간은 둥둥 뜬 기분으로 지냈다. 이후에 실력 테스트가 있을거라는 안내를 받았다. 상관없었다. 나는 통역할때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계속 통역을 해왔기에 준비가 되어있었다.
첫 테스트는 다지선다형이었다. 가뿐하게 통과했다. 리크루터도 나를 빨리 입사시키고 싶었는지, 평소에 일하는시간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나에게 연락을 했다. 곧이어 두번째 테스트가 왔다. 구두면접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쳤다. 정성을 쏟았다. 1시간이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테스트를 끝내고 나오니 녹초가 되었다. 수능의 마지막 과목을 풀고 난 느낌이었다. '이제 곧 결과가 나오겠지? 일주일 후면 일을 시작하겠지? 그 동안에 조금 놀아야겠다.' 시험 이후에 흐느적거리는 마음으로 변한 것도, 수능 이후랑 똑같았다.
구두면접 결과는 일주일 이내로 나온다고 했다. 예상은 했지만 예상보다 결과가 더 빨리 나왔다.
'불합격.
하지만 적정 성적은 넘었으므로 재시험을 치세요.'
충격적이었다. 리크루터는 흔히 있는 일이라고, 기죽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이미 절망에 빠졌다. 불합격을 할꺼라는 생각은 눈꼽만큼도 못했다. 내 오만함은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그것이 한 순간에 와장창 무너졌다. 재시험을 칠 엄두가 안났다. 왜 떨어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내가 답변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아서 그럴까? 평가가 안될만큼 너무 짧게 대답해서였을까?' 통역 퀄리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은 전혀 못했다. 시험 점수를 매긴 팀에게 문의를 했다. 대답은 더 충격적이었다.
'통역에 부분부분 빠지거나 추가한 것이 있음. 전반적으로 노트 테이킹 연습과 단기 기억력 향상을 하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놀랍게도, 여태까지의 나는 내 통역에 구멍이 있다고 생각을 한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한 문장이 떠올랐다.
'I see that you plead here.'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통역할것인가?
나라면, '여기에 진술한거 읽었어요' 라고 통역할 듯 하다. 이런 의역이 감점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취업을 하면 실력때문에 잘리는 일은 많지 않다는 얘기를 들었고, 편하게 일해왔던 환경이 독이 되었다. 일을 오래 할수록 내 의역 능력은 더 올라갔다.
재택 통역 회사에서는, 단어 to 단어. 글자 그대로 통역을 해야한다. 즉, 회사에서 나에 대한 점수를 매길 때에는, 단어에 충실하게 통역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추어 본다.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통역해야하니 '당신이 여기에 진술한거 보았어요' 가 맞을까? 고민을 해보니, '당신은 여기에 진술한거로 보입니다.'가 제일 모법답안인것 같다. 내가 했던 통역에 허점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이상 통역을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두 번째 구두 테스트를 치뤘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망했다는 생각을 했다. 저번보다 더 못 친 느낌이었다. 내가 실수를 이렇게나 많이 했는데, 나를 뽑아주면 안 될 것 같았다. 더 집중해서 들으려니, 실수가 너무 많아졌다. 문장을 통채로 못 들어버리는 대참사도 일어났다. 결과가 나오기 전에 나의 패배를 받아들이자며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그러다, 결과도 확실하지 않은데 지금부터 우울할거 있냐며 또 애써 억지 텐션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결과가 나오기 전 며칠만이라도 행복하자는 생각이었다.
매 시간마다 기대감은 낮아졌다. 자신감은 더 낮아졌다. 이제는 내가 통역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방심하고 있던 찰나,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다음 단계 안내입니다'
와.. 내용을 보지도 않고 알게해주는 헤딩이라니! 너무 멋졌다. 입 밖으로는 '딸! 엄마 기분이 너무 좋아'라고 단어들이 튀어나왔지만 사실 흥분되지는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몸은 차분했지만 머리로는 내 삶이 또 많이 바뀌겠구나 알았다.
재택 통역 업계에서는 이직시, 실력 테스트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지옥을 오고가며 느낀게 있다.
'이왕 이렇게 된거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잦은 이직은 나를 긴장하게 만든다. 그만큼 실력도 칼을 갈듯 계속 갈면서 살게되는게 아닌가 싶다. 괴롭지만 이게 내가 삶을 사는 방식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