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입이 되어주며 찾은 내 목소리

by 박모카

캐나다에 단기 이민을 갔다. 일을 하다 보니 만삭의 임산부가 되었다.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하다보니 임산부의 몸으로,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았다.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던 통념을 깼다. "임산부, 왜 취업 못해?"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던 내 프레임을 부쉈다. 나는 지금 이후 귀국해서도 이 일을 쭉 하고 있다.

살만해지니, 주위가 보였다. 귀국해서 보니 우리나라가 많이 바뀌어있었다. 외화를 축적해놓는 것이 필요해보이는 흐름이었다. 특히, 이직을 다시 시도하며 새로이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내가 더 대우를 받을 수 있었구나'라는 중요하지만, 누군가가 '말'만 해줘봤자 알 수 없는, 직접 몸으로 경험해봐야지만 알 수 있는 팩트였다. 나 말고 다른 우리나라 사람들은 처음부터 대우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 사람들한테 내 세계에 대해 소개를 해줘도 되겠는데?'


되짚어 보니,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아기 엄마들이 생각났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꽤 많은 우리의 일부는, 나처럼 일을 하고 싶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제한되어있었고 현실은 9-6를 제시했다. 100번 이상은 시도를 해봤지만 거절의 거대한 문 앞에 무릎꿇고 있는 상태였다. 이제는 안되는걸까, 온도가 점점 뜨거워지는 솥 안의 개구리처럼, 자신을 옭아매는 무기력함이 씌워지는 중이었다.

괜한 오지랖이 발동했다.


'우리, 집에서 외화 벌어요.'


첫 시작은 스레드였다. 그냥 올린 글이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내가 주는 컨텐츠에 사람들은 목이 말라 있었다. 나 역시 돈을 벌어야 했기에, 공개적으로는 말할 수 없는 내부적인 이야기를 해야했기에, 글로 전달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많았기에 유료 웨비나를 열었다.


'입금 되었습니다.'

두근거렸다.

'입금 되었습니다.'

손이 떨렸다.

'입금 되었습니다.'

남편에게 자랑해도 되겠다.


그렇게 나는 내가 가진 재능을 돈으로 바꾸는 경험을 했다. 물론, 통역사 역시 '서비스'를 파는 업이긴 했지만, 이번은 달랐다. 기존 시장에 존재하지 않던 서비스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귀한 돈과 내 경험을 바꾸고 싶어했다. 드넓은 세상 안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통역이라는 창구를 통해, 온라인 상에서 동지들을 만났다. 세상과 연결되어있는 느낌이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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