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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모카 Jan 24. 2020

내가 왕년에 말이야..

[박모카] 속마음 소리 지르기 -1

고등학생 때의 나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요즘 나는 그때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일어날 때 한 번에 눈뜨고, 밥 먹고 산책하고, 해야 할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하는 것.


무언가를 하지 못해 불안해하면서 자던 과외선생님을 이해하지 못하던 그 시절. 시험기간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잘 때 인터넷 강의를 켜놓고 잤다가 한국사 악몽을 꿨던 그때. 저녁 일찍 자고 아침 5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던 시절. 자기 전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아까워서 머리맡에 노트를 놔두고, 어떤 생각이던지 기억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어두운 곳에서 한석봉처럼 글씨를 써댔다. 군것질을 하는 것을 즐기지 않아 친구들이랑 매점에 가면 그냥 구경만 하다가 나오던 교복 입은 학생의 모습도 너무 좋았다. 그때는 배가 나온 사람들이 마냥 신기했었다.


‘어떤 대학교에 반드시 가겠어!’의 목표도 없이, 그냥 문제를 열심히 풀고 좋은 성적을 받는 것만 보고 앞으로 달 려나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런 삶에도 끝이 왔고,  고3 겨울방학에는 ‘엄카’라는 마법의 열쇠를 받아 원하 는 화장품을 다 사용해보았다.


대학교에 가니 시험을 대충 치는 법을 배워 학점을 말아먹었다. 교환학생 갔을 때가 최고치였는데, 그때는 6개 과목 수강에 5과목을 F 받았다. 재채점을 요청했으나 5 과목 모두 F를 다시 주었다. 아직도 무리한 도전을 이어 가며 지금도 힘든 날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


다행히 지금까지 내려온 좋은 버릇이 몇 가지 있다. 여전히 ‘많은 종류’의 노트가 있고 기록을 잘한다는 것, 책 읽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 정도가 있다.


기록은 특히 집착증이 있는 정도로 한다. 무려 꿈의 내용까지 기록한다. 내가 꾸는 꿈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멋진 클래식이 나오는 꿈은 악보를 쓸 줄 몰라 아쉽게도 몇 시간 뒤에는 증발이 되어 버린다. 같은 가상공간의 꿈도 꾼다. 나에게는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어렸을 때부터 익숙한 공간이 있다. 꿈에만 나타났기에 한 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의 다락방처럼 친근하고 빌딩 하나만큼 큰 머릿속의 공간이다. 실제로 비슷한 곳을 본 적은 없지만 잊을만하면 꾸게 된다. 마지막 유형의 꿈은 영화 같은 시놉시스가 있는 꿈이다. 나이가 들면서 꽤 완성도 있는 내용이 나타난다.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나타나지만 몇 분 내로 기억이 희미해지기에 이런 류의 꿈을 꾸면 일어나자마자 무엇이 홀린 것처럼 메모를 해 나간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며 제주도에서 꿨던 시놉시스가 있는 꿈을 꾼 적이 있다. 친오빠에 대한 꿈은 자주 안 꿨는데, 이번에는 예외였다. 아래는 꿈의 내용이다.


"오빠랑 제주도에 놀러 왔다. 몇 달 전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던 건데, 티켓을 끊고 얼마 있지 않아 화산 주의보가 내렸다. 화산 주의보는 예상되는 피해에 비해 주의를 많이 기울이는 편이기 때문에, 정말 큰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비행기 티켓이 아까워 그냥 여행을 강행하였다.

오빠랑 제주도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이면 집에 돌아가는 날이었다. 주의보가 한참 심해져서, 내일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에 미리 짐을 싸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제주도에 집이 있는 우리는, 선택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있었다. 정말 화산이 폭발한다면 그 집과 그 집에 있는 물건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질 테니까.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은 그냥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다음날이 와있었다. 우리는 물건을 담아갈 가방만을 골라놓고, 쇼핑을 하고 나왔다. 밖에 있다 급보를 들었다. 화산이 정말로 터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약했던 비행기가 육지로 가는 마지막 비행기로, 꼭 타야 하는 상황이 왔다. 정신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이미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서, 집까지 가는데 수많은 사람을 뚫고 달려서 도착해야 했었다. 길은 수많은 계단이 전부였다. 집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옆에 설치된 비행기구가 보였다. 파일럿들이 항공 조종 연습을 위해 만들어놓은 작은 비행 기구 같아 보였다. 상황 파악이 되기 전에, 나는 그 기구 위로 뛰어들었다. 계단이 있어 내가 위쪽에 있는 상황이었고, 비행기구는 타원형을 그리고 땅에 묶인 채 지상을 윙윙 돌고 있을 뿐이었다. 조종사가 있을 법한 쪽으로 갔다. 나는 움직이는 물체 밖으로 이동을 하기 때문에, 꽤 위험한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종사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외쳤다. ‘조종사가 어제 화산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도망갔대요!’ 그 사람들은 우리보다 정보망이 빨랐던 걸까. 사람을 태울 수 있는 운송수단을 버려두고, 자신의 몸뚱이만 건져 육지로 돌아간 텅 빈 조종사의 좌석이 너무 밉게 느껴졌다. 혹시라도 이 비행물체를 타고 집으로 가려던 생각은 물거품이 되었고, 나는 금 같은 시간을 쪼개 먹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 비행물체에서 가까스로 점프를 하여,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집에 도착하여 먼저 이번에 사놨던 값비싼 화장품을 챙겼다. 첫 번째 가방은 그걸로 채워졌다. 그 걸로만 첫 번째 가방을 채웠는데도, 새로 구입한 화장품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다. 아깝다.

그러고 나니 다른 방에 있던 내 노트북과, 구형 노트북이 눈에 띈다. 두 번째 가방을 채우는 와중, 오빠가 내일 쓸 거라며 챙겨뒀던 가방이 속이 빈 채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급히 오빠를 불러, 가방 여기 있다고 알려준다. 오빠는 내가 짐을 꾸리는 동안 아직까지도 자기 물건을 넣을만한 곳을 찾고 있었나 보다. 가방을 보고 좋아하며 거기에 물건을 넣는다. 약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노트북을 담는데, 오래된 일기장이 눈에 보인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타는 비행기는 2PC로, 세 번째 가방은 탑승할 때 가지고 탈 수 있다. 세 번째 가방을 만들어도 되는 상황이었기에 오래된 일기를 꾸겨 넣는다. 일기장은 꽤 많았다. 7권 정도 되었는데, 정리가 되지 않은 채로, 쑤셔 넣는 대로 들어간 거라 어딘가 삐져나올 것 같은 아슬아슬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짐을 다 꾸리니 보이는 약간의 빈 공간이 아까워서, 새로 샀던 화장품 중 챙기지 못했던 것 중 비싼 것 순서로 닥치는 대로 집어넣는다. 그리고 오빠에게 말한다. ‘우리 가야 할 것 같아.’ 오빠가 말한다. ‘비행기는 12시까지만 타면 되니까 아직 시간 많아.’ 시계를 보니 약 30분 정도 여유시간, 그러니까 보통 가는 속도만을 고려하고 다른 외부 요인으로 지체될 시간은 고려되지 않은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그럼 나 먼저 갈게. 이따가 봐.’

‘어디서 볼 건데?’ 내가 말했다. ‘비행기 안’

말을 하고 나는 또 달렸다. 왠지 마음이 급하게 느껴졌다. 집에서 나와 계단을 쭉 올라가는데, 내가 쟁여놓았던 값싼 화장품이 많이 보인다. 아까운 마음에 몇 개 주어들고 또다시 뚱뚱한 가방 안에 쑤셔 넣는다. 한두 개가 흘러나와도 다시 주워 담을 시간의 여유는 없었다.

비행장으로 가는 길은 조금 더 한산했다. 사람보다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더 많았다. 제주도에서는 관광객에게 여섯 면이 모두 5로 쓰인 주사위를 선물로 준다. 이는 행운을 뜻한다. 주사위는 보통 물건을 살 때 증정용으로 주는 편이며, 검은색으로 쓰이는 것이 보통이지만 핑크나 다른 색깔의 글씨 주사위도 레어템으로 등장한다. 사실 내 주머니 안에는 집 밖 계단을 올라오며 발견한 주사위 3개가 자리 잡고 있다. 거리에는 검은색으로 쓰인 행운의 주사위가 보인다. 하나가 내 얼굴 근처로 굴러 들어오기도 한다. 아니, 내 시선이 그 주사위에 빼앗긴 것일지도 모른다. 주사위를 보며, 사람들도 나랑 비슷하게 쇼핑을 많이 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기 전 너무 무거워진 짐가방을 추스리기 위해 주사위를 버리고 간 것이 아닐까 추측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자연재해가 일어날 때, 자연재해의 위험성보다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우리는 제일 위험하다고. 그 쓰레기가 우리를 덮쳐 숨통을 조인다고.

좀 더 뛰다 보니 너무 인상 깊은 쓰레기 더미가 있었다. 그 쓰레기는 완벽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책장이었는데, 빈 책장 옆에는 잘 정리된 책 묶음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이건 일본인이 놔두고 간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런 비상상황에 어떻게 저렇게 정리를 했는지 경이롭다.

곧 공항에 도착했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돌아갈 때 항상 이용했던 익숙한 한쪽 모퉁이에 연결된 통로 앞에 ‘국내선! 여기로 오세요.’를 외치는 직원 두 명이 보인다. 그쪽으로 가서 여권을 집어 들었다. 나는 몰랐는데, 숨이 많이 찬 상황이었고 몸은 생각보다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손은 너무나도 많이 떨리고 있어 여권을 집어 드는데 애를 먹었다. 여권을 주자 직원은 항공 티켓과 함께 바로 지금 탑승하라며 비행기 쪽으로 손짓을 하였다. 나보고 식단은 잘 챙겨 먹었는지 묻는다. 내가 쓰러질까 봐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 내 세 개의 가방은 스캔되지 않은 채 바로 내 품에 돌아왔다.

자리가 어느 쪽인지 보기 위해 티켓을 들어 올렸다. 0016. 제일 마지막 좌석이다. 잠깐. 비행기 티켓에 ‘정규-양배추 및 스테이크-3일’이라고 적힌 문구가 있다. 내가 단식을 했는지, 일반 식사를 했는지 적혀있는 부분이었다. 내가 단식을 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지금 시간을 확인해보니, 오빠가 집에서 지금 출발하면 비행기까지 걸리는 시간에 15분의 여유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급박한 사정이기 때문에 무사히 집에 돌아가려면 당장 출발해야 한다. 시간이 꽤 급박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갑자기 몰리면 어쩌나 걱정도 든다. 오빠한테 지금 출발하라고 전화를 할지, 내 전화가 오히려 방해가 될지에 대해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오빠가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전화를 걸어서 얼른 출발하라고 한다. 오빠는 알았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는데, 왜 내가 뭘 먹었는지 추적을 하지?"


이렇게 꿈을 꾸고 나면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다음날 잠이 들기 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다. 비행기를 타면서 여태 한 번도 내가 뭘 먹었는지에 대해 추적을 한 적이 없다. 화산이 터지는데, 갑자기 이렇게 비상상황이 된 것도 이상하다. 몇 달 전부터 상황에 대해 인지를 하도록 하고, 지금에서야 ‘정말’ 비상상황이 된 것이 너무나도 수상하다. 아마 아무 의심 없이 사람들을 비행기에 태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비행기에 타는 이 상황도 굉장히 위험한 사실이라면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둘 중 하나는 살아야 한다. 내가 비행기에 타고, 오빠는 남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만약 오빠가 설득이 되지 않는다면 내가 남아야겠다.'


기록을 하고, 그것을 다시 기억하는 경험을 통해 또 다른 생각이 반짝 나온다. 뼛속까지 남아있는 인간 본원의 내 모습도 보인다. 예전에는 창피했지만 지금은 이 모습에 감사한다. 고등학생 때의 반짝반짝했던 버릇을 지금처럼 지켜나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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