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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Mar 13. 2019

여행의 의미-  나는 레알real 봉사자인가

봉사쟁이 '나', 그리고 봉사人 '미켈란젤로'


봉사: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 봉사의 정의.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애씀'.


'봉사의 조건이 참 어렵구나'라고 생각되는 순간.


유럽여행을 한 뒤 나는 정기적인 봉사를 하고 있다. 여유가 있는 시간은 전부 봉사를 한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런 나의 행위가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최근에서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되짚어 본 봉사의 길.

그 길에서 나는 봉사에 대한 철과 '애씀'을 짚고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정기적인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


구제 옷 가게 '보물섬'

계기라고 하면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곧잘 교회 지인 분이 하시는 가게라던가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던가 나의 손을 이끌어 함께 가곤 했다.

어느 날은 어머니는 나와 함께 장을 보고 돌아가던 중에 들를 곳이 있다며 나를 이끄셨다. 그곳은 교회지인 분이 하시는 작은 공원 앞에 너즈 막이 자리 잡은 가게였다. 겉으로 봐서도 유난히도 빛바랜 느낌의 가게. 아직도 그 분위기는 어린날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보물섬'이라고 하는 이 가게는 헌 옷과 물품을 취급하는 구제 전문점이었다. 유난히도 빽빽이 들어서 있던 각양각색의 옷들과 잡화는 그곳이 정말 보물의 섬인 듯 한 착각마저 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어린 나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숨겨져 있는 보물 혹은 무언가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열정마저 가져다주었다.


그 날을 계기로 나는 가끔은 보물섬에 들러, 마음에 드는 가방은 없는지, 물건은 없는지 구경하곤 했다. 길거리에서 혹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보세 브랜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빈티지의 매력은 생각보다 강렬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스무 살 성인이 되어서 대학교를 다닐 때에도 나는 가끔 빈티지 가게에 가서 맘에 드는 보물을 찾는 일에 열중하고는 했다. 그런 시간들이 도리어 내게 안정과 휴식을 주기도 했다. 넉넉하게 시간을 가져도 되고, 마음껏 재어봐도 되고, 가지고 싶은 건 다 가져볼 욕심도 낼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장소가 되었다.


다행히도 대학교 내에는 '아름다운 가게'라는 헌 옷, 책, 가방 중고 물품을 기증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 들어와 있었다. 아름다운 가게는 '나눔'과 '순환'이라는 기업의 운영방침으로 기부와 기증, 봉사자로 구성된 기업이다. 대학시절 나에게는 아름다운 가게는 '쓸만한 물건들을 버리지 않고 이곳에 기부하면,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여 수익금을 공익에 사용하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대학교 시절, 사회봉사를 신청해서 단기 봉사를 나간 적은 있지만, 한 두 번의 경험으로 끝나곤 하였다.




로마, 바티칸 시국에서의 깨달음


오랜 시간이 흐른 후였다. 여행을 간 로마와 바티칸 시국에서 '봉사'와 '희생정신', '열정 있는 삶'에 대해서 깊게 깨우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정신으로 무언가를 잉태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정기적인 봉사'를 결단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로마에서 머문 셋째 날에 나는 바티칸 투어를 신청해서 그룹 관광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이드를 동행한 투어는 매우 흥미로웠고 유익하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 그중에서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에 관한 이야기로부터 두 거장의 예술성, 그 안에 내포된 인격과 열정에 감명받았었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는 '은유'와 '상징'의 초기 르네상스적 특징으로부터 '사실주의적 표현'의 후기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그는 본래 조각가이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도 입체적이며 생동감 있게 그려내었다. 근육 하나하나를 조각해 냈던 그는, 그림에서도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을 나타내었다. 그 디테일이 잘 드러나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 바티칸에 있는 <피에타> 조각상과 천장화 <천지창조>, 그리고 <최후의 심판>이다.


피에타(Pieta)




르네상스 예술의 두 거장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미켈란젤로가 서른일곱의 나이로 완성한 시스티나 성당 예배당의 천장화는 당시 그보다 여덟 살 어린 촉망받는 화가였던 라파엘로에 깊은 감명을 주게 된다. 당시 라파엘로는 높은 기술적 완성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화가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라파엘로는 자신의 타고난 것들을 누리고 '즐기는 천재'였다. 그에 비해 미켈란젤로는 '노력파'에 '헌신 천재'였다. 


아테네학당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1509~1511),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1508~1512)는 르네상스 전성기의 예술적 양식과 영적 의미를 가장 완성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는 두 작품이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사실주의적 표현에 영향을 받아, 그림체에 변화를 주게 된다. 라파엘로는 그로부터 구 년 동안, 미켈란젤로의 화풍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남기게 된다.

라파엘로가 서른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살다 간 반면, 미켈란젤로는 여든 하나의 나이까지 화가이자 조각가로서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다.


시스티나 성당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천지창조 천장화를 마주했을 때, 나는 그 거대하고 광활한 크기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높이도 높이지만, 너비 또한 미켈란젤로 한 사람이 그렸다고 가히 상상할 수 없는 크기였기 때문이었다.


천장화라는 특성 때문에, 색을 칠하면 얼굴로 낙하하는 염료를 그대로 맞느라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고 시력까지 손상됐다는 미켈란젤로. 그가 그려낸 것은, 그저 '작품'이라고 말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천장화의 '천지창조'


어떤 이의 숭고한 정신으로만 잉태될 수 있는 고귀한 혈통의 것. 어떤 '능력', '재능'을 뛰어넘는 열정과 헌신. 그려내고자 하는 것 그 이상을 담고 있는 신비한 매력마저 주는 그의 작품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그 작품이 지닌 메시지를 생각하게끔 한다. 단순히 '아름답다'라는 말로는 아쉬운 그의 혼이 담겨 있는 작품들.


그가 위대한 예술가이자 르네상스 예술을 이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가 가진 재능 때문 만은 아니었다. 헌신적으로 더 나은, 완성도 있는, 자신이 표현해내고자 하는 형상을 최대로 끌어내려했기 때문이다. 결코 타협하지 않았고, 모른 척하지 않았고, 방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섬세하게, 자세하게, 정확하게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실로 느낄 만큼 진정성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몸도 불사르는 열정과, 헌신, 희생으로 탄생된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그가 원했던 장소, 또는 주제가 아니었지만, 그 속에서 그가 종교적으로 그리고 예술인으로 그리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신분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은 당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적 감명을 주고, 예술적 즐거움을 선사했으며, 황제의 인정을 받았다.


최후의 심판 세부




미켈란젤로의 봉사 정신


봉사에 관하여, 그는 당당히도 그의 삶을 진정 '봉사인'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의 선택권 안에서 활동을 했던 라파엘로, 둘은 르네상스 예술을 꽃피운 두 거장이지만 그들의 속성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작품 활동을 했는지, 왜(why)가 중요했다.


미켈란젤로는 국가와 사회를 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애썼다. 그에 비해 라파엘로는 그의 빛나는 재능을 여유롭게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에게는 작품 활동만큼 세상에 즐거운 일들이 많았고, 그것들을 쫓으며 살아갔기 때문이다. 짧은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도 특출 난 재능으로 언제든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던 라파엘로였다.


순종과 헌신으로 봉사하는 삶을 택했던 미켈란젤로, 그리고 자신을 드러내고 즐기는 삶을 택했던 라파엘로. 르네상스의 두 예술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를 통해서 나는 '봉사'와 '헌신', '순종'의 참 의미와 가치를 깊게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오늘날의 봉사


지금은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곳이 두 곳이고, 정기적으로 봉사하는 곳 외에도 드문드문이라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알아보고 찾아보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 된 지 오래이다.


봉사를 해보니, 어느 곳이든 봉사지에서는 그곳에 필요한 업무가 있다. 봉사자는 업무를 배우고, 그곳에 방문하는 사람, 일하는 사람들,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때로는 물품을 정리하고 진열하고, 영업을 배우게 된다. 때로는 청소를 하고, 건의를 받기도 하며, 자존심이 상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누군가에게 책임지고 알려주기도, 교육하기도, 친밀감을 쌓아야 하기도 한다.


업무에 익숙해지게 될 때쯤, '이 곳은 어떤 사람과 세상을 응원하고 돕게 되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하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사람들의 생각도 유연하게 접하게 된다.


봉사가 좋은 이유는, 보수가 없는 일이라서 그에 따른 경쟁이나 효율, 평가가 없어서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에는 어디든지 그런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봉사라고 할지라도.


봉사가 진정 좋은 이유는 분명 물질적 대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 대가를 심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봉사는 '마음의 양식'이 되기 때문이다.






여행을 통해 얻은 봉사의 의미


나로서는, 아직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봉사자', 그것은 어려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봉사의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결코 나를 돌보지 아니하고는 무언가를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돌보지 아니한다는 의미가, '때때로의 나의 이익과는 관련 없는 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라면. 나는 진정 봉사자일 수 있다.


나의 행위로 인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코 그것은 나에게도 유익이기 때문이다.


내가 받을 수 있는 것보다 남에게 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
헌신과 순종, 낮아짐의 가치는 봉사로 더욱 다듬어진다. 그 결과로 세상을 더욱 유연하게 보는 것, 사람을 너그러이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로 인해 나 자신을 풍요롭게, 세상을 즐길 수 있게 된다.





아가페적 사랑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그 모든 결핍과 욕심으로부터 해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조건과 물질, 이로부터 해방되어 아가페적으로 스스로를 사랑해 줄 수 있는 것, 그 훈련이 가능한 것이 바로 봉사이다.


아낌없이 줘도 아깝지 않은 마음을 품은 사랑, 그 사랑을 경험하고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순간의 경험들이 쌓여 나를 풍요롭게 채워준다. 그리고 이러한 채움은 결국 가정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


봉사는 나를 가장 뼈아프게 마주할 수 있는 행위이다.

이러한 '애씀'을 통해서 나 자신을 진정 사랑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용기와 여유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봉사를 통해서 스스로에게 헌신하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 낮아짐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배움.

배움이 있는 봉사, 그것이 내가 봉사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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