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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별아star a Mar 06. 2019

여행의 의미- 북해로 흘러들어 가는 운하를 품은 도시

벨기에 중소도시-겐트(Gent)

겐트 리스 강의 분위기(사진 옥별아)



인구 60만 벨기에 소도시, 합류점(合流點)이라는 뜻을 가진 겐트(Gent)

-스헬데 강과 그 지류인 리스 강의 합류점에 있는 겐트, 겐트의 작은 운하는 북해(North Sea)와 만난다.



겐트는 브뤼셀에서 북서쪽으로 50km, 벨기에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도시이자 벨기에에서 세 번째로 큰 기차역이 있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벨기에 하면, 브뤼셀(Brussels)과 브뤼헤(Bruges)를 생각하는데, 겐트는 브뤼셀과 브뤼헤의 중간지 중소도시로 브뤼셀과 브뤼헤 못지않게 많은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겐트 시내 전경(사진 옥별아)


겐트(Gent)는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로 방직 등 산업이 발달하여 부유한 지역이었다. 특히 중세 후반기의 겐트는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독일의 쾰른과 함께 서유럽의 가장 큰 도시 중 하나였다.

따라서 건축물들과 문화예술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여전히 중세시대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오늘날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겐트 종루와 성 바프 대성당



성 바프 대성당


성 바프 대성당과 겐트를 대표하는 예술가


성 바프 대성당 (St. Baafskathedraal)은 12세기부터 건축하기 시작해, 4세기에 걸쳐 완성된 곳으로 각종 걸작들을 소장하고 있다. 특히 반 아이크(Jan van Eyck)의 <신비한 어린양의 참배>라는 제단화와, 루벤스의 <성 바프의 수도원 입문>과 각종 조각품 그리고 지하의 보물전 등도 유명하다.

성 바프 성당 내부

벨기에를 대표하는 예술가들로는, 브뤼셀의 피터 브뤼겔, 브뤼헤의 한스 멤링, 겐트의 에이크 형제와 안트베르펜의 루벤스가 있다.  


성 바프 대성당의 제단화

상공업이 발달 한 도시의 예술가들


겐트는 일찍이 교통이 발달하여, 섬유산업, 방직산업 등이 발달하여 부유한 곳이었다. 겐트의 부유층들의 지원을 받아 도시는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활동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메디치 가(家)의 지원을 받아 르네상스를 발현시키고 문화예술을 꽃피운 도시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마찬가지로, 겐트도 부자들의 문화예술 나눔 의지로부터 도시가 예술을 낳는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이 시기에 탄생한 훌륭한 작품들은 지금도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신비한 어린양의 참배> in 성 바프 대성당


플랑드르 화파의 반 아이크 형제


성 바프 대성당 앞에는 반 아이크 형제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아이크 형제는 네덜란드 출신으로서 벨기에 겐트가 주 활동지였다. 플랑드르(Flandre) 화파(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서 유행했던 화풍)의 기초를 닦은 형제의 작품은 오늘날 르네상스 시대 플랑드르 화파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아이크 형제는 유화물감을 최초로 개발해서 자신의 작품에 사용한 미술가이다. 미술작품에서 유화물감의 사용은 이전 시대와는 전혀 다른 작품과 기법들을 만들어 내었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1434> in 런던 내셔널 갤러리

유화를 사용함으로써 사물이 거울에 비친 듯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인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은 성인(saint)이 아닌 현실 속의 인물을 그린 최초 회화작품으로 색채 또한 상징성을 띄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색을 썼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수태고지, 1436 by 반 아이크> in 워싱턴 D.C 내셔널갤러리





겐트 운하


겐트 운하와 북해(North Sea)

-북해로 흘러들어 가는 강이 아름다운 겐트


겐트는 바다에서 20여 km 떨어진 내륙 도시이지만 운하를 통해 네덜란드 국경을 지나 바다로 연결된 항구 도시기도 하다.

벨기에는 북쪽으로는 북해,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네덜란드, 독일, 룩셈부르크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데, 겐트-테르튜젠 운하(Thent-Termeuzen Canal)는 북해와 연결되어있어, 외항 기선의 출입이 가능하다.

북해(North Sea)


북해는 노르웨이와 영국 제도 사이에 있는 대서양 북동부의 수심이 얕은 부속해이다. 수심은 대부분 90m 이내이며, 해저는 북쪽으로 경사져 있으며 대체로 울퉁불퉁하다. 북쪽으로 셰틀랜드 제도, 서쪽으로 영국·오크니 제도, 동쪽으로 노르웨이·덴마크, 남쪽으로 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독일 등과 경계를 이룬다.





겐트 주택가(사진 옥별아)

겐트와 겐트 조약


겐트는 영미전쟁(Treaty of Ghent)을 끝낸 겐트 조약(1814년)이 체결된 곳이기도 하다. 겐트는 영국과 미국이 '1812년 전쟁'을 끝내기 위해 벨기에 겐트에서 맺은 조약이다.


중립권에 대한 평화적 해결을 위한 애초에 목표와는 달리 양측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합의에 대부분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국제 노예무역을 폐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을 합의한 조약이기도 하다.





겐트 대학교

대학도시 겐트


겐트는 도시 중심과 남쪽에는 1816년에 창설된 겐트 대학과 (Ghent University) 유명한 연구소들이 자리 잡고 있는 문화·교육의 중심지로 대학도시이기도 하다.


벨기에 북부의 대학도시 겐트에서 1974년부터 매년 10월에 열리는 영화제가 있다. 대학동아리가 창설한 플랑드르 국제영화제-겐트(Flanders International Film Festival-Ghent)이다.





그라벤스틴 성(사진 옥별아)

그라벤스틴 성(Gravensteen Castle)


9세기경 지어진 목조 성에서 1180년 돌로 다시 쌓아 탄생된 그라벤스틴 성(Gravensteen Castle)이다. 성은 시내 중심부를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난다. 웅장한 모습은 아니지만, 빈틈없이 쌓아 올려놓은 돌벽 사이로 성의 튼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중세시대에는 왕가의 거처였다는 성, 19세기 들어서 성이 조각조각 다른 사람에게 판매되었고 결국엔 성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이후 그라벤스틴 성은 겐트의 종교 재판소, 감옥, 법정, 공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라벤스틴 성 전경



- 아름다운 벨기에의 중소도시 겐트, 다음편에서 브뤼셀과 브뤼헤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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