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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Aug 20. 2021

슬의생 작가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by 배뚱뚱이

<슬의생 드라마 더 재밌게 보는 슬기로운 방법(하)>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는 재미있게 보고 있나요? 지난번 배뚱뚱이가 알려드린 ‘의사가 되는 과정’을 읽어봤다면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슬의생 드라마 재미있게 보는 법 상편에 이어 배뚱뚱이에게 자주 묻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정리해드리도록 할게요.

Q. 왜 의사 선생님들을 교수님이라 부르죠? 드라마상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는 장면은 안 나오던데…
대학병원의 의사 선생님이라면 모두 교수라 부릅니다. 병원에는 의대 학생들이 계속 실습을 나오고 강의실 수업도 해야 합니다. 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들의 업무 중 하나죠. 그래서 교수님이라 부르는 겁니다. 또, 대학원 지도교수 업무도 있습니다. 레지던트나 임상강사 선생님들의 상당수는 해당 학과의 석/박사를 함께 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이들의 지도교수를 하고 논문 지도를 하는 것도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 즉 교수님들의 중요 업무입니다. 


참고로 인턴/레지던트는 대학병원이 아니더라도 근무가 가능합니다. 이때는 수련병원 이라는 개념을 쓰는데요. 예를 들어 성모가 들어가는 병원이 전국에 상당히 많은데, 사실 8개 병원 빼고는 교수님이 계시지는 않고 인턴/레지던트만 있는 수련 병원들입니다. 이런 경우 교수님 대신 과장님이라는 호칭을 주로 쓰게 됩니다. 

Q. 간호사도 호칭이 다들 다르던데 역할이 어떻게 다른가요?
 
슬의생의 간호사들도 드라마 스토리 전개에 큰 영향을 끼치죠. 특히 분만실, 중환자실 등의 매우 위중한 환자를 다루는 부서의 경험 많은 간호사 선생님들은, 환자 관리에서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시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산부인과에서 한승주 간호사 선생님이 있습니다. 카리스마 넘치지만 산모를 생각하는 마음을 보고 감동을 받곤 합니다. 병원에서 간호사들의 역할을 다양합니다. 슬의생 드라마에서 본다면 수간호사가 있는데, 간호사 그룹에서 가장 수석인 간호사를 말합니다. 일반 회사에서 팀장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PA는 Physician Assistant의 약자로, 특정 과에 매우 전문화된 간호 업무를 합니다. 하지만, 원래 취지와 다르게 레지던트 지원이 적어 인력난을 겪는 수술과의 레지던트 업무를 암묵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계에서 많은 논쟁이 있기도 하죠. 


이 외에도 병동에서 근무하면 병동 간호사, 외래에서 근무하면 외래 간호사가 있습니다. 또, 특정 분야에 대한 추가적인 시험과 자격을 갖추면 전문간호사로 불리는데, 암 전문 간호사, 이식 코디네이터 등이 있습니다. 드라마상에서 이익준 교수님이 간이식 수술을 할 때 이식 코디네이터가 등장하기도 하죠.

Q. 키다리 아저씨 재단은 VIP 병동의 수익금으로 상당수를 충당하던데, 실제로 VIP 병동 가격은 얼마인가요?
 
각 병원의 VIP 병동 가격은 비급여 항목 고시 의무에 따라 병원 홈페이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고급 VIP 병실은 하루 입원(1박 기준)이 100만 원 가까이하는 경우가 많죠.


Q. 의사 선생님들은 가운이 항상 흰색으로 깨끗해요. 선생님들은 가운 몇 개나 갖고 있나요? 혹시 직접 빨래하시나요?
 
매우 신선한 질문이네요! 제가 전공의였을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가운은 제일 처음 인턴 들어갈 때 3개를 받고, 매년 초 2개씩 지급됐습니다. 그래서 인턴 때는 가끔 더러운 가운을 입기도 했지만, 레지던트로 넘어가고부터는 늘 가운이 넘쳐났습니다.  대개 전공의 때는 불규칙한 수면과 잦은 야식으로 살이 잘 찌는데, 가운이 작아져서 못 입는 경우는 있어도 부족하지는 않죠. (의사 선생님들이 환자들한테 살찌지 말라고 하는데 의사들은 왜 살찌냐고 그러면 배뚱뚱이는 할 말이 없습니다.) 


병원의 직원들이 있는 곳에 보면 곳곳에 빨래함이 있는데 이 중에 아무 곳에라도  가운을 넣으면 병원에서 일괄적으로 세탁해서 교수 사무실이나 과 사무실로 옷을 배달해 줍니다. 그래서 가운에 이름이 자수로 박혀있죠. 환자분들에게 이 사람이 누구인지 구분하는 것에 더해서 세탁물이 안전하게 도착하게 하는 용도도 있습니다.  

Q. 영어 약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원래 그렇게 많이 사용해요? 약어 암기할 때 어렵지 않나요?
 
약어 사용은 정말 많이 하죠. 빠른 의사소통에도 필요하고 동일한 약어를 사용하면 어떤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죠. 과거 진료 기록을 손으로 쓰던 시절에는 약자를 쓰지 않으면 시간 내에 진료가 불가능했죠. 이걸 어떻게 외울까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의대에 오니 특별한 방법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면 실망일 수도 있겠네요. 중고등학교 방식과 다르지 않아요. 의대 안에는 온갖 유치 찬란한 암기법과 노래들이 난무합니다. 


Q. 모처럼 술을 마셨는데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죠?
원칙적으로 술을 마신 의료진은 진료에서 배제합니다. 사실 응급환자가 발생할 만한 병원들에서는 교수까지도 백업 당직 일정이 있습니다. 즉 병원에서 밤을 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응급 환자가 왔을 때 연락을 받으면 수술 내지는 환자 관리를 위해서바로 병원에 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하기 어려운 기술을 가진 외과 계열 의사 선생님들의 경우는 거의 매일을 ‘혹시나 나를 부를 수도 있다’ 란 잠재적인 긴장감 속에 살고 계십니다. 언제 뇌사자 장기가 생길지 모르는, 즉 언제 갑자기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는 이식외과 선생님들이 대표적인 예죠. 이런 분들은 술을 마셔도 누구에게 대신 부탁해야 할지 감안을 하고 음주 일자를 정하죠. 생각보다 힘든 삶이지요? 

Q. 다른 메디컬 드라마에서 다양한 과를 봤는데, 안정원 선생님의 소아외과는 좀 생소해요. 
 
의사의 진료 영역이 점점 고도화되면서 내과나 외과 같은 큰 과에서는 분과 전문의라는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암 치료만 하는 혈액종양내과, 심장만 주로 보는 순환기내과, 외과에서도 이식외과, 소아외과, 혈관외과, 신경외과에서도 뇌만 보는 전문가, 척추만 보는 전문가 이렇게 고도의 전문 분야가 나뉩니다. 분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전문의 취득 후에, 임상강사나 임상 조교수로 최소 2년 이상의 진료 경력이 있어야 해당 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소아외과는 어린아이의 외과적 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분과인데, 최근 2022년 신규 소아외과 분과 전문의 시험에 단 한 명도 응시 안 한 것이 뉴스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필수 의료과들의 인력난이 상당히 심각한 상태인데 슬의생 드라마에서도 이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자 소아외과가 스토리의 중요한 역할을 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안정원 선생님은 이사장 집안의 사람, 의사들 사이에서 말하는 ROYAL 이기 때문에 돈을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이런 과를 한 것은 안비밀입니다) 


작가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제가 전공한 과는 대학병원에만 있고 개업을 할 수 없는 전공입니다. 그래서 처음 전문의가 될 땐 꼭 대학병원에서 살아남겠다 다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1편이 나올 때가 병원을 그만둔 직후였는데,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는 생각에 너무 속상해서 드라마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혈 시청자가 됐죠.


그런데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보다 보니 이 드라마에서 하고 싶은 숨은 의미를 발견하고 감탄했습니다. 슬의생 주인공인 5명의 의대 99학번 동기들. 이들의 과를 보면 간담췌외과, 소아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신경외과입니다. 주인공 다섯 명이 진료하는 과는 모두 우리 생명에 너무 필수적이지만, 최근에 지원자가 적어 고생하는 과들입니다. 사실 드라마에서처럼 병원 이사장 아들이 아니면 섣불리 이런 과를 지원하기 쉽지 않습니다. (물론 신경외과는 인기과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척추쪽을 전공하고 싶어하지 슬의생의 주인공처럼 뇌를 전공하는 지원자는 많지 않습니다.)  이들의 학창 시절 스토리를 보면 성적도 매우 우수했던 학생들로 나오는데 말이죠.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잘나고 멋지고 쿨하지는 않지만, 투철한 사명감으로, 또는 필수 의료를 지킨다는 자존심 하나로 가장 힘든 현장을 지키고 계시는 의료진들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에게 다시 한번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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