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한독의약박물관
지난달 한독의약박물관에서 작성한 <동의보감엔 귀신 보는 방법이 있다>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부터 한독의약박물관에 소장된 다양한 건강 관련 유물을 소개합니다. 의약이란 창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며 건강한 삶을 염원한 선조들의 일상을 들여보도록 해요.
여러분은 1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언제인가요? 크리스마스? 생일? 저마다 다르겠지만 여름휴가를 기다리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요? 매년 7~8월이 되면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바쁜 일상의 쉼표를 위한 여름휴가를 떠나곤 하죠. 하지만 작년부터 계속된 코로나로 올해도 맘 편히 여행을 가지 못하고 집콕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인터넷에는 집콕이지만 여행만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죠. 그런데, 조선시대 선비들도 집콕 여행을 즐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물론, 조선 시대 선비들의 집콕 여행은 코로나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도 무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시원한 수박을 먹고 싶었을 텐데…
“흠.흠. 어디 양반이 체통없이!”
조선 후기 선비들은 지식인으로서 소임을 다 해야 했기에 현실을 벗어나 자연에서 노닐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비들은 집안과 정원 등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됐죠. 선비들의 이런 열망은 와유문화(臥遊文化)로 발전하게 됩니다. 와유(臥遊)란 누워서 유람한다는 뜻으로 집에서 명승지나 자연 등을 묘사한 그림이나 기물(器物)을 보며 즐기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선비들은 집에 누워서 회화(繪畵)를 감상하며 힐링을 했답니다. 특히,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와유도(臥遊圖)로 제작하는 것이 인기를 끌었는데, 당대 최고 화가인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금강전도(金剛全圖)>가 대표적입니다
선비들 사이에서 <금강전도>가 엄청 유행하자 회화의 주제를 도자기로 가져와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문인(文人)들은 그들의 사적 공간인 사랑방을 자연을 형상화한 물품들로 장식하려 했고, 선비들의 최애 아이템인 문방사우(文房四友)들을 산과 물의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한독의약박물관의 제석홀에 전시되어 있는 조선 19세기 유물인 <백자 청화진사 금강산모양 연적(白磁靑華辰砂金剛山形硯滴)>과 <백자 청화진사 금강산모양 필세(白磁靑華辰砂金剛山形筆洗)>는 정선의 <금강산도>를 모티브로 제작했습니다. 산(山) 모양을 본떠 만들어 산형백자(山形白磁)라고도 합니다.
<백자 청화진사 금강산모양 연적>은 먹을 갈기 위해 물을 담아두던 물품입니다. 봉우리 일부는 청화안료로 채색해 금강산의 신비로움과 바위산을 나타냈고, 나머지 산은 동화안료로 금강산의 단풍과 흙산을 표현했습니다. 중간 산기슭에 동자(승려)를 비롯해 석탑(불탑)을 배치하고, 산 정상에는 2층 구조의 누정(樓亭)을 새겨 장식했습니다. 중턱에 구멍을 뚫어 물을 넣을 수 있도록 했답니다.
<백자 청화진사 금강산모양 필세>는 물을 담아 붓을 씻어 내는 도구입니다. 산의 경치를 바라보는 듯한 구조로 첩첩산중을 표현했죠. 능선 중간중간에는 5층 석탑으로 추정되는 형상을 도식화하여 새겨 넣었습니다. 봉우리는 청화안료로 채색하고, 밑부분은 동화안료로 처리해 보색의 화려함을 더했습니다. 이런 형태의 도자기는 조선후기에 크게 유행하게 됩니다.
요즘에도 자연을 도시에 끌어들인 정원이 건물 안팎으로 조성해 현대인들이 힐링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산과 바다와 같은 자연을 그리워하고 찾아가 위안을 얻고자 하는 건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되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산과 바다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