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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Mar 18. 2022

벤존슨부터 발리예바까지 - 스포츠와 도핑 약물(1)

by 배뚱뚱이

지난달 끝난 동계올림픽에서 많은 이슈가 있었던 것이 바로 도핑 약물입니다. 피겨에 참가한 러시아 출신 선수들의 샘플(주로 소변)에서 약물이 검출되었지만, 여자 피겨 싱글에서 대상자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일단 출전을 하게 했죠. 제가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이것이 전통적인 도핑 약물과 다른, 매우 색다른 형태의 약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1988년에 열렸던 올림픽 육상 100m에서 벤존슨이 금메달을 땄지만, 바로 약물이 들통나 금메달을 박탈당했습니다. 지금도 체육계에서는 계속 새로운 약물이 도입됩니다. 이와 함께 검사 기술이 발전하고 또, 그것을 피해 새로운 형태의 약물 기법이 나타나는 숨바꼭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런 도핑, 즉 스포츠와 불법 약물 복용에 대해 소개합니다. 


도핑방지 규정 위반행위는 선수의 고의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성립되며 세계 도핑방지기구는 엄격한 책임원칙(The Rule of Strict Liability)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 도핑의 정의 (한국도핑방지 위원회)

도핑은 운동선수가 일시적으로 경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종류를 불문하고 해당 종목에서 금지된 약물을 복용 또는 주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민체육진흥법 제2조 제10호는 "선수의 운동능력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고시하는 금지 목록에 포함된 약물 또는 방법을 복용하거나 사용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도핑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고시할 정도로 중요한 사안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도핑은 실제 그리스 로마시대에 전차 경주에서 말에게 약을 주던 것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Dop라는 어원이 실제 말에 주던 약이라 하네요. 


현대적인 스포츠에서 최초의 반도핑 규약은 1928년 국제육상연맹에서 (IIAF)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이런 약물을 찾아내는 것이 어렵기에 말 그대로 선언적인 문구에 불과했지요. 그러나 점차 약물에 의해서 멀쩡한 운동선수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이런 약물을 퇴치하는 것이 선수들의 공정한 경쟁뿐 아니라 생명에도 중요한 일로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 도핑의 영역 1. 지구력을 높인다  

여러 스포츠 중 도핑의 역사가 가장 긴 것이 바로 사이클입니다. 의외인가요? 그러나 유럽에서는 100년 전부터 사이클이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였습니다. 실제 대형 사이클 대회는 짧게는 1주, 길게는 3 주 동안 거의 매일 100km 이상의 거리를 가는 레이스라 그만큼 도핑의 수요가 많았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사이클 종목에 참여했던 크누드 에네마르크 옌센이란 선수는 올림픽 사이클 경기 도중 사망합니다. 경기 도중 넘어져 두개골 골절로 병원에 이송됐고, 이후 합병증으로 사망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선수가 암페타민이라는 피로를 낮추는 (덜 느끼게 하는) 각성제를 복용한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1968년 올림픽부터 도핑 검사가 도입되게 됩니다. 


사이클은 기본적으로 폐활량, 즉 폐로 들어온 산소를 최대한 근육에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이 산소를 전달하는 적혈구를 증가시키는 형태의 도핑이 난무하였습니다. 가장 쉽게는 자기 피를 뽑아 두었다가 대회 직전에 더 넣는 방법도 있었습니다. 이때 많이 쓰인 약이 EPO라는 약입니다. 원래는 신장이 나빠 적혈구를 만드는 신호를 잘 보내지 못하는 환자에게 사용되는 약이죠. 이 약을 일반인에게 투여해 억지로 적혈구를 많이 만들게 하는 것이지요. 물론 부작용은 있습니다. 피가 걸쭉해지죠. 억지로 “진성적혈구증다증”이란 병의 상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적혈구량이 증가하면 신체의 산소 운반능력이 따라 증가합니다. 때문에 사이클, 마라톤, 크로스컨트리 스키 등 장거리 유산소 스포츠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도핑 방식이었습니다. 왜 가능했냐고요? 검사 방법이 약물의 발견을 따라가지 못했거든요. 유전자 재조합 EPO가 처음 시판된 것이 1989년이고, 제대로 된 검출 방식이 도입된 것이 2000년이 지나서입니다. 그 사이 이 약물이 정말 만연해있을 것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 유명한 랜스 암스트롱이 애용했던 약도 바로 이 EPO입니다.


# 도핑의 영역 2. 근육을 만든다. 로이드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일반인도 가장 많이 접하는 도핑 영역, 근육 강화제입니다. 흔히 헬스하는 사람들에게 ‘로이드’로 알려진 스테로이드 계열의 약물들입니다.  

제목에서 언급한 벤 존슨은 소변에서 ‘단백동화 남성화 스테로이드(AAS; anabolic androgenic steroid)’인 ‘스티노조롤’이란 주사 성분이 검출됐습니다. 스티노조롤같은 스테로이드계 남성호르몬을 맞으면 근육 성장을 크게 도와줍니다. 간혹 건강 프로그램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근육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를 설명하거나, 여성분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도 어지간해서는 남성처럼 우락부락해지지는 않는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마 국내 프로야구를 좋아한다면 약xx 라고 선수를 부르는 경우를 알텐데, 이 선수들 모두 스티노조롤이 검출된 케이스입니다.


동독이란 나라를 기억하나요? 과거 1989년 독일 통일 이전에 공산권이었던 독일의 이름입니다. 동독에서는 특히 여성 선수들에게 남성호르몬 주입이 압도적인 효과를 보인다는 것을 알고 국가차원에서 엘리트 스포츠 선수에게 도핑을 권장합니다. (어? 왠지 2014년에 국가가 나서서 선수들의 소변을 바꿔치기한 발리예바의 나라가 생각나네요) 안드레아스 크리거 (Andreas Krieger)란 선수가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안드레아스란 이름은 유럽계 남성의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여성입니다. 안드레아스 크리거는 여성 투포환 선수로 1986년 유럽 육상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압도적인 기록으로 우승을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24세가 되던 1990년에 은퇴를 합니다. 지속적으로 AAS를 맞다 보니, 월경과 배란이 중단됐고 모든 신체가 엉망진창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람은 1997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성전환 전 이름은 하이디 크리거입니다) 안드레아스 크리거가 됩니다. 그리고 본인과 같이 국가적인 도핑의 희생양이었던 여성 수영 선수인 우테 크라우제와 결혼을 합니다. 


이런 극단적인 AAS 사용과 달리 최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일반인 사이에서 유행하는 다양한 주사와 경구약도 있습니다. (약제의 이름은 여기서 밝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런 약들을 사용할 땐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컨트롤하거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여러 약을 함께 복용합니다. 


남성의 경우 남성호르몬이 많아지고 근육 많아지면 좋기만 할 것 같은데, 이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여성호르몬은 남성호르몬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에서 기본적으로 정소(고환)에서 안드로겐(남성호르몬) 그리고 난소에서 에스트로겐(여성호르몬)을 만듭니다. 이와는 별도로 신장 위에 붙어있는 작은 기관인 부신에서 남녀 공통으로 안드로겐을 생성합니다. 여성은 안드로겐에 아로마타제(Aromatase)란 효소가 작용해 안드로겐을 에스트로겐으로 전환시킵니다. 즉, 남성호르몬이 과다하면, 역설적으로 에스트로겐도 많아질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죠. 그래서 위에 언급한 약제들의 부작용 중 하나가 여유증, 즉 여성형 유방입니다.  

사진출처: 나무위키

저런 압도적인 근육에서 여성과 같은 지방+유선조직이 있는 가슴이 살짝 보입니다. 그래서 이런 약물을 쓸 땐 에스트로겐 차단제나 아로마타제를 차단하는 약을 또 맞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약을 쓰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심혈관계 부작용 때문입니다. 심혈관계 부작용은 크게 2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과도한 스테로이드로 LDL 콜레스테롤(나쁜 콜레스테롤)이 급상승하게 되고, 이로 인한 동맥 경화가 유발됩니다. 결국 이것이 악화돼 혈전증이 생기고 혈전이나 피 찌꺼기가 심장의 관상동맥을 막게 되면 심근경색으로 사망합니다. 2000년대 미국 프로레슬링을 보셨다면 누구나 아실 에디 게레로라는 선수의 사망 원인이 바로 이것입니다. 7080년대 출생 남자분이라면 모두 아실 만 한, 마초킹 랜디 새비지, 얼티밋 워리어 또한 심장 이상으로 60세 이전에 사망했는데, 약물이 원인이 아닐까 의심됩니다. 

또, 심장도 근육이기에 약물을 계속 주입하면 심장 근육도 과도하게 튼튼해집니다. 심장 근육은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 그 자체로 병(심근비대: myocardial hypertrophy)입니다. 심장은 늘 움직여야 하는 근육이기에 달리기로 치면 마라톤 같은, 꼭 필요한 정도의 근육만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근육이 많다는 것 자체가 심장에는 어미어마한 부담이 됩니다.


이 외에도 이런 약물의 지속적인 사용으로 우리 몸은 외부에서 한꺼번에 공급되는 남성호르몬에 익숙해집니다. 만약 호르몬 공급이 끊기면 다시 기능을 회복해 남성호르몬을 만들지 못하고, 이전에 비해 대게 성기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내가 고자라니!) 사실 위의 두 가지 만으로도 약물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선수들은 성적을 위해, 그리고 일반인들도 미적으로 아름다운 근육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환상으로 약에 손을 대고 있습니다.


도핑의 영역 3. 마음을 차분하게, 평정심은 약으로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개념일지 모르지만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약물을 이용하는 종목들도 있습니다. 사격이나 양궁 같은 종목입니다.  

지난 2021년 도쿄 올림픽 중계화면에는 각 양궁 선수들의 심박수를 함께 보여줬습니다. 긴장하고 심박수가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집중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고 세밀한 움직임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경기 중 심박수가 높아지지 않는 것은 경기 결과에 매우 중요합니다. 


심박수를 낮추는 약은 생각보다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베타블로커, 성분명으로 프로프라놀롤, 인데놀이라고 잘 알려진 약입니다. 사실 배뚱뚱이도 낮은 등급의 부정맥이 있어서 간혹 복용하는 약인데, 이게 운동선수들은 함부로 먹어서는 안 되는 약 중 하나입니다. 실제 2008년도 베이징 올림픽 때 북한 사격 선수가(김정수) 소변에서 프로프라놀롤이 검출되어 은, 동메달을 박탈당했습니다. (당시 진종오 선수가 금메달 (50M 권총)이었습니다.) 


심박수를 낮춰야 좋은 종목이 있는 반면에, 심박수를 높여야 좋은 종목들이 있습니다. 대개는 단거리 경쟁 종목, 육상이나 수영, 등입니다. 올림픽 수영을 보면 많은 선수들이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입장하는데, 본인이 목표하는 심박수와 비슷한 비트의 음악을 틀면서 준비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합법적인 범위의 준비에 해당합니다. 

글을 적다 보니, 내용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벤 존슨부터 발리예바까지 말씀드렸는데 발리예바의 새로운 도핑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이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도핑의 영역: 스팀팩!! 아픔을 잊고 전진하라> <도핑의 영역: 몸의 성장을 조절한다 성 호르몬>이 이어집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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