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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Oct 20. 2022

정부에서 암검진을 강조하는 진짜 이유

by 배뚱뚱이

배뚱뚱이가 새로 병원에 근무한 지 딱 6개월이 됐습니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렸었지만 저는 암환자 중에서도 방사선 치료만 하는 의사입니다. 제가 치료하는 환자 대부분은 암환자, 그중에서도 폐암, 혈액암, 뇌종양, 그리고 소아암입니다. 사실 수도권이 아닌 곳에 있는 병원이다 보니 아직 소아 환자는 한 번도 진료한 적이 없습니다. 주로 성인 환자를 진료하는데 역시 성인 암에서는 폐암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폐암은 2015년까지는 건강검진에서 다루지 않던 암이었어요. (지금도 비흡연자의 경우 건강검진 대상 질환이 아닙니다.) 이번 주제는 건강검진, 그중에서도 암 건강검진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매년 10~11월이 되면 문자 또는 전자문서가 도착했다면서 건강검진 안 받았으니 빨리 받은 적이 있나요? 요즘 정부에서 예산이 없다는 왜 이렇게 정부는 건강검진 사업을 열심히 진행하는 걸까요? 


# 암 검진은 건강검진의 한 부분

‘건강검진=암 검진’은 아닙니다. 건강검진에서는 기본적인 혈액검사 (빈혈, 당뇨, 고지혈증 등), 건강과 관련된 설문조사 등 여러가지 구성 항목이 있습니다. 위내시경 역시 암은 물론 역류성 식도염, 위궤양 등 다양한 질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건강검진에 암 검진에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뭘까요? 역시 이럴 때는 적절한 레퍼런스를 찾는 것이 좋겠죠. 국립암센터의 국가암검진사업 페이지에 보면 이 이유가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건강검진에 암검진이 포함된 이유는 ‘국가암검진 사업 지원을 통하여 우리나라 국민의 사망원인 1위인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를 유도함으로써 암의 치료율을 높이고 암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함’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배경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는데요. 

- 세계보건기구는 의학적인 관점에서 암 발생인구의 약 1/3은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할 경우 완치가 가능한 것으로 보고하고 있음

-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 외국의 경우, 암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기 위하여 암 검진사업을 실시하고 있음

-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위암, 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은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으며,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할 경우 90% 이상 완치가 가능

- 따라서 국가차원에서 암 발생과 암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기 위하여 의료 접근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저소득층에 대한 암 검진사업이 필요


풀어서 설명하자면 '암을 일찍 발견하면 완치가 가능하니 그렇게 해보자. 그런데 모든 암을 다 하는 것은 아니고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발견할 수 있는 암들에 한해서 시행해보자!’ 그리고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해서라도 병원에 오기 특히 더 힘든 저소득층이 암 진료에 따른 재난적인 의료비 발생을 피하도록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습니다. 실제 암 검진이 시행되는 분야는 5대 암 + 폐암(흡연자에 한하여) 입니다. 아래를 참조해 주세요

이미지 출처. 국립암센터, 국가암검진 프로그램

# 돈을 아끼기 위해 돈을 써서 건강검진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뜻만 가지고 건강검진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위의 설명에도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암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으며’란 부분이 나옵니다. 즉, 이 건강검진 항목 설정 또한 돈의 논리에서 독립되어 진행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특수한 구조의 의료보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영국, 캐나다 등 구 영연방 국가나 유럽과 같이 전 국민이 강제적으로 의료보험 체계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그 나라들처럼 그 의료보험을 정부가 재정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않고 오로지 공기업인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에 맡겨서 운영됩니다. 그래서 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모든 사업은 재정적인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말이 조금 길어졌죠? 간단히 말하면 건강검진을 해서 사람들이 건강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로 인해 재정 감소가 자연스럽게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건강검진에 C형 간염 검사를 넣는 것이 좋겠다고 발표했던 논문에 있는 그래프 하나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두 개의 그래프 중, 위의 그래프를 보면 (PLoS One. 2020; 15(4): e0232186.)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것이 일시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것같이 보이지만 (녹색선) 지금의 상태로 놔둬서 C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변이나 간암이 지속적으로 조금씩 생기게 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는 돈이 덜 든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즉, 건강검진에 암을 넣는 것 또한, 어차피 우리 국민들이 해외로 이민 가지 않는 이상, 이 사람들이 암이 걸리면 그 치료비 또한 건강보험에서 지원을 해줘야 하기 때문에, 비싼 암 치료비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기 전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내시경이나, 자궁경부세포진 검사(pap smear)등을 통해서 암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비를 최소화하자는 것입니다. (사실 내시경 수가(비용)가 우리나라가 비정상적으로 싼 것이긴 합니다. 내시경은 그 위험성 등을 고려할 때 지금처럼 싸게 막 해서는 안 되는 검사이긴 합니다.) 


미국은 대표적으로 사보험이 의료보험의 역할을 하는 국가로, 개별 사보험, 그리고 고령자들의 사회보장을 위한 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에서 Annual wellness visit이라는 이름으로 건강 상태에 관한 진료를 볼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경증 내지는 예방의 목적으로 의사의 진료를 보는 것 자체가 매우 쉽지 않은 일입니다.) 환자가 암을 늦게 발견하면 보험회사 입장에서도 보장해야 할 돈이 늘어나기 때문에 환자와 보험회사 공동의 이익을 위해 암 건강검진이 시행하는 것입니다. 


# 그런데 왜 모든 암을 검사하지 않나요?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모든 국민들에게 검사를 했는데 거의 발견되는 경우가 없어서, 또는 검사가 너무 비싸거나, 증상 없이 하기에는 위험해서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암으로는 ‘췌장암’이 있습니다. 췌장암을 제대로 검사하려면 CT를 매년 찍어야 하는데, CT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방사선 노출에 해당하기 때문에 암이 생기지도 않은 사람이 매년 건강검진 목적으로 시행되어서는 안 됩니다. 위의 표에서 폐암에 ‘저선량 흉부 CT’라고 되어있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폐는 매우 적은 방사선을 이용한 CT로 촬영이 가능한 특이한 기관이거든요. 또한 몇몇 암의 경우 의심이 되면 PET-CT까지 찍어봐야 하는데 100만 원이 넘는 MRI보다 더 비싼 검사입니다. 건강검진 한 해에 받는 사람이 몇 백만 명에 이르는데, 이걸 다 해주면, 건강보험 재정이 금세 파탄이 날 것입니다. (MRI를 급여로 몇 개 찍게 해 줬다가 지금 건보 재정 고갈 얘기가 나오는 것만 봐도 예상할 수 있죠.)

# 5개(+폐암) 검사면 충분한가요? 뭘 더 검사를 하면 좋을까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폐암의 경우 최초 발병부터 전신 전이까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는 경우도 많기에 과연 2년이라는 기간이 암을 찾기에 충분이 자주 검사를 하는 것이냐는 것에 대해 아직도 논란이 많습니다. (그래서 폐암이 흡연자에 한해서 건강검진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일단! 위의 건강검진 암 검사는 그냥 기본으로 꼭 필요한 것입니다. 무조건 하셔야 합니다. 정말 암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후의 추가되는 검사는 사실 그냥 이런 인터넷 글로 고민하실 게 아니라, 내 몸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되면 병원에 가는 것이 왕도입니다. 위의 6가지 암 이외에는 그 발생률이 높지 않아 어떤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제가 공부한 내용과 경험적인 내용을 추가하자면 위의 검진 시작 나이보다 좀 먼저 검사를 시작해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추천이니 참고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B형간염 보균자 (특히 수직감염)/간염환자: 40대보다는 30대부터 간 상태를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청소년 때부터 흡연하신 분: 저선량 흉부 CT를 30대부터는 찍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여성분 중에 외할머니/엄마/이모 중에 유방암/난소암(1명이라도) 환자가 있는 경우: 유방암/난소암 검사를 조금 이르게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20-30대라 하시더라도 유방 검진과 부인과 초음파를 확인하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 엄청난 골초 (하루 2갑 이상)라면 모든 병원 가셨을 때 숨기지 말고 흡연 사실을 말하고, 특히 40대 이상이시고 단 한 번도 복부 CT를 찍어보신 적이 없다면 복부 CT를 확인하시면 좋겠습니다. (췌장암 때문입니다)


위에 내용을 쓰면서도 정말 조심스러웠던 것이, 암은 여기에 있는 것만 생기는 게 아니라서 혹시라도 위의 검사만 하시고 “나는 병원 한번 간 적이 없어”라고 할까 봐 염려가 됩니다. 이것은 정말 최소의 안전판이고, 내 몸이 이상하다면 꼭 병원에 가보시길 바랍니다.


# “나는 평생 병원 한 번 가본 적이 없어”가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처음부터 4기 (전이가 있는)로 진단된 분들이 의외로 그동안 병원신세를 진 적이 거의 없는 분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나는 평생 병원 한 번 가본 적이 없어”란 얘기는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정기 건강검진까지 싹 무시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평균 수명 65세인 시기에는 가능한 건강관리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특히 70대 이후에 발생하는 암의 경우 가족력 같은 인자가 전혀 없는, 즉 누구한테 생길지 모르는 경우가 많은 만큼, 더 힘든 치료를 하시기 전에 일찍 진료를 받으실 수 있도록, 주어진 진단의 기회는 모두 다 이용하길 바랍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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