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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건강 Jun 28. 2023

암 환자가 되었습니다.

by 배뚱뚱이

안녕하세요 배뚱뚱이입니다. 제목을 보고 다소 놀라셨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암을 치료하는 의사인 제가 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병의 이름은 갑상선암입니다. 많은 의학자들이 “과잉진단으로 인해서 너무 빨리 불필요하게 발견되는 암이다”라고도 이야기하는 그 암이죠. 그런데 막상 제가 걸리고 나니 의학을 잘 아는, 심지어 매일 암환자를 진료하는 저인데도 마음이 많이 흔들리더군요. 


# 왜 이런 병이 나에게 생겼을까? 

큰 병원에서 근무하며 의사 선생님들과 직장 동료로 지내면서 이런저런 검사를 할 기회가 많아집니다. 사실은 폐의 병변을 보려고 (예전부터 신경 쓰이던 폐 결절이 하나가 있어) 영상검사를 실시했는데 판독(촬영한 CT나 MRI등에 대해서 의학적인 평가를 하는 행위를 판독이라고 합니다)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어? 갑상선에 뭐가 보여요. 반대편에는 없는 것이라 한번 확인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갑상선 초음파를 찍었고 0.8cm의 갑상선 결절이 확인되어 그 자리에서 조직검사(큰 바늘로 갑상선을 찔러서 바늘 안에 있는 조직을 긁어냅니다)를 시행했고 정확히 5일 후에 결과가 나왔습니다. 갑상선유두암(Papillary Thyroid carcinoma). 갑상선암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흔히 말하는 예후가 나쁘지 않고 심지어 너무 자주 검사해서 과하게 발견된다는 그 갑상선암입니다. 


# 순한 암이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두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경과관찰을 하시겠냐고 하는데 도저히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경과관찰이란 일단 치료하지 않고 두고 보는 것인데 무섭더라고요. 아무리 갑상선암이 순한 암이라고 해도 크기가 커지면 충분히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는 암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크기가 작지 않았고, 갑상선 안에서도 주변부에 있어 조금만 더 자라면 옆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에 그냥 놔둘 수 없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이비인후과 예약을 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습니다. (의료진이라 더 빨리 한 것은 아니고 지방 병원이다 보니 예약이 상대적으로 수월합니다. 저한테 진료 보시는 것은 거의 당일접수도 가능합니다) 


가장 빠른 날 수술을 잡다 보니 진료 본 그 주 금요일에 수술이 결정되었습니다. 일정을 너무 빨리 잡다 보니 보호자가 되어줄 부인은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아 수술날 오전이 되어서야 병원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대로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다 보니 환자복을 입은 채로 환자 진료를 보는 웃픈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금식하고 수액을 단 채로 환자를 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암환자가 암환자를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그렇게 오전 외래를 보고 수술을 위해 병실로 다시 올라갔습니다.


# 평생 처음 하는 전신마취 

제가 지난 글에서도 한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의사가 처음 되면 병원에서 1년간 일을 배우는 ‘인턴’이라는 기간을 거칩니다. 이때 최소 2달 이상 (외과, 산부인과) 수술방에서 상주하면서 일을 배웁니다. 병실에서 올라온 환자를 확인하고 의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들 (수술부위 위치표시 확인 등)을 반복적으로 합니다. 정형외과 인턴을 할 때에는 하루에 10명 이상의 환자를 수술실로 넣는 일을 했는데, 이제는 제가 환자가 되어서 수술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수술실의 천장은 유난히도 하얗고 밝았습니다. 그리고 수술실의 수술 침대는 매우 매우 좁았습니다. 침대가 넓으면 수술하는 의사와 간호사가 시야를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에 최대한 몸에 바싹 붙을 수 있게 딱 필요한 만큼만 누울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제가 좀 몸이 큰 관계로 겨우 수술침대에 누웠고 입에 마스크가 들어오자마자 제 기억은 거기에서 중단되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저는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고 팔에는 많은 멍이 들어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강력한 인후통이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마취가 깰 때 너무 아파해서 뒤척이느라 팔에 멍이 들었고 보통은 수술실 바로 옆 회복실에서 기억이 돌아와야 하는데 추가적으로 진통제가 들어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수술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그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끝났던 것입니다. 제가 수술실로 올라간 지 3시간 30분 정도가 지났더군요. 


# 중증등록환자가 되었습니다. 

제 전화에 이런 카톡이 와있었습니다. ‘암환자가 되었으니 앞으로 5년간 암 진료비는 깎아 줄게’라는 메시지입니다. 건강보험공단에서도 인정한 암환자가 되었다는 소식이죠. 참고로 5년이란 기간이 정해진 이유는 다수의 암에서 5년 정도 재발이 없으면 그 암은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않기에 모두 치료가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라 알고 있습니다. (물론 완치 판정에 5년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한 암도 있습니다) 이제 다른 암환자들처럼 5년간 조심조심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기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 담담할 줄 알았는데…

사실 암환자들이 가지는 불안감의 상당 부분은 ‘잘 모름’에서 기인합니다. 이 병이 걸리면 도대체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다 나을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 아니 그런 걸 떠나서 도대체 이게 무슨 병인지조차도 생소할 경우 많이 불안하고 정신적인 고통이 발생합니다. 제 직업이 이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보니, 왜 생겼는지, 예후는 어떤 지 등 모든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무지에서 오는 불안감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수술하고 하루 이틀정도는 크게 마음이 불안하지도 않았고, 마치 그냥 감기 걸린 정도의 마음가짐? ‘아 감기 안 걸렸으면 좋았을 텐데’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2주 정도가 지나고 나니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더군요. 왜 인지 지금도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제가 생각한 가장 첫 번째 이유는,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이라는 것을 마주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죽음을 실제로 불러올 수 있는 병에 걸렸기 때문이죠. 


그리고 수술 이후에 운동능력이 현격히 떨어진 것도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제 체형에 상당히 맞지 않는 취미이기는 한데, 제가 나름 달리기를 취미로 하고 있습니다. 무려 풀코스(42.195km)를 완주한 경험도 있습니다. 수술 후 3주 만에 처음 동네를 뛰는데, 1km 기록이 1분 가까이 늦어졌습니다. 너무 깜짝 놀라서 집에 와서 여러 전공 서적이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전신마취를 하면 이전 심폐기능 회복에 6 ~ 8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하네요. 매우 힘들게 달리기 능력을 올려놨는데 매우 허무하게 전신마취 수술 한 번에 리셋버튼이 눌린 기분입니다.


# 5년의 여정을 시작하며

이 글을 쓰고 있는 바로 지난주에 수술 후 3개월 진료를 받았습니다. 갑상선 호르몬이 잘 만들어지지 않아서 (갑상선은 나비처럼 생겼는데 오른쪽 날개는 뗘낸 왼쪽 날개만 있는 나비 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결국 약으로 갑상선 호르몬을 채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아마 남은 평생 동안 먹어야 할 약이 하나 생긴 것 같습니다. 


사실, 저보다도 어린 나이에 더 심하고 위중한 질병에 걸리는 환자분들도 많습니다. 갑상선암 안에서도 제 병기는 매우 초기 병기인 것 또한 맞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그런 환자분들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계실지 조금이나마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의사로서 가져야 할 굉장히 중요한 덕목을 배우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저한테 오는 환자분 한 분 한 분, 조금 더 성심성의껏 진료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여러분도 무섭다고 피하지 마시고 건강검진 꼭 잘 챙겨서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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