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매일 드림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2024 수능은 대략 한 시간 조금 안 되게 남았겠네요.
수시든 정시든 기타 분야의 학생이든 올해 입시도 이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논술이 남은 친구들도 있겠지만요).
매해 치러지는 수능이지만, 올해는 유독 무게감이 다릅니다.
제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평소보다 많이 시험에 응시하기 때문인데요, 그 친구들 뿐 아니라 모두가 무사히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잔소리를 많이 하곤 하지만, 이제 정말 모든 공연을 마무리한 여러분들에게 지금부터 더 많은 잔소리를 하고 싶어요. 이제부터는 선생님이 아닌 인생 선배로서 얘기해도 괜찮죠? 조금은 길지도 모르겠네요.
우선 무엇보다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이 시험을 잘 치렀어도, 원하는 만큼 못 봤어도, 여러분은 아직 세상에 보여줄 게 많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치른 수능의 성적을 바탕으로 흔히 말하는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고, 아니면 방향을 바꿔 교과 전형으로 갈 수도 있겠죠. 그 과정에서 원하는 성취를 이루어 행복한 사람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못내 속상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엇갈린 희비 속에서, 결과와 관계없이 내가 지녀야 할 것은 '균형'입니다. 우리는 어찌 보면 저마다의 다른 상황 속에서 행복이라는 종착지로 달려가는 열차를 운행하고 있어요. 결국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다양한 길을 걷고 있는 셈이죠. 그 길이 조금 달라졌다 해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우리가 흠집이 나는 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뛰어난 면모를 보일지는 저도, 그 누구도, 심지어 여러분 자기 자신도 모를 겁니다.
제 얘기를 잠깐 하자면요, 저는 학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왔어요. 그래서인지 매년 이맘때의 학생들을 보자면, 어딘가 애틋함이 있답니다. 그랬던 제가, 어떤 계기로 글을 하나 둘 쓰기 시작했어요. 합성함수 안에 숨어들어 정의역으로 둔갑한 치역마냥, 함축적인 언어들로 글을 추려내고 이어서 파생되는 수많은 해석이 가능한 글들. 네, 그렇게 몇 개씩 적어 내려가던 시는 결국 시집이 되었고, 저는 출간 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글쓰기를 어디선가 배우지도 않았거든요. 시의 구성요건이나 기법 등은 모두 학창 시절에 배운 것들에 기반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면서 저 또한 하나 배웠습니다. "배워서 익힌 것은 모두 언젠가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요. 이 작업 전에 저는 제가 작가가 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렇게 책을 내고 나서는, 지인의 권유로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작가로 활동한 저는, 그렇게 또 한 명의 블로거가 되었습니다. 이것저것 상당히 많이 하고 있죠? 심지어 지금은 디자인 관련된 일도 하고 있답니다 ㅎㅎ
여러 개의 일들을 하고는 있지만, 이것들이 소위 '대박'이 난 것은 아닙니다. 작가이지만 베스트셀러는 아니며 심지어 지인들만 구매하는 책이고, 블로거지만 인플루언서는 아니며, 디자인 일을 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왜 하냐고요? 제가 뛰어난 게 아니라, 우리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 그리고 나한테 어떤 재능이 또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것,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더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여러분이라면, 저보다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세상에 보여줄 게 아직도 많은 원석 같은 존재입니다. 학생들 저마다 마음속 안에 있는 비밀정원이 반짝거리는 걸, 저는 보았어요.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지 말고, 여러 분야에서 멋있게 뽐내 보세요. 이 이야기를 전부 다 아울러서, 우리는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는 거니까요.
요즘 수업 중간에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공부를 왜 하니?" 이 질문에 절대다수는 "대학 가려고요."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대학에는 왜 가야 할까요? 많은 친구들이 모든 공부의 종착점을 대학으로 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는 대학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렇지 않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공부는 기본적으로 '나의 레벨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앞으로 내가 나아갈 때 어느 길이든 갈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이자 밑거름이 되는 게 공부예요. 그래서 수학 능력 시험이라는 한자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닦을 수'자를 사용하는 것이죠.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공부는 자신을 수양하고 도를 닦으며 본인의 수준을 올리는 데 작용해 왔습니다. 그것을 연결해 나가는 데 있어 가장 상위에 위치하고 있는 과정이 대학일 뿐인 것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지에 대한 각자만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마다 생각과 환경이 모두 다르기에, 그 가치관을 우리가 하나로 정의할 수도 통일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온전한 자신만의 철학과 이야기는 어떠한 상황이 와도 흔들리지 않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그런 철학을 여러분이 지녔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만약 그런 철학이 없더라도, 수능이 끝난 지금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파생되는 것들 중 하나가 진로가 되는 것이니까요.
"어릴 적 많이 아팠던 나를 잘 치료해 주신 고마운 의사 선생님처럼, 나도 누군가를 돕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친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생각의 포인트는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라,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이타적인 성향을 가진 친구가 이러한 신념을 실천하고자 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일반적인 직장에서 월급의 일부를 기부하는 형태일 수도, 쉬는 날마다 봉사활동을 펼치는 방법일 수도 있겠죠. 아예 이것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하여, 사회복지와 관련된 직업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가요? 물론, 성적이 좋아서 의대에 진학한 후 자신이 받았던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소중한 일을 펼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돕는 선하고 숭고한 행위는 최상위권인 의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다양한 방법과 모습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를 돕고 있습니다. 이렇듯 어떠한 자신만이 이루고 싶은 철학이나 가치관이 있다면, 길은 하나가 아니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나는 누구이며(정체성),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흥미), 무엇을 잘하며(적성),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가치관)." 라는 물음에 명확히 답할 수 있도록 본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한 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유하고 있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에서 제시하는 진로선택이론 또한 직업에 대한 선택 요소를 흥미, 적성, 가치관으로 보고 있습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이런 것에 대해 진지하고 깊게 생각해 볼 시간과 여유가 없는 편이라, 늘 이런 점이 안타깝습니다. 자신만의 철학을 갖춘 성숙한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수능 끝난 소감이 어때요? 생각보다 허무하지 않나요? 나름 모든 걸 쏟아부었다고 생각했던 2009년의 저도 그랬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도 허탈함만 가득했던 것 같아요. 핸드폰을 집에 아예 놓고 가서 가족들과 아무런 연락 없이 집으로 돌아간 저는, 그때 제 눈으로 목격한 것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어머님께서 거실에서 108배를 하고 계셨습니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두 다리가 부들대며 현관을 돌아보시던 어머니. 그 모습은 제 인생에서 영원히 반복될 장면입니다. 어린 열아홉의 저는 무어라 말이 없었으나, 그 장면은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형태를 목격한 것이라고 할까요? 어머니께 여쭙지는 않았지만, 아마 제가 최선을 다하라는 응원의 기도를 하셨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님이라고 다르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과의 뿌듯함 또는 아쉬움은 달라도, 여러분들의 사랑하는 마음은 세상 누구와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부모님의 세상에서 가장 커다란 우주입니다. 그렇게 소중한 여러분이 있는데, 그깟 수능 점수가 중요하겠습니까? 부모님의 인생은 우리를 따라 흘러가고 멈춘다는 사실. 살면서 갚아나가도 그 모자란 깊은 마음을 여러분 나이에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부모님의 기대에 도달하지 못한 점수였어도, 여전히 그분들에게 우리는 전부입니다. 그러니 부모님이 기뻐하셔도, 실망하셔도, 언제나 여러분은 부모님의 우주라는 것. 여러분들을 묵묵히 지원해 주셨던 부모님을 따뜻하게 안아드리는 예쁜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말이 많았는데요, 수험생 여러분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12년 간의 대장정에 대해 마침표를 찍느라 애썼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이건 끝이 아니니까 여러분들 각자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소중한 시간들을 가지시기 바라요. 휴식을 취하는 건 알아서 잘할 자신 있죠? 다사다난했던 학창 시절을 뒤로 한채, 이제 성인이라는 무대를 앞둔 여러분이 각자만의 꿈을 펼치기를 응원합니다. 이제부터 많아질 시간 속에서, 여러분들의 진짜 '나'를 발견하길 바라며,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여러분을 환영하며, 글을 마무리할게요. 부디 이 잔소리가 여러분에게 생각의 대전환점이 되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p.s. (진짜 마지막 잔소리) 지금부터 많아질 시간 속에서, 노는 것도 좋지만 놀 것 다 놀아도 시간이 남을 겁니다. 이 시점에서 여러분이 요즘 친구들이 잘하지 않는 '한자공부'를 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한자 문화권 속에 있는 우리는, 아직도 한자를 기반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고 학문이든 업무용이든 한자의 쓰임새는 굉장히 많습니다. 용어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한자 공부를 지금 같은 시기에 틈틈이 해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만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친구들이라면, 부수부터 먼저 공부를 하고 나서 이후에 한자 4급 취득을 목표로 공부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더 높은 급수를 취득해도 됩니다만, 4급 정도면 웬만한 용어 파악은 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