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2일, 백수의 하루는 쓸모없지 않았다
1년이 훌쩍 지났다. 그 전의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자의적이면서도 타의적으로 백수가 된 뒤, 이것저것 해보겠다고 덤볐다가 포기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이 둘은 키워야 하고, 사회에서 아웃사이더가 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공무원 시험도 준비해보고, 취업에 도움이 될 것 같은 공부도 해봤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에너지가 바닥이다. 무언가를 배우고 해보려 해도 마음도, 정신도, 육체도 따라주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자원봉사센터 교육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원서 접수 마감이 20일이라 부랴부랴 작성해 제출했다. 21일, 서류 합격자 발표. 보아하니 기간제라 그런지 직접 방문 접수였고, 지원자도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네 명 중 네 명이 모두 합격한 듯하다.
23일이 면접이다. 준비하면 된다.
되든 안되든, 내가 먼저 ‘도전’한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다독여주고 싶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사람이 싫어 숨어지내고, 아이들 등하원만 챙기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무조건 받지 않았다.
그 목소리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순간부터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내가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나간다는 건 참 큰 일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만, 지금은 **‘출발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아들이 유치원을 조기 퇴소했다. 7살이니 조금만 버티면 졸업인데, 그걸 못 참은 걸까?
아니다. 나도, 우리 아이도 더는 견딜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들은 아들이 뭔가 잘못할 때마다 ‘잘못한 걸 알리고, 집에서 교육하라’고 했다. 하지만 들어보면 별일이 아니다. 물건을 던졌다면 그 자리에서 안 된다고 말해주면 되고, 팬티를 보였다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차근히 가르치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보다 먼저, 우리 아이를 ‘문제아’로 낙인찍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놀다가 넘어져 등을 다쳤고, 나는 선생님께 책임을 묻지 않았다.
아이의 부주의라 생각했고, 약만 잘 바르면 괜찮겠지 싶었다.
하지만 신호를 무시한 건 아니었다. 그 다음 날, 아이는 친구에게 등을 책으로 찍혔다.
선생님은 이런 일은 알려주지 않고, 아들이 장난감을 던졌다며 “집에서도 그러냐”고 물었다.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말하고, 아들에게 그 자리에서 주의를 줬다.
그날 저녁, 아들이 등을 보여줬다. 그 전날 멍든 자리 위로 선명한 빨간 자국이 겹쳐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더는 보낼 수 없었다.
바로 그날, 유치원을 그만두게 했다.
사회생활? 안 해도 된다. 나라는 백수가 곁에 있는데, 그냥 함께 놀면 된다.
그래서 오늘, 아들과 함께 동네 번화가까지 걸어가고, 역 근처 공원에서 놀았다. 전철도 타고, 돌아오는 길엔 또 다른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너무나도 자유롭고 평화로웠다.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시간에 쫓길 일도 없었다. 함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다는 걸 실감했다.
공원에서 놀던 중, 아들이 개미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죽였다.
왜 그랬는지 물으니, “개미가 자기를 물 것 같아서”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 개미는 너를 물 생각이 없었을 거야. 그냥 자기를 방어하려고 했던 거지.
만약에 아주 큰 거인이 너를 발로 밟으려 한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 같아?”
아들은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앞으로 개미 안 죽일래.”
그래. 이렇게 말해주고, 보여주고, 함께 겪으며 배우게 하면 된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나는 지금 백수다. 돈은 벌지 못하고, 나라의 도움을 받아가며 겨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대신 시간이 있다.
그리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왜 그렇게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한다고만 생각했을까?
오늘, 나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