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요한 나의 일상을 휘젓고 가는 사람

by 벨에포크

아이들 방학을 맞아 휴가를 쓴 상태이다.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아이들 학원 시간까지 숙제를 봐주기도 하고 그림책을 읽어 주기도 하는 편안하고 따뜻한 늦은 오전 시간이었다.

갑자기 누군가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고 들어온다. 엄마였다. 우리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거주하시는 엄마는 아이들이 학기 중인 평일에 우리 집에 와서 애들을 봐주신다. 솔직히 말하면 소득이 없는 부모님의 소득 창출을 위해 애들을 봐달라고 한 것이 크다. 게다가 거동이 조금 불편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고를 쳐서 골치 아픈 일들을 만들어 내는 내가 싫어하는 아빠까지 엄마는 주중에 같이 데리고 오신다. 이러한 사정에 관해 더 긴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암튼 스트레스가 많은 상황인 것으로 요약해 보겠다.


엄마께선 보통 애들 봐주는 평일에는 우리 집에 거주하시며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내과를 다니셨다. 마침 약 타러 올 때가 되어 내과에 왔다가 우리 집에 들르신 것이다. 배가 고프다고 하셔서 점심을 차려 드리고 눈이 온다는 일기 예보를 말씀하시며 눈이 오기 전에 가시겠다고 하셨다. 엄마와 함께 있는 것이 유쾌하진 않기에 그러시라고 하셨다.

가실 채비를 하신다고 가방을 메시면서 내가 이전에 사드렸던 크로스백이 세척 후에 색이 변했다며 다른 걸 사야 한다고 하셨다. "다른 걸 사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신이 사시면 될 걸 나한테 사달라는 뜻인가? 게다가 오늘 간 내과에서 지난번에 좋아진 혈압과 당수치가 다시 올라갔다고 했다며 그 말을 나에게 하신다. 이어서 소변이 자주 마렵고 참기가 힘들다며 울상을 지으신다. 결정적으로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신으시며 또 말씀하신다.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받아서 그런지 여기 가슴이 우리하게 아프다." 나는 내키지 않는 투로 알겠다고 하고 현관문 밖을 나가는 엄마를 보고 문을 닫았다.


잠깐 집에 와서도 "가방을 사야 한다, 내과에서 혈압이랑 당수치가 올랐다더라, 소변 참기가 힘들다. 가슴 쪽이 아프다."라는 말을 쏟아내고 가신다. 부모님들은 본인이 아프면 자식 걱정 할까 숨기기도 하신다는데 엄마는 항상 그렇게 자신의 염려 거리를 자식이 알게 하고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이전에 항상 도움을 줬던 나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부모의 존재 자체가 또다시 나의 평온한 일상을 휘젓어 버린다. 30년 넘게 이어져 온, 무한 반복 무한반복, 이게 나의 업보인 것인가?

작가의 이전글5. 일상의 주파수가 맞지 않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