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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Aug 10. 2020

내 글의 쓸모

사실 나는 말하고 싶었어 

저는 늘 제가 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관중석에 적어도 한 명은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글쓰기 생각쓰기> 中, 윌리엄 진서   

그래도 내 글을 누군가 한 사람은 반드시 본다는 마음으로 공을 들였고, 그 글을 거짓말처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의 신망을 얻어 글 쓰며 생활하는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 <쓰기의 말들> 中, 은유  


내 글을 공유하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독자 덕분이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나의 블로그 이웃 P. 친구와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말들을 할 수 있었던 사람.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그렸던 이상적인 어른의 삶은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유로운 독립의 삶을 누리고, 그 삶을 브런치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 해 여름, 나는 한 협회에서 주최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인재 교육을 위한 합숙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낮에는 교육을 듣고 밤에는 입사 지원서를 썼다. 해외에 취직하기 위해서 무작정 싱가포르, 베를린 등 글로벌 도시의 채용 공고에 지원서를 넣었다. 매일 이력서를 쓰고 다음 날 거절 메일을 받는 일상이었다. 


겨울이 오기까지 몇 달을 그렇게 거절 메일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다. 회사는 관리자의 지도 없이도 실무에 뛰어들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는 것, 갓 졸업한 대학생일 확률은 스타트업이 아닌 이상 0%에 수렴한다는 것을. 회사 입장에서 싱가포르에 연고도 없고, 살아본 적도 없는 내게 비자 지원을 해가며 나를 데려오기에는, 이미 그 곳은 인재가 넘치는 곳이었다. 내가 지원하는 자리에는 몇 백 명씩 현지의 쟁쟁한 지원자들이 있었으니까. 몇 개월이면 이룰 줄 알았던 시작할 때와는 달리, 지금 싱가포르에 오기까지 세 번의 직장을 거쳐야 했고, 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브런치에 올릴 때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그래서 작년부터 블로그에 비공개 글을 썼다.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대나무 숲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힘들어서 잠이 오지 않는 날이나 회사 업무로 마음이 닳는 것처럼 느껴질 때, 글을 썼다.      


대부분 비공개 글이었기 때문에 방문자가 거의 없는 블로그였다. 내 글을 쓰기보다는 이웃들의 글을 읽는 날이 많았고, 그들 이웃의 블로그로 가지를 치면서 구경하다 P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어떤 이가 그녀의 글에서 늘 아름다운 것을 본다고, 그래서 계속 오게 된다고 말하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그녀의 일상을 담은 포스팅은 아름답다. 언뜻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녀의 창가에서 보이는 나무들은 더 푸르고, 이웃이나 동료나 일터에 갖는 애정은 마음 한 켠을 따뜻하게 한다. 가끔 하루가 길었던 날이면, P는 회색 고양이에 기대 잠을 푹 자고 털고 일어났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남 탓을 하지 않았다. 광고와 자의식이 넘치는 SNS의 세계에서 참으로 무해한 공간이었다. 그녀의 글을 보고 나면 내 일상도 좀 더 잘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P 의 일상에는 항상 초록이 많았다. 그녀의 창가 너머로 보이는 숲이 너무 예뻐서    나도 일상의 초록 풍경 들을 찍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녀가 내 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 글은 작년 가을에 싱가포르로 이주하기 며칠 전, 주말 마다 가곤 했던 댄스 스튜디오의 마지막 수업을 듣고 쓴 일기였다. 어쩌다 이렇게 춤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춤이 내 인생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연습실에서 보냈던 시간이 정말 그리울 거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었다. 


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어떤 마음일지 짐작하기도 어려우면서 괜히 눈물이 났어요. 글에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어서 그런 가봐요. 단순히 좋아하는 행위를 알게 되었다고 하기엔 너무나 크고 멋진 변화인 것 같아요. 그래서 ‘춤’이라는 커다란 돌이 인생에 굴러 들어왔다고 표현하신 문장이 참 좋았어요. 축하드려요! 읽으면서 커다란 용기 얻어갑니다.


나의 감상 어린 글을 누군가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고백을 들은 것처럼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럽고 설렜다. 이후로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쓸 때 조금 더 심혈을 기울였다. 최대한 이웃공개가 아닌,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개로 발행하고 싶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계속 이웃 공개로 글을 썼을 거다. 그런데 P가 가끔 내 글에 달아주는 긴 댓글들이 주저하는 나의 등을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나에게 글을 공개하라고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녀의 댓글들은 내 글이 꽤 괜찮다고 생각하게 해줬다. 그리고 사실은 내가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OO 님의 글을 읽으면 여러 가지 색의 천이 화려하게 회전하는 어둡고 안도되는 공간이 떠오르거든요. 그래서 이 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고, 글쓴이의 감정이 생생히 전해져와, 먼 곳에서도 OO 님을 지켜주는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요     


며칠 전 새벽에 알람이 울렸다. 그녀가 달아준 댓글이었다. 스크롤을 올리고 또 내렸다. 짝사랑하는 사람에게 긴 문자를 받았을 때처럼 읽고 또 읽었다. 그녀의 댓글은 나에게 따뜻한 밥상 같았다. 어린 아이에게 '너는 커서 크게 될 거야' 하고 말해주는 것과 같았다. 정성스럽고 진심어린 말을 야금야금 먹은 나는 든든히 배를 채우고, 글쓰기를 지속할 힘을 얻었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도,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기억하고,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주었다.      


나는 늘 마음이 급해서 앞 일을 미리 생각한다. 점심 식사를 할 때도 눈 앞의 음식보다는 후식으로 뭘 먹을지 미리 생각한다. 내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재미에 글 쓰는 것이 신나다가도, 이 글이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을지, 글쓰기가 내게 어떤 기회를 가져다줄지를 떠올린다.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 저만치 달려 가버린다. 작가가 되고 글을 출판하는 그 세계 너머는 더 특별할 것 같고 행복할 것 같으니까. 그 이후에야 비로소 나의 여정이 시작될 것 같다는 상상에 빠져버린다. 


그런데 그녀의 댓글들을 읽으면서 엄마가 해준 더운밥 한 공기를 채운 것처럼 속이 든든해졌다. 작가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점점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완성된 글을 출판하고 세간의 인정을 받는 것보다, 내 글을 이렇게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훨씬 엄청난 일이었다. 그날 이후로, 내 글이 인정받고 증명될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요조의 <나의 쓸모> 라는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세상에는 이렇게 
부를 노래가 많은데 
내가 굳이 또 이렇게 
음표들을 엮고 있어요. 


내가 글을 발행하기를 미루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내가 읽는 칼럼들, 인터뷰들, 책들만 해도 이렇게 좋은데. 굳이 내가 비슷한 지면에, 비슷한 이야기를 더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나는 글을 제대로 써 본 경험도 없고, 문법과 주술일치도 엉망인걸.      


이제 나는 내 글의 쓸모를 묻지 않는다. 누군가가 재미없다고 읽다가 말아도, 감성에 치우쳐 읽는 사람의 시간을 허비하는 글이어도, 한 명에게는 제대로 가 닿았으니까. 내 글의 쓸모로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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