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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Aug 10. 2020

순수해지는 순간

내가 춤을 좋아하는 이유 

나는 춤을 추면 순수해진 기분이 든다. 순수함이라는 것은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1시간 동안 오롯이 내 몸의 근육 하나하나, 노래, 박자에만 집중하다보면 머리가 비워진다. 외국인, 회사원, 누군가의 딸, 친구 등 내가 쓴 가면들, 즉 페르소나 (사회적 역할)에서 해방되는 기분이다.  흥이 나는 음악에 마음은 신이 나지만, 이제 막 춤을 시작한 초보자에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는 일은 없다. 그렇게 실망하려다가도, 안무를 몸에 익히느라 바빠 잡념이 끼어들 새가 없다.      


매일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있다가, 춤을 추는 동안에는 낯선 근육들의 존재를 알게 된다. 햄 스트링이 허벅지 뒤쪽에서 시작되는구나, 내 양쪽 엉덩이 밑에는 볼록한 뼈가 있구나, 점프를 하면 발바닥에 이런 무게감이 느껴지는 구나. 아랫배에 힘을 주면 한발로도 균형을 잡을 수 있구나. 내 몸 구석 구석을 탐험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몸의 세계를 헤엄치다가도, 다시 현실의 걱정들이 수면으로 떠오르곤 한다.      


‘이번 달 내가 생활비를 얼마나 썼더라.’

‘월요일에 하반기 전략 회의가 있을 텐데,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      


생각들이 스물 스물 차오를 때면, 고개를 살짝 휘젓고 정신을 차린다. 다시 아랫배에 집중한다. 안무를 배울 때면 선생님의 말을 혼잣말로 따라한다. ‘원,투, 쓰리, 원, 투, 쓰리’ 이렇게 박자를 세보기도 하고 ‘오른쪽, 왼쪽, 오른쪽, 왼쪽’ 하고 헷갈리는 발의 순서를 읊조리기도 한다. 이러면 내 몸이 더 기억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렇다.      


춤을 추면 괜히 웃음이 난다. 나는 왁킹, 힙합 같은 스트리트 댄스도 배우고, 기본기를 다지기 위해 기초 발레 동작과 스트레칭을 주로 하는 재즈 댄스도 배운다. 왁킹을 배울 때는, 내가 누군가를 유혹하는 매력적인 여자가 된 것 같아서 음악에 흠뻑 빠져 몰입하게 되고, 힙합을 할 때는 클럽에 온 것 같아서 어깨를 들썩이며 신이 난다. 그런 내 자신이 웃기기도 하고, 춤 추는 것이 즐거워서 웃음이 많아진다.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친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는 기분이랄까.      


연습실을 뒤로하고 집에 가는 길에는, 허리가 뻐근하고 온몸에 피로감이 느껴진다. 익숙치 않은 동작들을 훈련해야 하기 때문에, 안무를 잘 못 따라할 때면 조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춤 추는 시간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몸 구석 구석을 쭉쭉 뻗고 있노라면 나를 사랑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춤 추는 시간 등을 통해, 엑셀 파일과 가득찬 이메일 의 홍수에서 살아남느라 소홀했던 나의 신체를 그제서야 돌보게 된다. 지난 재즈 수업 시간에는 안 되던 피루엣 (회전)이 조금씩 발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게 보이면, 즐거운 비명이 터져나올 것만 같다. 선생님이 지난 주에 점프할 때 발바닥을 제대로 쓰지 않아서 충격 흡수가 안된다고 지적을 했는데, 오늘은 많이 나아졌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덤덤한 체 하지만 신이 난다.      

열여섯에, 그 파란 대문집 마루에 앉아 오빠의 편지를 기다리다가 내 발바닥을 쇠스랑으로 찍어버렸던 열여섯에, 나는 생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고독함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순결한 한 가지를 내 마음에 두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그걸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겠다고. 그러지 않으면 너무 외롭겠다고. 그저 살고 있다가는 언젠가 다시 쇠스랑으로 또 발바닥을 찍어버리겠다고. 

<외딴 방> - 신경숙      


<외딴방>은 신경숙 작가가 10대 시절 구로공단이라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서, 문학의 꿈을 키웠던 이야기를 담은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에게는 글쓰기가 고단하고 상처 입는 현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이상이었다. 나에게는 춤이 그렇다. 작년 봄, 처음 입시 학원의 문을 밟았고, 그 해 여름의 주말마다 고등학생들과 춤을 배웠다. 나는 춤을 잘 추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댄서 못지않은 수준에 도달해서 자유롭게 춤 추고 싶었고, 내가 이렇게 남들 못지 않게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처럼 뛰어난 댄서가 되고 싶은 욕심이 없다. 그저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고, 춤을 마음껏 배울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남들보다 잘하는 것보다는, 어제보다 조금 더 안정감 있게 동작을 소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춤을 잘 추는 것보다는 몸의 기초 근육들을 잘 다지고 동작을 제대로 이해해서, 다치지 않고 오래 추는 것이 나의 목표다.      


나의 화요일,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의 저녁이 춤으로 채워진다는 것이 황홀하다. 일을 다 못 마쳐서 수업을 다녀와서 야근을 해야 하더라도 나는 꼭 댄스 스튜디오를 간다. 스튜디오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양말을 신고, 오늘도 연습실에서 몸을 푼다. 내 인생에 순수한 한 가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춤이라는 보물이 있다는 것이 나는 정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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