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기전에는 몰랐던 것들
나는 더 이상 모국어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다. 작년 가을, 서울을 떠나 싱가포르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대학교 때부터 영어를 정말 좋아했던 나는 쭉 영어를 쓰면서 일하고 싶었다. 항상 해외로 나갈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곤 했다.
글로벌 시장에 대한 동경도 컸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둘러싼 모든 성장환경과 기존의 나 자신으로부터 걸어나오고 싶었다. 회사 생활 3년 차에 접어 들면서, 환경을 바꾸지 않으면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말버릇, 생각의 흐름, 주변인들에 대한 태도를 버리고 싶었다. 그게 잘못 되었다기보다도, 상당 수가 내가 주체적으로 택한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과, 한국 문화 및 교육의 양산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온 '나'라는 옷을 벗고, 나를 모르는 곳에서 새로 태어난 기분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당시 회사에서 딱히 일의 의미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아시아의 중심에서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일하면 좀 더 일하는게 재밌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세계로 왔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살던 시간과는 결이 많이 달랐다. 첫 번째 가정은 맞았으며, 두 번째는 틀렸다. 우선 환경을 바꾸는 것은, 실제로 가장 빨리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다. 한국에서는 나를 바꾸려고 애쓰고 노력했다면, 연고가 없는 이국에서는 아예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한 예로, 싱가포르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국가여서 인지, 개인의 개성을 좀 더 포용하는 분위기였다. 서울에서는 내가 속한 조직에 속하기 위해 기분이 좋지 않아도 밝은 표정을 유지하고, 늘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검열했다. 반면 여기서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다면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더불어, 탑다운으로 의사결정이 내려지기보다, 팀끼리 토론을 많이 하는 문화였다. 내 의견을 펼치지 않는다면, 나는 그 곳에 없는 사람과도 같았다. 가뜩이나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편이었던 나는 매번 회의에 가는 게 꼭 도살장에 가는 것 마냥 목이 조여오는 것 같았다. 한국어로도 잘 못하는 걸 영어로 하는 게 고역이었던 것도 있지만, 순응적이고 배려심이 많은 성격이었기에 논쟁을 하면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할까봐 속으로 계속 신경쓰곤 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의견이 충돌하더라도 그게 업무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다는 것을 배웠다.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거절을 해도 괜찮았다. 그렇게 나는 주위 환경에 나를 맞추는 연습을 하기 보다, 스스로를 믿고 나를 내보이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
틀린 가정은, 해외에서 일하면 내 일이 좋아질 거라는 점이었다. 당당하고 똑부러지게 세계 무대를 누비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인천 공항을 떠났지만, 정작 나는 관심 없는 사람을 붙잡고 우리 회사 제품을 파는 내 일이 여전히 싫었다. 마음에 없는 노동을 하면서 영혼이 닳아 없어지는 것 같았고, 월급과 월세를 생각하면서 그저 버텼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망가고 싶을 때마다 (도망갈 곳은 없었지만) 한국어로 된 글을 읽었다. 인터뷰이의 마음의 결이 읽히는 인터뷰,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게 하는 소설들, 나만 이렇게 힘든게 아니었구나 라는 걸 되새기게 하는 에세이들에 기대서 매일을 버텼다. 이번 주에 읽었던 에세이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에서는 저자인 박상영 작가가 뉴욕에서 체류하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는 갑자기 한국어로 된 책이 그리워져서 영화 잡지 한 권을 반복해서 읽고, 초등학교 때도 쓰지 않던 일기를 쓴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가지고 있던 책들은 다 버렸지만 그 커다란 노트만큼은 들고 왔다. 아직도 내 책장 한쪽에 꽂혀 있는 그 일기장. 그때 나는 내가 남다른 표현의 욕구를 가졌다는 것과 상상 이상으로 내 모국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모국에서 받은 영향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한국을 떠났는데, 아이러니하게 자꾸 나는 우리말을 찾았다. 내가 상상 이상으로 모국어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작가의 문장에서 내 자신을 비추어 보았다. 머릿 속이 꽉 채워지는 것 같은 책과 글들을 읽으면서 나도 이렇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마음 속 깊숙이 꿈틀거렸다. 글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지만,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잘 쓴 책을 보면 작가가 생각하는 방법이 궁금했고. 글을 시작하면서 뭘 보든 소재를 생각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되고 지루함과 외로움에 미쳐가던 나는 지금 이야말로 글쓰기를 할 최적의 시기라는 깨달음을 얻고, 매일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사실은 모든 경험과 감정이 글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군중 속에 혼자임을 느낄 때는 지금 내가 앉아있는 버스의 풍경, 들리는 소리 따위의 것들을 최대한 글로 변환해보곤 했다. 장을 보고 무거운 짐에 손바닥 가운데에 길고 하얀 선이 그어져 하얗게 질리면 이걸 어떤 단어로 묘사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오늘 냉장고에 대해 문의할 게 있어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는데 상담원이 말하는 freezer 와 freeze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10분 동안 두 단어를 가지고 실랑이를 했다. 의사소통이 안되서 머리를 쥐어 뜯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면서도, 이게 글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보라색 메모장 앱을 열었다.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하루키는 부정적인 경험이 작품 형성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말한다.
나는 그런 네거티브한 일을 맞닥뜨릴 때마다 거기에 관여한 사람들의 모습이나 언행을 세밀히 관찰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어차피 난감한 일을 겪어야 한다면 거기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도 건져야지요 (아무튼 본전이라도 뽑자, 라는). 당연히 그때는 나름대로 상처를 받고 우울해지기도 했지만, 그런 체험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무척 자양분이 가득한 것이었구나, 그런 느낌을 이제는 갖고 있습니다. 물론 멋지고 즐거운 일도 상당히 많았을 텐데,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는 건 왠지 네거티브한 체험 쪽입니다. 다시 떠올려서 즐거운 일보다 오히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들이 더 많이 떠올라요. 결국은 그런 일에서 오히려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실제로 내 일상과 경험을 관찰하고 글로 적어내는 연습을 하면서, 감정에서 한 발짝 떨어져 (1cm 나 될까) 관조하게 된다. 하루키가 말했듯, 난감한 일을 겪어야 한다면 뭔가 글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라도 건지겠다는 태도가 앞으로 나에게 많은 글들을 선물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