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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Nov 04. 2019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만드는 '기저 심리' 2

기저 생각 공간을 파헤쳐본 나의 기록


Museum SAN


지난 글에서 우리의 사고와 행동 바탕에 깔려 있는 기저 심리에 대해 간략한 소개를 했었다. 이번 글에서는 기저 심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많이 제약할 수 있는지 나의 개인적인 예를 들어 설명해 보려고 한다. 


1. 내가 현재 재직중인 직장에 신입으로 들어왔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상황에 매우 고무되었던 것 같은 기억이 난다. 매일  밤 늦게까지 공부했고, 가끔 주말에도 공부를 하거나 일을 했다. 열심히 하고 있는 스스로가 너무 좋았다.


2. 열심히 한 결과, 좋은 성과를 빨리 낼 수 있었다. 주변에서 '좋은 성과 하나 냈으니 이제 좀 맘 편하게 지내도 되겠네' 라고 했다. 뿌듯했다.


3. 좋은 성과를 한 번 냈으니 다음에도 또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리를 하더라도 열심히 했다. 생각보다 성과가 잘 나오지는 않았다.


4. 처음에 냈던 좋은 성과가 그저 운이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 잘 된 거라고 생각했고, 오로지 내가 해낸 일도 아닌 것 같았다. 지난 나의 모든 노력에 의심이 생겼고 점차 지쳐갔다. 결국 무너졌다. 예전처럼 뭔가를 열심히 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열해본 사건인데, 2번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는 사건을 전후로 나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칭찬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주변에서 인정도 받았고 칭찬도 받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나는 무너졌다. 인과관계가 좀 이상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뭘 잘 했으면 더 승승장구 하거나 최소한 기분이라도 좋던가 여유있는거 아니었어?


1번에서 4번이 되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데, 1번 시점에서의 나와 4번 시점에서의 나는 똑같이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집중력, 의욕, 마음가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사실, 저 일련의 과정은 흔히 '번아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번아웃이 아닐까 생각했고,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취미생활을 만들어 보았다. 일도 일부러 쉬엄쉬엄 하면서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다. 사실 순간순간 즐겁고 편안한 마음이 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일하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이었다. 좋았던 일이 아침에 일어나기도 싫을 정도로 싫어진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나는 저 사건의 흐름에 따라 변화했던 내 생각을 관찰했다.


그동안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나는 1부터 4까지로 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나에게 기저 생각을 하나씩 추가해 나가고 있었다. 쉽게 말하면 나에게 행복하기 위한 제약 조건들을 하나씩 덧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먼저, 1단계에서 나는 비교적 백지장같은 기저 생각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갖는 기대도 없었고, 신입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실제로 그랬다). 이렇게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매일 아침 '자 이제 뭘 해볼까?' 하는 마음은 부담될 게 없다. 잘 하면 좋겠고, 못해도 사실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편했고 즐거웠다.  


이렇게 하던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아마도 나는 '오늘 해야할 일을 끝내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 의욕이 넘칠 때는 으쌰으쌰 하면서 나의 to do list를 지워 나가는 재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 나가는 할일의 규모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커져 갔고, 지키지 못하는 할일도 생기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적당한 스트레스, 적당한 의욕 고취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이다. 성과가 생겨 버렸다. 지금 돌아보면 이 사건을 이렇게 표현하게 된다. 드디어 그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성과와 인정은 정말 꿀맛 같은 행복을 주었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것만 같은 성취를 이루어 냈고, 남들보다 더 앞서 나가고 있다는 생각에 좀 신이 났다. 그런데 여기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나는 내 기저 생각 공간에 수많은 생각을 더 추가해 버렸다. '앞으로도 이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 그러려면 '매 주/눈에 보이는/성과가 있어야 한다'. '항상/완벽한/발표를 해야 한다'. '열심히 해야 한다'. '열심히 하면 반드시 좋은 성과가 생길 것이다'...


정리해 본다. 백지장 같은 내 기저 생각 공간에 추가된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 오늘 해야할 일을 끝내자

- 앞으로도 이만큼의 성과를 내야 한다

- 매 주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

- 항상 완벽한 발표를 해야 한다

- 열심히 해야 한다

-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생긴다


이런 기저 생각 공간을 가진 나는, 저 생각들(혹은 조건들)을 만족해야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항상 열심히 살아서 그날 할일을 다 끝내고 매주 성과를 내고 완벽한 발표를 하는 사람이 어디 많은가? 내가 저런 사람이 될 가능성을 생각해 보면 사실 0%에 가깝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천재도 일중독자도 아니다. 천재나 일중독자라고 해도 저걸 만족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내 기저 심리에 깔린 저 많은 제약들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했고, 아무리 해도 만족할 수 없는 상태가 장기간에 이르자 번아웃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왜 불안한지, 왜 쉬고 있어도 스트레스를 받고 숨쉬기도 힘든 상황에 이르렀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나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불안인 것도 같았다. 불안을 나와 동일시하는 느낌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최근에 내가 기저 생각에 대해 큰 꺠달음을 얻게 된 건 바로 이러한 기저 생각 찾기 작업 덕분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아픈지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알면 적어도 내가 이비인후과를 가야 할지, 치과를 가야 할지, 내과를 가야 할지 정할 수 있다. 만약 모른다면 모르는 것 자체로 불안한 상태이지 않을까? 나 왜 이래... 하고.




기저 생각 파악을 통해 저는 잠시나마 진정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앞으로 이 과정을 모두 설명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지만, 많은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관련 서적에서 말하는 공통적인... 하나의 흐름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기저 생각은 사람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키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예전보다 그 빈도나 강도가 많이 줄어들었고, 심리적 위험에 빠졌을 때 스스로 잘 일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은 제가 다시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도록 언제든 붙잡아 주기 위한 기록이 될 것 같습니다.


-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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