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불안한데, 왜 불안한지 모르겠을 때
나는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 불안했다. 열심히 하지 않아 성과가 없어 불안했고, 성과가 없어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 될것 같아 불안했다. 불안함을 느끼는 내 모습에 불안했다. 계속 불안하면 나는 행복할 수 없을텐데. 어쩌지. 어떻게 하면 불안함을 없애지.
나는 매 주간회의마다 상사(교수님)에게 혼날까봐 무서웠다. 혼나지 않기 위해 매주 성과를 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열심히 해야 했다. 하지만 일이 매일 잘 되는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일주일의 대부분은 일을 하지 못했다. 일을 하지 못해 불안했고, 불안해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어떤 게 먼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불안했다. 나는 항상 열심히 살아야만 했고, 그렇지 않은 나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무가치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런 불안함에 빠져 3년을 보냈고, 그 과정에서 두 번의 카운셀링과 6개월간의 정신과 약물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좀 좋아지다가도, 금방 다시 불안해졌다. 나의 병명은 '범불안증'이었다. 숨이 점점 짧아지면서 숨 쉬는게 어려워지고 하루 종일 키보드도 마우스도 잡지 못하고 멍하니 열 시간을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다. 그 때는 약간의 공황 증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만 이런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나처럼 불안하고 사는게 힘들까? 그렇다고 하기에는 다들 힘들지만 즐겁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듯 해 보였다.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고 있는 나와는 대조적이었다. 어디서 이런 차이가 나오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지만 특별한 답을 찾지 못하고 역시 내 성격 탓인가 하며 결론을 내렸던 것 같다. 그 이후로도 쭉 나는 괴로웠다.
긴 시간이 흘렀다. 불안감을 그냥 일상처럼 끌어안고 살던 어느 날, 나는 발표 준비를 아예 까맣게 잊어버린 동료를 보게 되었다. 그 동료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경험은 내가 30년 넘게 가지고 있었던 사고방식을 크게 뒤집을 만한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니 어떻게 저 중요한 발표를 하는 걸 잊어버릴 수 있는 거지? 그건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고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어떻게? 왜? 그보다 놀라웠던 건 그 이후였다. 그는 빠른 시간 안에 발표 준비를 끝내고(짧은 발표긴 했다.) 무사히 넘긴 뒤, 평화로운 삶을 다시 살아가고 있었다. 나라면?
나라면 아마 발표를 잊어버린 자괴감에 몸부림치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왜 나는 저런 일을 상상조차 못하는데 저걸 저렇게 태연히 대처하고 살아갈 수 있는 거지? 나와 저 동료에게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그 차이에 집중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와 그의 차이. 그 답을 찾기 위해 책을 찾아보고 3일간 노트에 끄적거리면서 생각했다. 그 답을 찾으면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3일째 고민하던 중, 갑자기 책에 있는 이 문구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책 추천: 삶이 괴롭냐고 심리학이 물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의무는 없다.
너무 흔한 말이라 그냥 지나치기도 쉬운, 이 말이 왜 그날따라 마음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저 문장을 본 순간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을 이해했다. 그리고 약 2분여간 정말로 느껴본 적 없는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때의 느낌은 글로 표현하기 참 어렵지만 '유레카!'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진리를 깨달았을 때의 느낌이었다. 그것은 '기저심리'였다.
나의 기저심리는 내 사고와 행동을 결정한다. 이것이 오래 되면 고착화되어 자동적으로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출근을 하는 데 있어 어떠한 판단과 결정의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대부분의 우리 일상과 마음은 그 기저 심리에 따라 발생한다. 예를 들어 보자. 나의 경우에는 이러한 기저 심리들을 가지고 있었다.
아침에는 반드시 출근해야 한다.
근무시간에는 항상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
성실하게 사는 사람은 항상 좋은 실적을 낸다.
좋은 실적을 낸다면 칭찬을 받게 된다.
이것은 업무에 관련한 기저 심리지만, 그 외에도 이런 것들이 있다. 많이 먹지 않아야 한다, 잠은 꼭 자야 한다,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 항상 친절해야 한다 등등...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기저 생각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항상 나에 대해 만족스럽지 못했고, 그런 자신을 보며 자괴감과 불안감으로 고통받을 수 밖에 없었다.
가령 나의 경우엔 출근 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으면 그로 인해 하루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고, '항상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나의 기저 심리 때문에 딴짓을 하면 죄책감을 크게 느꼈다. 나는 성실하지 않은데 월급을 받아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렇게 기저 심리는 내 안에 있던 어떠한 제약이자 의무감이었다.
위 글은 제가 브런치 작가에 지원하면서 보냈던 첫 글입니다. 두 달 가까이 지난 글이지만 그 때의 기억을 살려 조금씩 써 보려고 합니다. 참고로 저는 꿈이 작가가 아니라 직장인인 평범한 대학원생입니다.
2019/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