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평형대의 끝에는 다른 세상이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원래 한국에서도 운전했었어?”

태국어 수업에서 만난 친구가 물었다.

“아니, 치앙마이에서 처음 운전했어.”

“운전면허를 여기서 딴 거야?”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응, 나 태국 운전 면허증 있어.” 겁에 질린 채 운전면허 학원으로 향했던 때가 기억나 새삼스러웠다. 그랬던 내가 운전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해보라고 부추기고 있다니, 시간 참 빠르다.


combined_img1_img2.jpeg


DAY 1.

운전면허 학원은 시내에서 꽤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른 아침 출근 행렬에 껴서 약 30분 정도를 질주한 끝에 도착했는데 학원 말고는 딱히 있는 게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큰 트랙이었다. 한가운데에는 산악용 더트 바이크를 위한 슬로프와 점프 트랙 같은 것들이 있었다. 오토바이 두 세대가 슬로프 끝에서 뛰어내렸다가 트랙을 돌았다가를 반복하며 아침부터 곡예에 가까운 점프 트릭을 선보이는 중이었다. 트랙 옆에서는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꼬깔콘을 여기저기 놓으며 다양한 커브 구간을 만들고 있었다.


건물로 들어가니 로비는 이미 다른 학생들로 가득했다. 허겁지겁 준비해 온 서류를 제출하고 안전 장비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헬멧과 목장갑, 어깨부터 팔, 팔꿈치, 몸통, 무릎, 정강이까지 안전하게 감싸줄 온갖 보호대를 받아 들었다. 장비를 하나하나 착용하자 애써 억누르고 있던 긴장감이 걷잡을 수 없이 올라왔다. 괜히 오토바이는 타겠다고 해서 제명에 못 죽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선두로 별별 불길한 목소리가 머리를 가득 채웠다.


장비 착용을 끝내자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시동 켜는 법, 주유구 여는 법부터 주정차할 때나 정비를 받아야 할 때 오토바이는 어떻게 세워 놓아야 하는지, 엑셀과 브레이크 잡는 법까지 타기 전에 알아야 할 모든 사항을 후루룩 벼락치기로 알려 주었다. 커피 한 모금 마시지 않았지만 내 뇌는 생존을 위해 완전 각성 상태가 되었다. 하나라도 놓칠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트랙으로 향하면서도 그새 까먹을까 싶어 들은 내용을 중얼중얼했다. 평소라면 낯선 사람에게 절대 말을 걸지 않는 나지만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애써 사교적인 척하며 헷갈렸던 것을 물어봤다. 예를 들면 엑셀이 왼쪽이었는지, 오른쪽이었는지 같은 것 말이다.


트랙에는 학생 수에 맞춰 수십 대의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처음에는 무게중심을 잃지 않고 오토바이를 끄는 연습을 했다. 약 30m 정도 이동해서 선생님이 있는 곳까지 무사히 가야 했다. 쉬워 보였는데 생전 처음 끌어 본 오토바이는 제일 작은 모델이었음에도 엄청 무거웠다. 핸들을 붙잡은 손이 자꾸 흔들려서 오토바이가 휘청거렸다.

반대편에 도착하자마자 이번에는 시속 10km 이하로 유지한 채 오토바이와 함께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10km는 생각보다 훨씬 느렸다. 느긋하게 산책하고 있는 친구를 마주쳐도 오토바이에서 내릴 필요 없이 오손도손 대화하며 함께 갈 수 있는 속도, 그 정도의 속도를 맞춰야 했다. 어떻게든 오토바이와 걸어가 보려고 애를 써봐도 엑셀 감이 영 없다 보니 내 발걸음은 아예 멈췄다가 달리듯 빨라지기를 반복했다. 덩치가 산처럼 큰 북유럽 친구들부터 은퇴 후 생활을 위해 태국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미국인 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렇게 다 함께 아장거리며 겨우 선생님에게 갔다.


선생님은 잘했다고 짧게 칭찬을 해주고서는 곧바로 트랙을 돌아볼 테니 오토바이에 올라타라고 했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트랙을 돈다고요? 오토바이를 끌면서 걷는 것도 버거운데 갑자기 오토바이를 타고 트랙을 돌라니. 그건 그냥 운전 아닌가. 운전은 모든 커리큘럼을 다 배우고 나면 할 수 있게 되는 궁극의 기술 같은 건데?

내가 어버버거리며 망설이는 동안 다른 학생들이 일제히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차마 못 하겠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뭘 더 알려주시든가 해야 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애써 삼켰다. 괜찮으니까 타보라고 하겠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오토바이에 올라타서 시동을 켰다. 부릉부릉. 안전 장비도 다 찼으니까 넘어져도 괜찮을 거야, 선생님들 있으니까 죽진 않겠지. 부아앙. 자신 있게 앞쪽에 줄 섰던 학생들이 먼저 출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있다가 나도 엑셀을 슬슬 잡아당겼다. 그러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 내가 달리고 있었다. 얼굴을 따라 뚝뚝 떨어지던 굵은 땀방울이 바람에 조금씩 휘날려 사라져갔다.


*

DAY 2.

그래도 어제 꼬박 8시간 정도 오토바이만 빡세게 탔더니 출발 준비 자세 잡는 것 하나는 익숙해졌다. 선생님을 따라 한 줄로 트랙을 크게 두어 바퀴 돌며 라이딩 연습을 하는데 티 한 점 없이 맑은 하늘과 새하얀 뭉게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웠다. 이제 이게 내가 보게 될 세상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감과 두려움이 점점 가라앉고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심지어 재미도 조금씩 느껴졌다.


허나 그렇게 신나게 트랙만 돌 줄 알아도 운전 면허증을 줄 거였다면 3일짜리 코스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생님은 아직 제법 찬 아침 공기를 느끼며 기분 좋게 라이딩 연습을 끝낸 우리를 보더니 웃으며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어제부터 정체를 알 수 없어 궁금했던 곳이었다. 그는 겨우 손바닥 한 뼘 너비 될까 말까 한 나무 평형대 4개를 등지고 서더니, 태국에서는 이 평형대 코스를 통과하지 못하면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설명이 끝날 때쯤, 그는 다른 선생님에게 손으로 오케이 사인을 그렸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오토바이로 평형대 위를 두어 번 왔다 갔다 했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느리게 오토바이를 모는 선생님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그러려니 한 것이다.


“하니, 괜찮아?”

1시간 가까이 평형대를 지나가는 연습만 했지만, 평형대 중간도 가보지 못하고 또 보기 좋게 넘어졌다. 오후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였다. 이렇게까지 오토바이와 바닥에 나뒹구는 학생은 나뿐이었다. 수풀 속에 처박힌 오토바이가 주변에 낮은 나무를 모조리 찢어놓을 기세로 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부터 선생님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픈 거고 뭐고 얼른 일어나서 어떻게든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워보려고 애썼다. “안돼 안돼, 그냥 둬. 먼저 네 몸부터 괜찮은지 봐.” 선생님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줘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얼렁뚱땅 괜찮다는 말부터 나왔다. 가뜩이나 날도 더운데 나 때문에 뛰어다니는 선생님께 그저 죄송하고 창피해서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오토바이로 고작 10m를 지나가면 되는 건데 그게 안 됐다. 문제는 그 짧은 거리를 약 1분 동안 일정한 속도로 지나가야 한다는 거였다. 20km 정도로 속도를 유지해도 너무 일찍 도착해서 실격이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km, 첫날 연습했던 그 10km로 가야 했다. 그러나 시속 10km를 유지하려 하면 자꾸 균형을 잃어서 평형대 바깥으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타이머를 든 선생님은 분명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었지만,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 같았다. 죽었다 깨어나도 넘어갈 수 없는 세계, 아무리 손을 뻗어봐도 닿으려야 닿을 수 없는 곳, 그 어디쯤에 있달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트랙을 달리던 같은 반 친구들도 조용해진 지 오래고 이제는 힘들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오토바이를 타본 경험이 있어서 자신만만하던 친구들도 평형대 코스만큼은 쉽게 통과하지 못했다. 평형대 코스 때문에 실기 시험에서 떨어질 것 같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40분에 한 번씩 주어지는 쉬는 시간에도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모두 말없이 물이나 몇 모금 마시다가 한숨을 퍽퍽 쉬며 평형대 앞에 섰다. 그렇게 하늘이 붉어지고 이윽고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우리는 계속 땅바닥으로 고꾸라지고 처박혔다.


*

DAY 3.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땡볕에서 하루 8시간씩 이틀이나 오토바이를 타기도 했거니와 어제 그렇게 넘어졌으니 괜찮으면 그건 그 나름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마음은 몸보다 더 무거웠다. 필기시험과 다른 실기 시험을 모두 통과해도 평형대 코스를 통과하지 못하면 운전 면허증은 빠이빠이기 때문이었다.

짝꿍은 오토바이를 탈 수 있게 된 것 자체가 어디냐며 위로했다. 하지만 나는 운전 면허증을 무지하게 따고 싶었다. 운전 면허증만 딸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토바이를 빌려서 그동안 다녔던 치앙마이 구석구석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고, 끝도 없이 달리고 달려서 가보지 못한 곳에 닿고 싶었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다 같이 간단히 트랙을 돌며 몸을 풀고 곧장 실기 시험을 치렀다. 큰 커브를 돌고, 꼬깔콘으로 만들어 놓은 작은 커브를 연속해서 돌고, 시속 50km까지 가속을 하고, 가속했다가 급정지하고, 왼발로 착지하며 오토바이를 정차하는 등등 조금 어리숙하기는 해도 아무 문제 없이 실기 시험을 쭉쭉 통과했다. 남은 것은 빌어먹을 평형대 코스뿐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선생님은 이번 코스만큼은 시험 전에 준비될 때까지 연습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익어 홍당무가 될 때까지 평형대에서 떨어지고 또 떨어지며 좁은 길에서 운전하는 법을 연습했다.


하늘 한가운데까지 솟아오른 해가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40도 땡볕 아래 오토바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까지 합쳐지자, 아스팔트 속으로 속절없이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든 태양을 덜 보려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평형대를 탈 순서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보니 알렉스가 평형대 끝에서 무사히 내려오고 있었다. 다들 어디서 기운이 났는지 본인이 성공한 것처럼 손뼉을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알렉스는 기세를 몰아 두세 번을 연거푸 성공하더니 자신감을 완전히 회복한 얼굴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죽상을 하는 내 뒤로 줄을 서더니 몇 가지 팁을 주었다.

“조금 멀리 봐봐, 그렇다고 너무 멀리 보면 안 돼. 가고 싶은 방향에 시선을 고정해야 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앞바퀴가 굴러갈 자리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엑셀을 느슨하게 풀고 오토바이 안으로 다리를 집어넣었다. 바퀴가 천천히 굴러가자, 핸들이 제멋대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팔을 쭉 펴서 고정하고 배에 힘을 꽉 줬다. 떨어질까 봐 무서워서 오토바이로 자꾸 눈이 향했지만, 그가 말한 대로 가고 싶은 곳을 뚫어져라 봤다. 평형대 끝을 넘어 나를 기다리는 선생님이 있는 곳, 시간과 함께 자란 키 큰 나무와 말도 안 되게 새하얀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그곳. 거기까지 갈 거야, 아주 느리고 무수히 흔들리지만 결코 넘어지지 않고 갈 거야. 그 짧은 순간만큼은 다른 이의 시선도, 옆에서 같이 출발한 반 친구가 통과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스무 번쯤 더 평형대 코스를 돌고 수풀에 네 번을 처박히고 나자, 선생님은 52초가 선명히 찍혀 있는 타이머를 보여주며 ‘합격!’이라고 소리쳤다. 나는 오토바이 위에서 방방 뛰다가 바보처럼 또 넘어져 버렸다. 이번에는 어쩐 일인지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하나도 창피하지 않았다.


compressed_img3.jpeg




이제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여름이 찾아갑니다.

'모든 날이 여름'의 모든 에피소드를 가장 먼저 읽고 싶으시다면 [편지 받기]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오토바이 사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