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사던 날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중고 오토바이를 사려고 알아본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눈에 불을 켜고 중고 거래 사이트를 들락날락했지만, 막상 괜찮은 물건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오토바이나 차 같은 건 사본 적이 없는데, 심지어 말도 안 통하는 외국에서 생애 첫 오토바이를 사려고 하니 불안하기도 했다. 주행거리 적당하고, 엔진이랑 브레이크도 멀쩡하고, 사고 이력 없고, 나중에 되팔 때도 잘 팔릴만한 중고 오토바이, 더군다나 디자인도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중고 오토바이를 찾다가는 1년이 다 갈 것 같았다. 이번만큼은 친구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친구들은 상황 설명을 빙자한 나의 하소연을 듣더니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어떤 오토바이를 사고 싶은지 물어봤다. 나는 곧바로 혼다에서 나온 스쿠피의 프레스티지 라인 검은색 모델 사진을 보여줬다. 애들은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친구들, 지인들에게 스쿠피 검은색을 찾는다는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깨우에게 스쿠피를 다량 취급하는 괜찮은 중고 가게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리하여 어느 화창한 토요일 아침 9시, 운전을 맡은 케이와 통역 담당인 남파, 오토바이 상태를 점검해 줄 깨우와 깨우의 남자 친구 텐까지 다함께 치앙마이 근교에 있는 중고 가게로 향했다.


한국과 달리 사방이 뚫려있는 개방형 건물 앞에 도착하자 입구부터 빽빽하게 세워져 있는 스쿠피들이 눈에 띄었다. 약 쓰 아라이 나? (뭐 사고 싶어?), 깨우는 스쿠피를 가리키며 나보다 훨씬 신난 목소리로 물었다. 나는 망설이지도 않고 코 앞에 있는 검은색 스쿠피를 골랐다. 하지만 그 스쿠피는 연식이 오래됐고, 주행거리도 너무 길어서 친구들 모두 추천하지 않았다. 검은색 스쿠피 말고는 염두에 둔 물건이 딱히 없던 터라 무엇을 골라야 좋을지 몰라 한참을 머뭇거렸다. 인터넷에서 중고 오토바이 구매 시 유의점도 찾아보고 왔으나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깨우는 나의 고뇌를 눈치챘는지 남자 친구를 슬쩍 내 쪽으로 밀었다. 오토바이라면 텐이 잘 아니까 뭐든 물어봐도 돼. 어디서부터 물어봐야 할지도 엄두가 나지 않아 조금 더 망설이던 나는 결국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내 눈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다른 게 뭐예요?


그는 두꺼운 손으로 스쿠피 바퀴를 짚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모델의 바퀴는 자전거에 달린 바퀴와 모양이 비슷했다. 반면, 최근에 나온 모델은 자동차 바퀴처럼 바큇살이 두꺼운 바퀴가 달려 있었다. 이렇게나 다른데 전혀 알아채지 못하다니 하여간 내 눈썰미도 참 대단했다. 그는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바큇살이 이렇게 얇으면 끊어지자마자 바로 멈춰요. 요새 나온 건 바큇살이 끊길 일이 거의 없고, 혹시 문제가 생겨도 몇 킬로 정도는 충분히 탈 수 있어요.


텐의 말이 멈추기도 전에 이미 내 머릿속은 달리던 오토바이가 갑자기 멈추는 상상으로 가득 찼다. 오토바이 위에 타고 있던 내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주변에 달리고 있던 자동차 위로 떨어졌다가 튕겨 오르며 마침내 땅으로 곤두박질친다. 지나가던 오토바이와 뒤엉켰다가 수풀로 처박힐 수도 있다. 순전히 행운으로 주어지는 하루하루,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다면 선택은 하나였다. 나는 망설임 없이 자동차 바퀴처럼 튼튼한 바퀴가 달린 2018년도식 스쿠피를 구매하기로 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텐은 내가 묻기도 전에 가격까지 깎아 주었고, 남파도 소유권 이전은 물론 보험 관련 작업까지 척척 진행해 주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오토바이 상태를 확인하고 서명을 마치고 나서도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오히려 신이 난 건 친구들이었다.


스쿠피1.jpg
스쿠피2.jpg


축하해, 이제 진짜 오토바이 생겼다. 친구들이 연신 손뼉 치며 말하자 그제야 샀구나, 싶었다. 이제 정말 한 오토바이의 엄연한 소유주가 된 것이었다. 가게 점원이 열쇠를 건네주는데 남파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평소에 사진도 잘 안 찍는 애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스마일~”

민망해서 갑자기 웬 사진이냐고 타박하자 남파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건 나를 위한 거야, 하나, 둘, 셋!”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갖게 된 건 정작 나인데, 걔는 왜 자기를 위한 거라고 했는지⋯. 그 말의 의미를 미처 다 헤아려보기도 전에, 둘이 눈이 마주쳐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3년 전 오토바이 택시 타는 것조차 무서워하던 나를 위해 기사 아저씨한테 천천히 가달라고 매번 부탁하던 때가 떠올라서였을까, 운전면허 학원 가서 내내 넘어지고 구르고 깨졌던 걸 알아서일까. 아니면 운전면허 합격하고 함께 축하했던 그날 밤이 생각나서였을까, 뜬금없이 면허증 못 받을 뻔해서 관공서 쫓아다니며 같이 고생했던 날이 머릿속에 스쳤던 걸까. 그런 날들을 돌이켜보니 오늘은 나에게만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남파한테도 중요한 날이 맞았다.


지금처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까지 남파뿐만 아니라 정말이지 너무 많은 친구가 도와주고 응원해 주었다. 운전 학원에서 독감 옮아서 몸져누웠다가 입원까지 했을 때 과일이랑 책이랑 바리바리 싸 오던 얘, 운전면허를 따놓고도 오토바이 빌려서 집까지 가져오는 것도 무서워서 벌벌 떠니까 땡볕 아래에서 운전 연습시켜 주던 얘, 주차 때문에 헤매는 나 보고는 한참 동안 주차하는 법을 알려주던 얘까지 잊을 수 없는 얼굴이 무지 많다. 오토바이를 고르고 타보고 사는 지금, 이 순간까지 애들 손을 안 탄 부분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토바이 위에 나 혼자 딸랑 타고 있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아직도 가끔 오토바이 위에서 긴장되는 순간에는 친구들이 하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무섭다가도 용기가 난다.


오토바이 때문에 종종 골치 아프거나 겁이 나더라도 그들과 함께 그 시간을 지날 수 있어서 할 만 했다.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생긴다며 조금은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다. 기쁘거나 설레는 일은 두 배로 기뻐하고 설렐 수 있었다. 나 혼자 알아서 술술 해낸 일이 하나도 없는데, 그것도 이상하게 좋았다. 오토바이를 타면서 오토바이만 타게 된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남파는 오늘처럼 중요한 순간은 기억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몇 장이나 연거푸 사진을 찍었다. 초등학교 입학하는 딸아이 사진을 찍는 엄마 같은 얼굴이었다. 나는 쭈뼛쭈뼛하면서도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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