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이 해피뉴이어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카운트다운.jpg


예상치 못하게 비자 승인이 지연되는 바람에 하나둘씩 일이 틀어졌다. 비행기 일정을 몇 번이나 바꾸고, 예약해 놓은 숙소는 이미 취소됐고, 태국어를 배울 학교 수업도 진즉에 시작했다. 계획보다 한참 후에 겨우 도착한 치앙마이는 다가올 크리스마스 덕분에 붐비다 못해 관광객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예 따뜻한 겨울을 보내러 온 장기 여행객들까지 합쳐져 당분간 머물만한 방조차 없었다. 도시가 한산해지는 1, 2월까지는 꼼짝없이 하루이틀 간격으로 숙소를 옮겨 다녀야 하는 처지였다.


이런 판국에 짝꿍까지 긴 휴가를 내서 치앙마이를 찾았다. 그때쯤에는 한 해 동안 지낼 집도 찾아 이사도 끝내고 여러모로 내 생활이 안정되어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기어코 방을 보러 다니게 되는구먼?” 그는 입이 샐쭉 나와서 말하면서도 내내 같이 방을 보러 다녔다. 조급해진 나는 웬만한 방이면 어디든 이사할 마음으로 치앙마이를 뒤지고 다녔다. 그러나 어디를 가나 돌아오는 답은 둘 중 하나였다. ‘방이 다 찼습니다.’ 혹은 ‘외국인은 받지 않습니다.’ 몸만 오면 편하게 모시겠다, 했던 나의 야심은 그렇게 한낱 꿈이 되어버렸다.

온종일 방을 보고 돌아오면 둘 다 녹초가 되어 아무 데나 몸을 던졌다. 대한민국의 직장인이 어렵게 계획해 둔 휴가를 왔는데, 하는 일이라고는 1년 치 짐을 이고 지고 숙소를 옮겨 다니거나 낡은 월세방을 보는 것뿐이라니. 시답잖은 농담을 나누며 웃다가도 지친 그의 얼굴을 보면 고맙고 미안해서 가슴 한구석이 뻐근했다.


몇 번이나 오가며 익숙해진 치앙마이였다. 도착만 하면 전처럼 방도 쉽게 구하고 술술 풀리리라 생각했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털어내기가 어려워졌다. 이미 수없이 많은 외국인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았을 관리인들을 이해하면서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무정한 태도가 야속했다.

가까운 태국 친구들도 각자의 사정으로 치앙마이를 비운 터라 도시가 더 낯설기만 했다.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은 한 해를 잘 보낼 수 있을지,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지 나를 거듭 헷갈리게 했다. 큰마음 먹고 결정한 치앙마이행이었는데, 역시 선택은 내리기보다 의심하는 편이 훨씬 쉬웠다.


그렇게 갈팡질팡하는 사이, 어느새 2024년의 마지막 날이 와버렸다. 집 없는 신세일지언정 그날 하루만큼은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마음 편히 마무리하고 싶었다. 도시 곳곳에서 카운트다운 행사, 풍등 날리기 등 각종 연말 이벤트도 열릴 예정이었다. 오랜만에 짝꿍과 나도 말쑥하게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여기저기 구경 다니다가 자연스럽게 풍등이 가장 많이 보이는 타패 게이트 쪽으로 향했다.


“우리 망고 먹자.”

치앙마이만 오면 매일 망고를 먹는 짝꿍이 과일 노점을 발견하고 말했다. 아무리 맛있어도 저렇게 먹으면 물릴 만도 한데, 그는 망고가 보이기만 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먹기 좋게 자른 망고를 받자마자, 그는 커다란 덩어리 한 조각을 냉큼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하며 내 입에도 한 조각 넣어주려는데 “어?”하더니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아아, 소리를 내며 한껏 벌려 놓은 입이 민망해졌다.

“피 하니! (하니 언니!)”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가장 보고 싶었던 케이와 남파였다. 반가움에 서로 덥석 껴안자 이제야 내가 알던 치앙마이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친구들도 치앙마이에 돌아온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눈에 피로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남파는 왜 이렇게 꾸미고 나왔냐며 내 옷을 보고는 가볍게 놀렸다. 케이가 상기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망고를 먹겠다고 남파가 계속 졸라서 저 앞에까지 갔다가 돌아왔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짝꿍과 나 그리고 집 앞에 잠깐 나와본 친구 둘, 이렇게 네 명이 같이 카운트다운을 하러 가기로 했다. 타패 게이트를 지나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디쯤 서 있어야 잘 보이려나⋯. 우리는 한 줄로 서서 각자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행사 무대가 설치된 중앙으로 이동했다. 하늘로 올라가는 붉은 빛이 가까워졌다.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풍등이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어어, 어! 어!”

다들 급한 마음에 한소리로 외쳤다. 바로 옆에 풍등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풍등을 띄우려고 손을 뻗었다. 케이와 남파의 손에 닿은 풍등이 높이 두둥실 떠오르는가 싶더니 금세 다시 내려오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봐도 닿지 않자, 둘이 맞추기라도 한 듯 짝꿍 이름을 불렀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큰 짝꿍이 긴 팔을 뻗어 풍등을 올려보냈다. 하늘 높이 무사히 날아가자, 우리도 모르게 신나서 박수를 쳤다.


밤하늘에 떠 있는 풍등들 때문인지 새해전야의 떠들썩한 분위기 때문인지, 마음이 자꾸만 말랑말랑해졌다. 치앙마이는 서울보다 15배나 작은 도시다 보니 아는 이를 마주칠 확률이 훨씬 높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인연’ 같은 커다란 단어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처음에 한 달 와봤던 것이 석 달, 반년이 되고 그러다 한해를 다 보내기로 하고, 수많은 관광객 중 한 명이었다가 아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고 천천히 친구가 되어가는 이 모든 게⋯. 살면서 딱 한 번, 두 번은 안 되고 딱 한 번만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새해만 되면 어김없이 힘이 잔뜩 들어가는 마음도 느슨해지고 있었다. 이맘때만 되면 꼭 뭔가를 해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정말 해내고 싶기도 해서 풀을 먹인 것처럼 빳빳해지는 그런 마음이.

다른 사람들은 한창 돈 벌고 아이를 낳거나 승진하려고 애쓰는 시간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으니, 올해는 안 그러려고 해도 더 욕심이 나던 터였다.

잘 쓰고 싶었다. 쓰고 싶은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쓰고 싶었다. 나중에 딴생각일랑 안 나도록 남김없이 써버릴 수 있기를, 그렇게 쓰인 글이 세상 어딘가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랐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가닿기를 꿈꿨다. 당신도 그런 생각 하고, 그런 마음이 들더냐고 말해주는 이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보다 더 간절한 건 없었다. 너무 간절하니까 오히려 겁이 지레 나서 손가락이 안 움직였다.

그런데 짝꿍과 케이, 남파를 보고 있으니 무거웠던 욕심이 조금은 가벼워진 것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혼자서는 영 풀기 어렵게 꼬인 마음이 가끔은 이렇게 스르륵 하고 풀려버리고 만다.

그렇다 해도 워낙 욕심 많은 성격이 어디 가겠는가. 제 버릇 못 버리고 나는 곧바로 다른 소원을 빌었다.

‘올해도 짝꿍과 같은 풍경을 보며 새해를 맞이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소중한 친구들도 함께하게 해주셔서 더욱 감사드립니다. 글로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는 한 해가 되게 해달라고 소망했는데, 그건 제가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대신 사랑하는 사람들과 저, 모두 건강한 한해 보내고 다시 함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피 하니, 12시 거의 다 됐어!”

케이가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말했다. 행사 사회자의 안내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다 같이 큰 목소리로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10!

9!

8!

7!

6!

5!

4!

3!

2!

1!

해피 뉴이어!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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