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네 고양이와 우리 고양이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난생처음 고양이와 지내고 있다. 케이가 급하게 방콕에 갈 일이 생겨 키우는 고양이를 부탁하고 간 것이다. 고양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어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 그간 고마운 일이 많았던 친구라 알겠다고 했다.


첫날, 잔뜩 긴장한 채로 문을 여니 걔네 고양이는 벌써 문에 머리를 딱 갖다 대고 밥 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챙겨온 짐도 내팽개치고 제일 먼저 밥을 주고 고양이 똥을 치웠다. 고양이 똥에서는 설명할 수 없이 특이하고 절대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냄새가 올라왔다. 친구가 일러준 대로 고양이 화장실을 들고 가서 변기 앞에 내려놓고 똥을 치우는 내내 숨을 있는 힘껏 참았다. 쉽지 않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걔네 고양이는 밥 먹다 말고 낯선 침입자를 힘껏 째려보고 있었다. 얼마 전 밥을 통 안 먹는다며 울상 짓던 친구가 떠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단식 투쟁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싶어 절박해진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료 그릇 옆에 얼굴을 댔다. 사료 한 알 삼키지도 않았으면서 고양이 사료를 먹은 척 입을 오물거리며 맛있다고 연신 거짓말을 쏟아냈다. 태국 고양이니까 “으음~ 아로이~” 라고 해봤다가 못 알아듣는 것 같길래 혹시 케이가 영어를 쓰나 싶어 “와우~ 딜리셔스~” 라고도 해보고, 나 편한 한국어로 “아이고~ 맛있다~” 라고도 해봤지만 (도대체 왜 그랬을까…) 모두 소용없었다. 아기들 밥 먹일 때 엄마들 보면 수저 들고 막 “옴뇸뇸, 아우 맛있어” 이러면 먹는 것 같던데⋯. 나는 곧 제풀에 지쳐 혼자 뾰로통 해졌다. 그래, 먹지 마. 네 손해지 뭐. 걔네 고양이는 내가 열과 성을 다할 때는 본 척도 안 하더니만 던져 놓은 짐을 주섬주섬 정리하고 있으니 어느새 와서 식사를 마쳤다.


다행히 걔네 고양이는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매우 잘 갔다. 분명히 화장실 청소는 하루 한 번만 해도 충분하다고 했는데 어림도 없었다. 특히, 내가 화장실만 치우면 걔네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쪼르르 달려가서 일을 봤다. 혹시 더러운 화장실은 가기 싫어서 참는 건가 싶어서 어쩔 수 없이 하루에 두세 번은 걔네 고양이의 흔적을 퍼 날랐다. 그렇게 밥 주고 똥 치워준다고 볼일 보다가도 헐레벌떡 들어와서 고양이 모래를 뒤적거리고 있노라면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서운했다. 아니, 내가 누구 때문에 이 땡볕에 오토바이 타고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이야. 사람이 들어와도 나와 보기를 하나, 밥 줘서 고맙다고 애교를 한 번 피우기를 하나⋯, 밥시간에 눈 마주치면 야옹야옹하는 게 꼭 밥 달라는 타박 같아서 얄미울 때도 있었다. 이럴 거면 인간은 고양이를 도대체 왜 키우는 건가.


하물며 신경 쓰이는 것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빨래 가방이든 편의점 비닐봉지든 심지어 방금 비운 쓰레기통까지 걔네 고양이는 들어갈 수 있기만 하면 자꾸 들어가 앉았다. 하다못해 운동하려고 매트만 펼쳐도 귀신처럼 알고 어디선가 달려와서는 식빵을 구워댔다. ‘저… 제가 운동을 좀 하려고 합니다.’, ‘저기… 비켜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리 공손하게 물어봐도 귀만 움직거리며 무시할 뿐이었다. 배고파서 밥 좀 먹으려고 할 때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걔네 고양이는 겁도 많은 주제에 궁금한 건 또 못 참아서 먹을 것만 사 왔다 하면 기어코 남의 밥에 코를 박고 한참 냄새를 맡고 나서야 자리를 비켜줬다. 나는 그 조그만 코가 움직이는 동안, 혹시나 얘가 갑자기 사람 음식을 한 입 크게 먹고는 탈이 날까 봐 내내 조마조마했다. 강아지처럼 한두 시간씩 산책시키는 것도 아니니까 살던 대로 살면 될 줄 알았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가장 힘들었던 변화는 아침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걔네 고양이도 낯을 가린 건지 내가 일어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주더니, 사흘 정도 지나자 쪼그마한 발로 방문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말도 엄청나게 많아졌다. 원래도 타고나길 아침형 인간은 못 돼서 아침 기상은 늘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인데, 걔네 고양이가 그런 사정을 봐줄 리가 없었다. 덕분에 매일 아침 7시만 되면 나는 있는 대로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떴다. 침대에서 기어 나와 어기적어기적 발걸음을 옮기면 걔네 고양이는 내 다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자꾸 머리를 비벼대고 골골거렸다. 하, 이러니 이거 굶길 수도 없고 참.

사료 그릇 앞에 쪼그려 앉아 조랭이떡 모양이 된 걔네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면 너무 귀여워서 얄미웠던 마음도 싹 달아났다. 걔네 고양이가 아침밥을 먹는 동안 집안에는 오독오독 사료 씹는 소리만 가득했다. 나는 고양이가 밥을 절반 정도 먹어갈 때쯤에야 화장실도 가고, 물도 마시며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저번 주말에는 아침밥 챙겨주고 나 먹을 옥수수를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걔네 고양이는 옥수수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무슨 오해가 있는 게 분명했다. 달큼한 옥수수 향이 퍼지자마자 걔네 고양이는 단숨에 전자레인지 앞으로 달려왔다. 냄새만 좀 맡다 갈 줄 알았는데 사람 부담스럽게 식탁까지 쫓아와서는 내 앞에 두 손을 딱 모으고 앉아 기다리는 것이었다. 옥수수를 뚫어져라 보는 눈빛에 못 이겨 한두 알을 줘봤는데 생각보다 엄청 맛있게 먹었다. 이제는 진짜 가겠지, 했건만 한두 알을 먹고 나서도 갈 기미가 안 보였다. 도리어 처음으로 내 손 위에 턱하고 제 손을 올려놓았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렇게 같이 옥수수 한 개를 다 먹어 치울 때까지 걔네 고양이의 까끌까끌한 혀가 내 손 여기저기를 핥았다. 마음이 물렁물렁해지는 느긋한 일요일 아침이었다.


한 번은 걔네 고양이가 새벽에 방문을 하도 많이 두들겨서 문을 열어줬다. 그러자 문이 열리기 무섭게 이아앙- 소리를 내며 머리부터 꼬리까지 스윽 비비고 들어왔다. 맨살에 닿는 털의 느낌이 놀랍도록 보드랍고 보송보송해서 그게 그렇게 좋았다. 내가 곧장 침대로 기어들어 가자, 고양이도 쪼르르 쫓아와 침대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 있다가 침대 가운데로 슬금슬금 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내 얼굴 옆에 자기 얼굴을 바짝 붙여왔다. 그런 고양이가 애틋하고 사랑스러워서 머리랑 턱 아래를 조심조심 긁어줬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스르륵 잠들었던가. 고양이는 야옹거리면서 자기 머리를 내 손에 비볐다. 다시 골골 노래를 부를 때까지 한참을 만져주다가 고양이 목에 손을 가만히 대봤다. 골골 노랫소리에 맞춰서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진동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반대쪽 손에 고양이가 자기 손을 올렸다. 아주 작고 가볍고 새하얀 솜뭉치가 겹쳐 있는 걸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꼭 손을 잡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엄청나게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불현듯 스쳤다.


요즘 내가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하고 있으면 어느새 등 뒤에 고양이가 와 있다. 눈이 마주치면 고양이는 펄쩍 뛰어올라 배를 깔고 눕는다. 여전히 나는 얘가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 얘도 자기 좋을 때만 와서 골골거리며 발라당 누워 배를 보여주지만, 이제는 나도 그냥 얘가 좋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도 전처럼 무섭지만은 않다. 얼굴 반만 한 땡그란 눈을 보면 마음이 사르르 녹아 “우리 고양이가 여기 있었네?” 하고 자꾸 말을 걸게 된다. 집에 들어올 때도 “우리 고양이가 어디 있지?” 하고, 밥 주기 전에도 “우리 고양이 배고파요?” 하는 식이다. 언제부터 우리 고양이가 된 건가 싶어서 내가 말하면서도 조금 어이없고 우습다.


우리 고양이가 되고 나니까 집 안 여기저기서 동그란 뒤통수를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 뒤통수 크기만큼 몸 한구석이 뭉근하니 따끈해지는 거 같았다. 아, 이래서 다른 생명을 돌보나. 그냥 얘가 밥 잘 먹고 똥 잘 싸고 낮잠 자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어도 흐뭇했다. 30년이 훌쩍 넘어도 나는 뭐 하나 제대로 된 구실이라도 해야 봐 줄 만 한데, 왜 고양이는 하는 일 없이 붙어 있기만 해도 이렇게 사랑스러운지.

우리 고양이랑 오래 살아도 이 마음은 똑같을까? 쟤 먹이고 입히는 게 무거워지는 날은 없으려나. 오히려 쟤 때문에라도 힘 나고 막 살아야겠다 싶고 그럴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좋아하기는 영 힘들어서 고양이 같은 귀여운 생명체를 데려다가 매 순간 의심 없이 사랑을 쏟아붓고 그 사랑을 연료 삼아 불같이 무서운 힘을 내면서 사는 걸까⋯.


이제 두 밤만 더 자면 우리 고양이는 다시 걔네 고양이가 된다. 아쉬운 마음에 요 며칠 동안 껌딱지처럼 우리 고양이랑 꼭 붙어 지냈다. 우리 고양이는 나를 별로 안 보고 싶어 하겠지만 나는 우리 고양이가 벌써 그리워서 보고 또 보고 정성스레 눈에 담는다.

입에 누가 커피를 묻혀 놓은 것처럼 연한 갈색 무늬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는 우리 고양이. 머리부터 등, 꼬리까지는 진한 회갈색과 검은색이 번갈아 가며 줄을 이뤄서 너구리 같기도 한 우리 고양이. 턱 아래부터 배까지는 흰털이 수북하고, 발바닥에는 연한 분홍색 젤리가 콕콕 박혀 있는 우리 고양이. 아아, 자는 모습도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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