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여름
고양이를 부탁했던 친구 케이가 돌아왔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오랜만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나만의 방에 돌아오자마자 금세 곯아떨어졌다. 태국에서 지내고 있는 집은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루트에 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비행기 소리가 들리는데 그날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다음날까지 늘어지게 자놓고도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감기라도 옮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난 며칠간의 행적을 돌아봤다. 헬스장, 학교, 도서관, 카페, 식당⋯. 내가 갔던 장소들과 마주친 사람들을 떠올리며 분주히 범인을 찾았다. 몇 번을 되짚어봐도 범인은 귀엽게 생긴 털 뭉치, 그 녀석뿐이었다. 새벽마다 방문을 두드리며 놀아 달라고 울고, 가구 위를 신나게 날아다니던 우리 고양이. 잠도 안 자고 그렇게 놀고도 아침만 되면 밥 달라고 보채던 우리 고양이. 우리 고양이 덕분에 근 2주 동안 잠을 푹 잔 날이 없었다. 2주가 끝나갈 즈음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무슨 무덤에서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도 늘 바빴다. 평소의 나라면 소파에 밀린 빨래처럼 널브러져 있었겠지만, 친구 집에서는 소파에 앉은 기억도 거의 없었다. 우리 고양이와 지내는 동안, 나의 새로운 저녁 일상은 이런 모습이었다. 일단 집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배고프다고 우는 우리 고양이 밥부터 챙겨주고, 마실 물도 시원한 새 물로 갈아준다. 특히, 습식 사료는 꼭 사료 그릇 말고 바닥에 헤집어 놓고 먹기 때문에 다 드시면 부지런히 바닥을 쓸고 닦는다. 물론 사료 그릇도 잊지 않고 재빨리 설거지한다 (나 밥 먹은 것도 그렇게 칼같이 치우지 않는데, 한 번 설거지를 미뤘다가 수백 마리의 개미와 전쟁을 치르고 나서는 사료 그릇은 무조건 바로바로 치우게 됐다). 우리 고양이가 부엌이며 거실에서 하루 종일 던지고 놀았을 식물 데코용 나무껍질도 치우고, 당연히 똥도 치운다. 오후에 혼자 둬서 미안하니까 밤에 한두 번은 꼭 놀아주거나 털을 빗겨준다. 기절하듯 잠든다. 흠, 피곤할 만했구나?
헤어지기 전에는 마음도 조금 말랑말랑하고 울컥했건만, 막상 집에 돌아오니 안도감과 평화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을 거야. 아아, 맨살에 느껴지는 이불의 감촉이 황홀했다. 우리 고양이의 보드라운 털이 스치던 감각이 엄청 그리울 줄 알았는데, 민망할 정도로 너무 괜찮았다.
같이 있을 땐 사랑에 눈이 멀어서 몰랐지만 고양이 키우기는 아주 손이 많이 가는 노동이었다. 정말이지 세상 피곤했네. 역시 사랑은 귀찮고 피곤한 법이다. 배터리도 작은 나 같은 사람은 이 사람 저 사람, 이 고양이 저 고양이 다 사랑할 수 없다. 아마 과로로 죽어 버리고 말 거다. 사랑은 말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나는 그걸 짝꿍한테서 배웠다.
짝꿍은 연애 초부터 뱀의 혀를 조심하라고 했다. 누구누구 남자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더라, 저런 말을 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내 눈이 초롱초롱해질 때마다 투덜대곤 했다. TV를 같이 보다가도 누가 말을 예쁘게 하는 걸 보고 내가 감탄하면 그는 금세 세모눈이 되어 ‘뱀의 혀’를 상기시켰다. 다정한 말을 유독 좋아하는 나를 알아서 하는 질투였다. 확실히 그는 뱀의 혀는 못 됐다. 듣기 좋은 말 좀 해주면 뭐가 덧나기라도 하는지 말 한마디 그냥 하는 법이 없었다. 그는 말로 대충 때우지 못하고, 몸이 고생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게 서운한 시절도 있었다.
그는 다정한 말을 건네는 대신,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해놓고 출근한다. 어디를 가야 한다고 하면 항상 구글 캘린더에서 본인 스케줄부터 체크한다. 지하철을 타고 한참 돌아가지 않게 차로 데려다주려는 거다. 오늘은 요리하기 귀찮다고 하면 열에 여덟 번은 뚝딱뚝딱 저녁을 차려 온다. 한 번은 지나가는 말로 감자수프가 먹고 싶다고 말하고 잤더니, 새벽 2시에 퇴근한 그가 4시까지 수프를 한 냄비 끓여 놓고 잔 적도 있다. 생리혈이 새서 빨랫감이 생기면 나보다는 짝꿍이 손빨래하는 일이 잦아진다. 내가 좋아하는 식물들을 안 죽게 돌보는 사람도 짝꿍이다. 예쁘다고 사놓고 죽이기만 하냐고 잔소리하면서도, 물 주고 화분 갈아주고 잎 솎아 주느라 그의 손은 분주하다.
멀쩡히 같이 잘 살던 내가 꿈 찾아 행복 찾아 태국 가서 살다 오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는 한결같았다. 이런 결정을 끝내 내릴 수밖에 없는 스스로가 싫어 몸서리칠 때도 그는 묵묵히 안아주었다. 여행 갈 겸 온다고 휴가를 쓰고 와서는 이 땡볕 아래에서 돌아다니면서 기어코 집까지 찾아 주고 갔다. 그는 지금도 나 보러 올 때마다 캐리어에 자기 옷은 안 챙기고, 나를 위한 생필품이나 화장품, 한국 책들을 한가득 챙긴다. 1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도 그는 쉽게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의 사랑을 하나하나 세다 보면 기적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쟤는 어떻게 저러나 싶다. 나 하나 씻기고 먹이고 입히기도 바쁜 현대 사회에서 다 큰 어른 하나를 이렇게 챙겨주다니.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마워서 내 눈이 그렁그렁해지면 그는 너를 사랑하니 당연하다고 한다. 나는 도대체 뭐가 당연한지 몰라서 더 아리송하고 아득해진다.
이제 나는 짝꿍이 다정한 말 한두 마디 못 해도 개의치 않는다. 사랑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오래 보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잘할 거라는 둥 매끄럽게 말 한 번 안 해도 나는 그가 누구보다도 나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음을 안다.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내 모습까지도 그가 어떻게든 껴안았음을 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있음을 안다. 심지어 우리 삶에 불편한, 어쩌면 위험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릴 때조차도.
자느라 오는지도 몰랐던 짝꿍의 부재중 전화를 보고는 하루 종일 연락이 안 되어서 걱정했겠다 싶어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고양이 때문에 엄청 피곤했나 봐” 졸음 섞인 목소리로 툴툴거리자, 전화기 너머로 “그놈 자식” 하면서 고양이한테 험한 말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양이한테까지 그러냐고 타박하면서도 웃고 있었다.
이제 여러분의 메일함으로 여름이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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