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앙깨우를 달리며 알게 된 것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치앙마이에 처음 여행 왔을 때부터 살고 있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좋아하는 장소가 하나 있다. 치앙마이 대학교 내에 위치한 앙깨우.


인문대 건물을 지나쳐 익숙하게 조류 관찰 구역으로 달려간다. 곶처럼 조금 튀어나와 있는 물가에는 언제 쓰러졌는지 알 수 없는 나무가 물속에 반쯤 잠겨있다. 이름 모를 크고 작은 새들이 죽은 나무에 앉아 반대편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어떤 날은 십수 마리의 새가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한 번에 빽빽한 나무 속에서 솟아오르듯 날아간다. 새들이 날아가는 궤적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바람 한 점 없어 매끈한 수면이 나른한 해를 받아 반짝거린다. 산등성이에 겨우 걸쳐져 있는 해가 뉘엿거리며 사라져가면 붉게 타오르다가 빛 한 점 없이 컴컴해질 것이다. 물가에 너무 가까운 자리 대신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 잠시 멈춰 선다. 여기서는 건너편에 있는 학교 건물도 고개를 꺾는 수고 없이 한 번에 볼 수 있다. 저 멀리 손톱만 한 사람들이 한가롭게 산책하며 지나간다. 단정하게 깎여있는 잔디 위에는 언제 가도 항상 학생들이 앉아 있다. 아무렇게나 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셀카를 찍다가 수다를 떨다가 한다. 무엇이 그렇게 즐거운지는 알 수 없지만 활짝 웃는 얼굴을 보면 분명 즐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들의 어리고 웃는 얼굴을 부러워한다.


*

나도 아마 조금은 웃었을 것이다. 웃는 얼굴보다는 어두운 표정으로 삼각김밥을 사러 매점에 가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구질구질했다. 아름답게 포장해 보고 싶지만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흘러간 시간을 예전보다 예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건데 아직도 대학 시절만큼은 미화하지 못했다.


오천 원.

하루에 쓸 수 있는 예산은 오천 원이었다. 교내 식당 밥이 사천 얼마쯤 했으니 갈 수 있는 곳은 매점뿐이었다. 교내 식당도 이런 판국에 학교 밖 식당에 가는 것은 사치였다. 하루가 멀다고 새로 생기고 망하는 식당이나 카페는 내 관심 밖이었다.

점심에는 대게 참치마요 삼각김밥과 육개장을 먹었다. 삼각김밥 팔백 원. 육개장 천오백 원. 저녁은 삼백 밀리짜리 커피 우유와 칼로리 바란스. 우유는 천오백 원이고, 칼로리 바란스는 천이백 원이었다. 매점에서 파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다가 정착한 메뉴는 그것들이었다. 그나마 배가 가장 오래 불렀다. 과자를 사서 펼쳐놓고 매점에서 친구와 수다를 떠는 아이들을 종종 부러워했다. 간혹 교내 카페에서 테이크아웃해 온 커피나 샌드위치를 보면 괜히 배가 아팠다. 그러거나 말거나 언제나 나는 배고프지 않도록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대학 시절을 어떻게 보내고 싶다, 같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니, 하지 못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아마 오천 원보다 더 가졌다면 나는 좀 더 마음 가는 대로 살고 싶었을 것이다. 낭만이라며 가끔은 수업도 쩨고 친구와 갑자기 바다를 보러 가거나 학교 앞 카페에서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을 수도 있다.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다고 투정하며 싸구려 옷을 사러 가고, 몇 번 바르다 말 화장품을 사서 잔뜩 꾸미고 신나게 미팅을 하고 다녔을 수도 있겠다.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 이런저런 연애를 하다가 많이 울었을지도 모른다. 미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다음 날에는 숙취에 시달리며 터벅터벅 강의실에 들어가지 않았을까. 교수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꾸벅꾸벅 졸다가 그 전날 같이 머리끝까지 술을 들이부은 친구와 아픈 속을 달래러 해장국 집에 갔다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럴 수 있었다면 응, 참 좋았겠다.

교복을 입어서 더 앳돼 보이는 학생들의 그을린 얼굴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한참이나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해는 산 뒤로 숨어 버린다. 새들도 모두 떠나고 없다.


*

대학을 졸업한 지 5, 6년이 지난 후, 먼 이국까지 와서도 대학가를 서성거리던 나를 마주하고 나서야 그 시절이 구멍으로 남았음을 알았다. 막상 그때는 하루하루 넘기는 데 온정신이 팔려서 뭘 놓치고 있는지 알아챌 여유가 없었다. 제대로 된 밥도 사 먹고, 따뜻한 지붕도 내 머리 위에 스스로 얹고 나니 소중한 시간이 그렇게 후루룩 게 눈 감추듯 사라졌다는 걸 실감했던 것 같다. 그건 가지 못해서 늘 아쉬워했던 유럽 여행이나 교환 학생 프로그램, 그 이상이었다. 스쳐 지나갔어야 하는 시절인데, 제대로 겪고 지나지 못해서 어떤 영구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떤 결핍은 채워주면 사라지지만, 그렇지 않은 결핍도 있다. 아무리 대학에 발 하나 걸쳐놓고 뭘 배우고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걔네 얼굴을 뚫어져라 봐봤자 잃어버린 시절은 잃어버린 시절로 남는다. 수업 시간에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도, 학식에서 밥 먹는다고 줄을 서 있어도, 시간 지나고 또 바보같이 사람한테 데여도⋯. 그 나이의 내가 그 나이의 다른 이들과 함께여서 일어나는 일들이, 느끼고 배우는 일들이 있다는 걸 낙엽이 질 때쯤에야 겨우 깨닫는다. ‘대학’이라는 동일한 공간에 돌아와도 지나간 시간은 이미 내 손을 떠났고,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이처럼 자명한 사실을 나는 또 겪어보고야 안다. 그러니까⋯ 이번에야말로 진짜로 안다.

얼마나 많은 구멍으로 인생이 채워질까. 그중에서 내가 채울 수 있는 건 몇 개나 될까. 얼마나 많은 당연한 사실을 기어코 겪어봐야 배우게 될까.


나는 여전히 앳된 학생들이 끼리끼리 잔디밭에 앉아 노닥거리는 풍경을 보며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조류 관찰 구역을 둥글게 돌아 빠져나간다. 반대편까지 숨 참고 한 번에 달려서 건너가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다리도 지난다. 법대 건물 앞 호수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주차해 놓은 오토바이로 가서 물을 한 모금 마신다.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느라 새가 날아갔는지 뭘 보고 있는지 그런 건 안중에도 없다. 그래도 늘 산등성이를, 잔잔한 수면을, 학생들의 얼굴을 눈에 담는다. 앞으로 다시 박차고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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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모든 날이 여름을 연재 중인 하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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