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깨는 아주 넓고, 넓지 않다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어려서부터 길쭉하고 여리여리하고 뼈대가 작은 여자애들을 부러워했다. 내 몸은 모든 면에서 정반대였다. 어딜 가나 키는 가장 작고, 다리는 잘 붓기까지 해서 원래보다 더 두껍고 짧아 보였다. 쇄골이 다른 애들보다 좀 더 긴 데다가 어깨까지 직선으로 곧게 뻗어 덩치도 더 커 보였다. 특히, 어깨와 등은 내 몸에 대한 수치심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 오랫동안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적어도 내 눈에는 나와 신장이 비슷한 여자애 중에서 나보다 기골이 장대한 애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왜곡된 시선은 20대까지 끈질기게 이어졌다. 나보다 키가 30cm나 큰 건장한 남성보다 더 커 보일까 봐 늘 어깨를 조금 말고 다니기까지 했다. 얼마 전 그 건장한 남성과 어깨를 대보고 나서야 그의 어깨가 내 어깨보다 한 뼘은 족히 더 넓다는 사실을 10여 년만에 깨달았다. 내 어깨가 그의 어깨보다 더 넓을 리 없고, 내 흉통이 그의 흉통보다 더 클 리 없고, 내 허리와 다리와 팔이 그의 것보다 더 두꺼울 리 없는데⋯. 여태껏 내 몸이 그렇게 커다랗다고 믿으며 살았던 것이다.


그토록 못마땅해하고 불편해하던 몸에 대해서 처음으로 긍정적인 느낌을 받기 시작한 건 헬스장에서였다. 그건 너무나도 혁명적인 느낌이어서 나는 이런 글을 쓰기도 했다.


(...) 쑥스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헬스장에서 나는 나를 꽤 좋아한다. 운동할 때는 정말이지 조금 팔불출이 된다. 특히, 제 몸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한참 헤맸던 동작들이 잘될 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있는 줄도 몰랐던 견갑과 광배로 야무지게 등 운동을 하다 보면 나한테 푹 빠지는 것이다. (...) 건강하고 탄탄하고 활력 넘치는 몸,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가 줄 수 있는 몸,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몸, 겉모양도 대단히 크거나 작거나 비틀린 구석 없는 보통의 몸. (...) 도드라진 삼각근을 발견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자꾸만 내가 좋아진다.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 몸에 대한 경이로움과 그로 인한 엄청난 자기 긍정이 이어졌다. 글 속에서 내 몸은 그저 건강한 보통의 몸이었다. 드디어 생긴대로, 원래 크기대로 내 몸을 보고 있었다. 문장에서 환희에 가까운 기쁨이 느껴졌다.

동시에⋯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작 몇 개월 전에 쓴 글인데, 읽는 내내 그렇게 생경할 수가 없었다. 저 때 느꼈던 자기애의 감각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았다. 과거의 나는 이미 완벽한 타인이었다. 나는 그 타인이 진심으로 부러워서 조금 슬퍼지고 말았다.


내 몸을 둘러싼 망상이 다시 시작된 건 저 글을 쓰고 세네 달 정도 지났을 때였다. 상체 운동에 진지하게 임하고 반년쯤 지나 한참 재미가 붙었던 시기였다. 심지어 등 운동을 하는 날이 제일 좋아지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이미 두어 해 동안 성실하게 헬스장을 다녔지만, 생전 처음으로 무게와 횟수도 날짜별로 기록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열정적으로 운동했다. 등이나 팔의 모양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예상하지 못한 건 변해가는 몸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었다. 근육이 아주 조금 커졌을 뿐인데, 나는 어느새 또 내 몸을 미워하고 있었다. 웬만한 남자보다도 더 넓고 우락부락해진 어깨와 등이 끔찍했고, 하루가 멀다고 통나무처럼 단단하고 두꺼워지는 허리도 몽땅 싫어졌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었다. 짧은 시간에 몸이 그렇게 달라질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머리 묶느라 양팔을 높이 들었다가 누가 내 팔을 보면서 놀라기라도 한 날이면, 그 모든 게 다 진실 같았다. 내 몸무게보다 무거운 바벨을 드느라 머리가 텅 비었는데도 ‘와, 너 팔이 정말 크다.’ 같은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꾸준히 훈련해서 만들고 있는 팔인데,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팔인데⋯. 나는 내 팔도 수치스러웠지만, 여전히 내 팔을 숨기고 싶어 하는 나 자신도 수치스러웠다.


(...) 건강하고 탄탄하고 활력 넘치는 몸, 원하는 곳 어디든 데려가 줄 수 있는 몸,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몸, 겉모양도 대단히 크거나 작거나 비틀린 구석 없는 보통의 몸. (...) 도드라진 삼각근을 발견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자꾸만 내가 좋아진다.


자꾸만 자기가 좋아진다니. 이 낯부끄러운 줄 모르는 여자가 진짜 있긴 했나. 더 이상 작아지려고 애쓰지 않던 여자, 세상에서 좀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해도 된다고 말해줬던 여자, 언제까지고 머무를 줄 알았던 여자, 언제까지고 기다릴 수밖에 없는 여자.

그녀가 남겨둔 활자만이 덩그러니 남아 그 여자가 존재했다고 알려준다. 그 신기루 같은 흔적이 서글프기도 하고, 어쩐지 내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만큼이나 오래되어 지겨운 이 수치심이 반복되는 무언가라면 나도 그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모든 날이 여름을 연재 중인 하니입니다.


'모든 날이 여름'의 뉴스레터에서는

브런치에서 공개되는 이야기 외에도 배경이 된 장소나 치앙마이에서 지내는 일상 팁,

다 적지 못한 뒷이야기 등을 짧은 편지로 덧붙여 매주 수요일, 가장 먼저 보내드리고 있어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세요. 더 가까이서 만나고 싶습니다. :)

[오늘부터 여름 편지 받기]



목요일 연재
이전 20화내가 앙깨우를 달리며 알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