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게이트의 여름밤

모든 날이 여름

by 하니Hani

누군가 노스게이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치앙마이의 대표 관광지라고 답할 것이다. 단순히 재즈바라고 하기에는 치앙마이에 온 여행자라면 모두 한 번쯤은 가보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나 뭐라도 듣던, 재즈는 어렵고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나 같은 사람도 가보는 곳이다. 거기서 여름내, 팝 100 차트 바깥의 음악을 들었다. 난생처음 드럼에 홀리고, 색소폰과 트럼펫, 플루트 같은 관악기가 얼마나 낭만적인지 알게 되었다.


처음 노스게이트에 갔던 날,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탓에 들어가기 전부터 약간 질려 있었다. 가게 앞 도로까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있던 것이다. 이 끈적하고 더운 날씨에도 공연을 보기 위해 좁은 인도에 간이 의자를 놓고 앉은 사람들과 아스팔트 도로 위에 선 채로 맥주나 칵테일을 홀짝거리는 이들이 빽빽하게 입구를 막고 있었다. 간신히 사람들을 헤치고 바에 들어가니, 비좁은 사방이 서로 다른 언어로 터져 나갈 것 같았다.


운 좋게도 무대 바로 앞, 딱 하나 남은 의자를 차지했다. 재즈와 바, 둘 중 어떤 것과도 친하지 않은 나는 촌스러운 티라도 날까 봐 잔뜩 긴장했다. 괜한 어색함에 잘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로 몇 번 입술을 적시고 있는데, 자연스럽게 인파를 비집고 들어오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뮤지션들이었다. 곧장 검은 가방을 열어 악기를 꺼내 세팅하고, 음향 체크를 하더니 아무 말 없이 연주를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실내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무릎에 올리고,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귀를 기울였다.


무대 중앙에서 드럼이 베이스 비트를 만들어주자, 베이스가 둥둥거리며 합류하더니 일렉 기타, 건반, 색소폰 순으로 소리를 겹겹이 얹었다. 색소폰에 공기를 불어 넣어 천천히 소리가 부풀어 오르자, 밤이 짙어지는 것만 같았다. 언뜻 들으면 작은 뱃고동 같기도 한 그 소리는 수면을 미끄러지듯 음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사람들 사이로 둥실둥실 떠다녔다. 아, 색소폰이야말로 여름밤을 위한 악기였다. 여름밤과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소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 장단만 맞춰주던 드럼이 스틱을 높이 들어 북소리를 내며 솔로 연주를 시작했다. 둥 둥, 탁탁 타다닥 하는 소리만으로도 박자만 바꿔가며 사람들을 빨아당겼다. 그렇게 악기마다 돌아가며 솔로 연주를 할 때면 아는 노래도 모르는 노래가 되어 처음 들어보는 즐거움을 가져 다줬다. 함께 연주하는 뮤지션들도 그때만큼은 관중이 되기도 했다. 그들 역시 연주가 정확히 어떻게 흐를지 모른다는 듯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혼자 다른 시공간에 있는 것처럼 빠져서 연주하는 멤버를 보며 박수 치거나 휘파람을 불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솔로 연주하는 멤버를 받쳐주며 합류하고 빠질 지점을 기다렸다. 그들 사이를 오가는 눈짓과 머리카락을 타고 내리는 굵은 땀방울, 노래의 마지막에 다다를 때면 어김없이 터지는 웃음마저 연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악기 소리가 점점 작아지면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는 발을 구르고, 누구는 아르르르 거리는 소리를 냈다. 박수를 치고, 휘파람을 불었다. 밤이 새카매지도록 단정하게 구두까지 신은 이와 드래그 헤어로 히피 분위기를 한껏 풍기는 이가 다 같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거렸다.


거기서는 누구 하나 뻣뻣한 사람이 없어 보였다. 악기를 든 사람도, 듣기만 하는 사람도 모두 어딘가 부드러운 구석이 있었다. 연주가 살짝 삐끗해도 괜찮았다. 안 괜찮을 이유가 없었다. 노래는 계속되고, 누구도 실수에 연연하지 않고, 그 시간은 이내 어떤 형태로든 완벽해질 테니까⋯.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나도 마음 놓고 그들을 따라 즐기기만 하면 됐다. 나는 자꾸만 어디론가 흘러갔다. 그렇게 내 안에 무언가가 풀어 헤쳐졌다.


말랑해지고 넉넉해진 틈새로 슬픔이 무심코 스며들었다. 너무 좋은 것들이 나를 종종 서글프게 하는 방식 그대로 준비할 틈도 주지 않고 덮쳐왔다. 영영 함께해주기를 소망하게 하는 것들이 결코 지속될 수 없음을 알기에 애달파지는 마음이 강물처럼 차올랐다. 정석과 변주를 내키는 대로 버무려 만든 그 음악은 오로지 그날 밤의 것이었다. 똑같은 멤버가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곡을 연주한다고 해도 결코 같을 수 없는, 오직 그 순간의 것이었다. 터질 듯이 뛰던 심장과 그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만든 분위기도 그날 밤이 지나면 함께 사라질 터였다.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해도 붙잡을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지루한 모든 건 그대로인 것 같은데, 좋은 것들은 도무지 그대로 있어 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날 밤, 그 유일한 음악을 그때의 내가 분명히 사랑했다.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좋아했다. 평생 데리고 살아온 내가 기분 좋게 낯설어졌다. 좋은 밤이었다.




안녕하세요, 모든 날이 여름을 연재 중인 하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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