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여름
이게 다 무라카미 하루키 탓이다. 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한국에서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며 이 글 대신에 코드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시계를 작년으로 돌려 보겠다. 때는 2024년 8월 15일 광복절. 금요일 하루만 연차를 쓰면 광복절인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4일간의 연휴를 즐길 수 있었다. 늦잠이나 자면서 밀린 업무를 좀 해두는 게 좋을지 아니면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지 고민이 됐다. 그러던 차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로지 글이 중심인 일과를 보내고 싶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다음날 쓴 내용을 다 지우는 한이 있더라도, 매일 원고지 5매 분량의 글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고지 5매는 공백 포함 약 1,000자 분량이고, 이는 구글 독스에서 폰트 11, 줄 간격 보통으로 작성했을 때 A4용지 1장에 약간 못 미치는 양이다. 대략 4문단 정도를 쓰면 오늘도 하루키만큼은 썼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정말 멋진 말처럼 들렸다. ‘휴, 정말 피곤한 하루였어. 하지만 하루키만큼은 썼지.’ 그런 말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니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리하여 나는 뜬금없이 4일간 하루키처럼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반나절은 오직 글만 쓰고, 나머지 반나절은 달리기와 독서 그리고 음악 감상을 하기로 했다.
그 후 4일간은 매일 한 가지 깨달음을 얻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쓰고 싶은, 아주 명확한 이야기가 있다는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라는 깨달음,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원하지 않아도 그런 배움이 밀려왔다. 4문단을 채우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핸드폰 방해 금지 모드를 껐다가 켜기를 반복하고, 손톱이나 앞머리가 너무 긴 것 같아서 당장 자르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했다. 비슷한 문장을 아주 느리게 썼다가 지우고, 지웠던 문장을 똑같이 다시 쓰며 시시한 잡념들과 싸웠다. 누구도 내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고, 이 세상은 내 이야기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내 이야기에 딱히 어떤 의미가 있지도 않다는 생각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해가 뉘엿뉘엿 지면 진이 빠진 채로 달리기를 하러 나갔다. 겨우 살아남은 문장들을 곱씹으며 한 발 한 발 내디디면 숨통이 조금씩 트였다. 트집 잡고 자책하고 자조하던 마음이 땀과 함께 빠져나가는 듯했다.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나면 하루 더 해볼 힘이 생겼다. 확실히 즐거워 보이는 하루는 아니다. 그런데⋯ 좋았다. 그게 문제였다.
정리된 텍스트를 보면 소중했던 시간과 사람들이 살아났다. 햇살이 부서지며 반짝이고, 웃음소리가 들리고, 땀이 흘러내렸다. 그 순간으로 다시 빨려 들어가 그때의 행복을 전부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건과 사람을 남길지, 어떤 표정으로 기억할지 정하는 일은 내가 해본 어떤 일보다 특별했다. 그건 머릿속에서 계속 리플레이되는 장면들을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었다. 그건 서사를 만들고,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4일간의 하루키 실험이 끝날 때쯤 역시 못 해먹겠다며 때려치우기를 기대했던 마음 한구석에 절망이 피어올랐다.
연휴의 마지막 날, 방에 돌아온 순간을 기억한다. 쭈그려 앉아 한참을 울었던 그 순간을. 너무 많은 것들이 두려웠다. 지금까지 애써 쌓아온 것들을 내려놓을 내가 두려웠고, 많은 이가 읽어주길 바랄 나의 욕심이 두려웠고, 혹여나 누군가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려웠다. 또다시 궁핍해지는 것도 두려웠다. 그렇게 두렵다면서도 기어코 4일간의 하루키를 훨씬 긴 시간 동안 반복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이 미웠다. 너는 늘 이렇게 네 인생에 훼방을 놓지, 내가 내게 말했다. 마치 어떤 길이 정해져 버린 느낌이었다. 온 우주에 나와 그 길만 남은 것 같았다.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데도 거부할 수 없는 길, 치앙마이에서 매일 혼자 빈 벽을 노려보며 쓰는 지금의 삶으로 이어진 길이었다.
이쯤에서 한 가지 정정할 것이 있다.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아무 잘못이 없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그 언저리를 한참이나 맴돌았다. 그저 그 길로 들어서기까지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애초에 반년 가까이 글방에 다니며 고치고 싶은 글, 쓰고 싶은 글이 쌓여 있지 않았다면 4일간의 하루키 같은 걸 생각했을 리가 없었다. 글방도 어느 날 갑자기 간 게 아니었다. 월급 받는 일을 하다 보면 매번 쓰기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글 쓰는 괴로움을 나누고 싶었고, 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욕망을 가진 다른 이들이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낯선 지구에 떨어진 외계인 같은 기분을 그만 느끼고 싶었다. 글방 이전에도 이미 남들에게 조금씩 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건 너무 창피하면서도 두근거렸고, 왜 하고 싶은지 이해가 안 되면서도 계속하고 싶은 무언가였다. 나는 오늘을 향해서 걷고 있었다. 이 책상 앞에 앉으려고 먼 길을 돌아오는 중이었다. 이제는 보인다.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은 말이다. 아주 오랫동안 글쓰기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자주 하고, 잘하고 싶었다. 어린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남몰래, 그리고 나도 모르게.
버리면 망가지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버려지지 않는데 애써 버리려고 하는 마음. 이를테면 쓰고 싶은 마음⋯. 가지고 있으면 망가질 줄 알았는데, 가지고 있어서 망가지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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