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여름
치앙마이에 내가 꼭 필요한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친구가 키우는 고양이, 레미일 것이다. 매달 출장 가는 친구를 대신해 짧게는 사나흘, 길게는 열흘씩 고양이를 봐준 지 어언 1년이 되어 간다.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친구 집에 들어서면 레미가 꼬리를 바짝 세우고 반갑다며 마중을 나온다. 자다 일어나서 졸음이 덕지덕지 묻은 얼굴을 하고서는 몸을 쭉쭉 늘이면서 나올 때도 있다. 레미가 몸으로 왔어?, 보고 싶었어,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손 냄새를 맡게 해주면서 답한다. “아이고, 우리 애기. 마중 나왔어?” 레미가 손 냄새를 다 맡고 얼굴을 비비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인다.
레미는 주로 아침에 만져달라고 조른다. 기절하듯 자고 있으면 침대맡에 와서 조용히 ‘아옹-’ 하고 깨운다. 핸드폰 알람 소리는 잘 안 들려도 희한하게 레미 소리에는 눈이 번쩍 뜨인다. 눈만 떴을 뿐이지 무지 졸리고 일어나기는 싫으니, 나는 배고픈 애를 꾀어다가 밥 굶기고 5분이라도 더 잘 요량으로 침대를 톡톡 두들긴다. “이리 와, 자자.” 레미는 침대에 사뿐히 올라와서 자신 있게 궁둥이를 드밀고 고롱거린다. 정작 궁둥이 만져주는 건 싫어하면서 꼭 궁둥이를 드민다. 얼굴을 쓰다듬어주면 한참을 좋다고 고롱거린다. 침대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얘는 화장실까지 따라와서 붙어 앉는다. 내 발 옆에 식빵 굽는 자세로 앉아 더 만져달라고 고롱거린다. 많이 만져줬으니 나가자고 해도 듣는 척도 안 하고 가만히 버틴다. 나는 박탈 당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미련과 약간의 수치심을 느끼면서 어정쩡한 자세로 턱이며 미간이며 골고루 만져준다. 얘는 좋은지 눈을 꼭 감고 즐기다가 눈을 천천히 떴다 감았다 한다. 그게 사랑한다는 말이라는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나도 눈을 천천히 떴다 감았다 하며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아침에 아기 울음소리로 깨고, 화장실도 혼자 못 간다는 친구들 말이 떠오르면 좀 우습다. 친구들처럼 아기를 낳은 것도 아니면서⋯. 이것보다 조금 더 많이 시끄럽고 눈물 젖은 아침이려나, 하고 상상해 보게 된다. 레미가 방금 부어준 사료를 혼자 척척 먹는 모습을 보다가 사람 아기는 한참을 키워야 겨우 숟가락질한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서둘러 상상을 끝낸다.
최근에는 산책하다가 희한한 생각이 들었다. 나랑 짝꿍의 좋은 점을 반씩 섞어서 아기를 만들면 우리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 태어나겠다는 얼토당토않는 생각이었다. 전에도 아기 생각을 어쭙잖게 해보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아, 그 아이를 얼마나 사랑할까 싶어 마음이 아득해지다가 동시에 집채만 한 두려움이 입을 쩍 벌리고 밀어닥쳐왔다. 나는 반항도 못 해보고 그대로 꿀꺽 삼켜졌다.
온전히 돌보고 책임져야 하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건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니까, 가까이서 본 적도 없는 일이니까, 그런 사랑은 어떻게 하는 건지 도저히 감도 오지 않았다. 내 상상력은 너무나도 빈약했고, 익숙한 물음표들만 머리를 가득 채웠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 해서 걔가 미우면 어쩌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없어서 걔가 미우면 어쩌지? 선택은 내가 내린 게 맞는데, 걔는 태어나기만 했는데, 애꿎은 아기를 미워하면 어쩌지? 그러면 그때는 나 정말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여전히 그 정도의 사랑과 돌봄을 미움 없이, 일방적으로, 평생 할 자신이 없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니 레미가 자기 침대에서 몸을 말고 자고 있었다. 고개를 빼꼼히 들어 나를 확인한 레미는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작은 코를 킁킁거리기에 레미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서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검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때 촉촉한 혀가 얼굴을 할짝 핥는 느낌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더니 나보다 더 깜짝 놀란 레미가 보였다. 그러게, 왜 그렇게 경기를 일으켜서는 레미를 겁줬을까, 나는 새가슴인 내가 조금 미워졌다. 많이 가까워졌지만, 얼굴을 핥아준 건 처음이라서 나도 모르게 찡해져 버렸다.
레미가 처음 핥아준 건 그보다 몇 개월 전, 나를 보러 왔던 짝꿍을 공항에서 배웅하고 온 날이었다. 공항 화장실에서 혼자 울다가 고양이 밥 주러 가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친구 집에 왔는데, 여느 날처럼 반갑다고 마중 나온 레미가 몸을 점점 낮추더니 새하얀 배가 다 보이도록 발라당 누웠다. 나도 얘를 따라 나란히 누워서 가만히 눈을 보고,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고, 말랑말랑한 젤리를 만지고, 짝꿍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한테는 하기 어려워서 안 하는 말들. 그가 떠나서 내가 얼마나 슬픈지, 벌써 얼마나 그리운지, 이럴 때마다 얼마나 내 마음이 흔들리는지. 정말이지 울기는 싫었는데, 눈물이 찔끔찔끔 새어 나왔다. 얘는 조용히 누워서 눈을 가늘게 뜨고 그저 들어주었다. 젤리 만지는 것도 싫어해서 발을 만지면 은근슬쩍 자리를 뜨곤 하는데 그날은 어디 가지도 않고 한참을 같이 누워있었다. 그러고는 옆으로 아예 돌아눕더니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내 손을 살짝 핥아줬다. 이번에는 눈물 대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렇게 슬픔이 조금씩 가셨다. 레미랑 누워 있다가 같이 집안을 발맞춰 걷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예쁜 구름이랑 새를 구경하면서.
인제 와 생각해 보니 얘도 나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돌보고 사랑해 줬다. 정말 도움 안 되고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은 아주 많이 도움 되고 놀라운 고양이만의 사랑법으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잠만 자는 줄 알았는데, 하루 종일 그 작은 머리로 저 인간을 어떻게 하면 위로해 주고 편안하게 해줄 수 있을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제 나름대로 아껴줄 방법을 찾다가 눈을 가늘게 뜨고, 꼬리로 다리를 감싸고, 손에 뽀뽀도 해 주고, 마침내 얼굴을 핥아준 거라면 너무 나 좋은 대로 생각하는 걸까.
절대적으로 내가 필요한 어떤 존재, 아주 약한 존재. 그것을 돌보고 사랑하는 일이 늘 벅차다고 여겨왔다. 시간과 마음을 써야 하는 일, 내 우선순위를 통째로 뒤흔드는 일, 사랑하는 다른 무언가를 포기하게 만드는 일. 심지어는 오로지 나만 그렇게 해야 하는 일, 그런 일 따위는 할 수도 없을 테고, 하고 싶지도 않다고 믿어왔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말의 기대랄지 의심 같은 게 생겼다. 내가 돌보고 사랑한 것이 나를 돌보고 사랑해 주기도 한다는 걸 아주 조금은 느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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