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뿌이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모든 날이 여름 - 시즌2

by 하니Hani

높은 건물이 없는 치앙마이에서는 도시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려면 그 옛날 인간이 그러했듯, 산을 올라야 한다. 짝꿍과 함께 이곳에서 가장 높은 도이뿌이 산으로 캠핑을 간 것은 그래서였다. 2025년의 마지막 날, 인파로 붐빌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여유롭게 불꽃놀이를 즐길 생각이었다. 예상과 달리 언제나 한산했던 캠핑장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집에서나 덮는 두꺼운 겨울용 이불을 들고 온 대가족부터 연인들, 친구들 사이로 그들이 가져온 텐트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샤워장 옆 남은 자리에 겨우 텐트를 치고, 부랴부랴 밥을 해 먹으니 주변은 벌써 어두웠다.


샤워장이 어찌나 가깝던지 아빠 손에 붙잡혀 억지로 씻는 아이의 울먹이는 소리가 그대로 들렸다. 아빠, 끝났어요? 아직 안 끝났어요? 아빠는 다 끝났다고 달래면서도 찬물을 연거푸 끼얹었다. 촤아, 촤아아아.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익숙한 태국 어린이에게 산꼭대기의 13도는 얼마나 추울까, 그것도 모자라 지붕도 없어서 찬 공기가 그대로 드나드는 샤워장에서 찬물 세례라니.

아빠가 다 끝났다는 거짓말을 30번쯤 했을까. 드디어 찬물 끼얹는 소리가 멈췄다. 당한 게 있어 그런지 아이는 믿기 어렵다는 듯, 했던 말을 하고 또 했다. 아빠, 끝났어요? 정말 끝났어요?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끈한 수건으로 작은 몸을 꽁꽁 감싸주고 싶었다. 이제 진짜 다 했어, 정말이야. 얼굴을 몰라도 아이가 예쁘기만 했다.


저 아래 보이는 도시는 여전히 밝았다. 낮은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 도로를 밝히는 가로등, 어딘가로 향하는 자동차. 그 모든 게 도시를 살아있게 했다. 조용하던 짝꿍이 자꾸 옆구리를 찔러 왔다. 저기 봐봐, 어, 지금 여기 봤어? 아무리 봐도 가로등 불빛 같은데, 그는 계속 불꽃놀이라고 주장했다. 시내도 한참 벗어난 저 멀리서 어쩌다 반짝, 한참 있다가 그 옆에서도 반짝.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불꽃놀이라니. 시시했다. 연말의 낭만을 한 움큼 보태서 생각해 봐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었다. 고작 이거 보자고 여기까지 올라온 건가. 렌터카도 동나서 그 작은 스쿠터에 캠핑 살림살이 이고 지고 온다고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단 말이다. 내년에는 안 와도 되겠다, 볼 게 없네. 잔뜩 실망한 목소리로 짝꿍에게 말했다.

그건 내 오만이었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도시 한 가운데인 님만, 핑강은 물론이고 근교 지역인 산깜팽과 산빠똥, 산사이까지 크고 작은 반짝임으로 일렁였다. 온갖 색과 크기의 불꽃으로 가득한 하나의 도시, 약속도 없이 마구잡이로 쉼 없이 터뜨리는 불꽃의 향연, 그 광경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아주아주 대단하고 장대한 불꽃 하나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불꽃놀이를 처음 본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건 분명 내가 아는 것이었지만, 전혀 모르는 것이었다. 저 아래, 저 사람들은 알까. 서로 다른 동네에서, 서로 다른 타이밍에 마음대로 쏘아 올리는 저것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지금 자기들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설프게나마 찍어둔 영상을 몇 번이나 돌려보다 잠들었다.


와, 좋다, 너무 좋았다, 와아아. 산에서 내려와서도 그런 생각을 며칠이나 했다. 좋은 것이 왜 좋은지, 거기에 숨어 있는 뭔가가 있는지, 그런 것을 써서 먹고살자는 사람인데 다짜고짜 좋기만 하니 옅은 불안이 피어올랐다. 키보드를 아무리 두들겨 봐도 눈으로 봤던 장면만이 그대로 기록되었다. 아름답기만 한 찰나의 목격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의미도 이야기도 찾아오지 못한 죄책감이 튀어나왔다.

방 안이 갑갑하게 느껴져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연중 가장 아름다운 날씨를 자랑하는 치앙마이의 하늘이 펼쳐졌다. 집을 감싸고 있는 무성한 나무들과 따갑지 않게 적당히 내리쬐는 햇빛에 괜히 마음이 조금 들떴다. 아, 또 아름답기만 하네.


그것들에 둘러싸여 내가 글을 쓴다. 자기들의 아름다움을 무심히 잊고 사는 이들에 대해 쓴다. 나의 지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끗이 잊어버린 채. 지금이 얼마나 좋은 때인지 알고도 모른 채. 그 어떤 의미나 이야기도 찾아 헤매고 해석하려 애쓸 필요 없이, 그저.




안녕하세요, 하니입니다.

뒤늦은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해피 뉴이어! 2026년이 된 지는 좀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해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요?


오늘은 브런치에도 짧은 편지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쉬는 동안 희한하게도 구독자 선생님들, 꾸준히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신 분들 모두 보고 싶었습니다. 잘 쓰든 못 쓰든 간에 얼른 시즌2를 시작하고,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이상한 일이지요. 본 적 없는 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란 당연한 듯 들리면서도 영 틀린 말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마음이라는 것이 다 그러하지 않겠어요.


제 눈에 담긴 것과 그때 주변에 흐르던 공기 같은 것들을 그대로 전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요.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사진이나 영상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아쉬운 대로 2025년의 마지막 순간에 찍은 영상을 보내봐요. 2026년이 되고도 14일이 흘렀지만, 저는 늘 못해도 1월까지는 그전 해인 것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진즉에 작년을 떠나보낸 분들이어도 지금만큼은 잠깐 이해해 주세요.


새해에도 '모든 날이 여름' 뉴스레터를 열심히 연재해보려고 합니다. 브런치에서 다 적지 못한 뒷이야기 등이 더 궁금하신 분들, 브런치보다 먼저 글을 받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구독해 주세요. [오늘부터 여름 편지 받기]

올 한 해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예쁘고 좋은지 모르는 지금,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치앙마이에서,

하니 드림.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