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날이 여름 - 시즌2
어떤 질문은 도시만큼 커다래서 쉬이 답변할 엄두가 안 난다. 치앙마이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면 나는 잠시 멍해진다. 순식간에 그간의 기억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나는 마치 그 기억을 처음 떠올리는 사람처럼 새롭게 기쁘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지. 다른 이를 만족시키기에는 지나치게 사소한 단어들이 한참 입에 맴돈다. 어쩌면 실망할까 봐 두려운 것은 나인지도 모른다. 변변찮은 말 한마디 내뱉고 끝내기에도, 구구절절 설명하기에도 다 적절하지 않게 느껴진다. 구름이 너무 예뻐서요, 때로는 그렇게만 말하고 싶다.
물론 구름이 전부는 아니다. 한 가지만 더 말해보자면 도시가 조그마해서 좋다. 시내 웬만한 곳은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인데, 게으르고 즉흥적인 내게는 그 정도 크기가 딱 알맞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씻고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에 가도 하루의 해는 길게 남아 있다.
시내가 그렇게 작으면 별것 없겠다 싶을 수도 있지만, 있을 건 다 있다. 여기저기 수준 높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온갖 바이브의 카페가 가득하고, 미식의 나라답게 맛있고 값싼 음식도 많다. 곳곳에서 뮤지션들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건 물론이고, 도예나 그림, 사진, 여러 수공예품 등을 접하고 배워볼 기회도 넘친다. 요가나 테니스 등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할 수도 있다. 아쉬움이 아예 없을 수는 없겠지만, 정말이지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처음부터 그랬다. 어디든 푸르고 따뜻하고 여유로운데,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도 다 맛있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더군다나 얼마나 운이 좋았던지 친구까지 만나게 되었다.
남파는 그저 조용하고 한가로워 보여서 일하러 갔던 카페의 사장님이었다. 가고 싶었던 요가 수업을 예약하지 못해서 어버버하던 외국인 대신 선뜻 문화센터에 전화도 해주고, 결제까지 해줬던 남파. 몇백 개의 카페를 가봤지만, 그런 호의는 흔히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라 조금 얼떨떨하기도 했다. 참 친절한 사장님이시네, 하면서도 그 정도 레벨의 적극성이 부담스럽지 않아서 一 케이와 나는 그런 능력이야말로 남파의 초능력이라고 말한다. 一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그에 비해 케이는 좀 더 거리감 있는 친절함이 느껴지는 보통의 사장님이었다. 평범하게 주문받고, 진중하고 꼼꼼하게 라떼를 만들어 주곤 했다. 그러다가도 남파와 내가 이런저런 수다를 떨고 있으면 한두 마디씩 얹기도 했다. 수줍어하는 얼굴로, 망설임이 적잖이 묻어나는 목소리로, 한 번씩 등 뒤로 손을 꼬기도 하면서. 케이 못지않게 낯가림이 심한 터라 그의 그런 표정이나 몸짓이 안심되기도 했다. 너무 빠르지 않게, 조심조심. 그 속도를 좋아했다. 반년 정도는 지나고 나서야 셋이 밥을 먹은 것 같다. 무릇 인생의 좋은 것들이 그러하듯, 둘은 그렇게 계획도, 기대도 없이 왔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새 우리는 세 살씩 더 먹었고, 이제 나는 코드 대신에 글을 쓴다. 남파와 케이도 각각 새로운 일을 시작해서 이제 우리가 만났던 카페에는 그 둘이 고용한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려준다. 만약 지금에서야 치앙마이에 왔다면 우리는 영영 못 만났을 거고, 가까워졌다가 소원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뭔가를 놓쳤다는 느낌도 없이, 여전히 틈틈이 휴가를 쓰고, 세계 여기저기로 여행을 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떤 질문은 도시만큼 커다래서 쉬이 답변할 엄두가 안 난다. 치앙마이가 뭐가 그렇게 좋냐고 물어보면 나는 잠시 멍해진다. 내가 어떻게 남파와 케이를 만났는지는 말해줄 수 있지만, 내가 아는 방식으로 그 둘을 설명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너무 많은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주 소중해서 서툴게 꺼내다 망가뜨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모든 날이 여름을 연재 중인 하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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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하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