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소한 일요일

모든 날이 여름 - 시즌2

by 하니Hani

아침에 눈 뜨자마자 먹다 남겨둔 볶음밥을 데워서 먹었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꾸물꾸물 칫솔질도 하고 세수도 했다. 빨래가 돌아가는 소리를 집안에서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규칙적으로 돌아가는 비누 거품을 보고 있자니 한없이 늘어지고 싶어졌다. 어젯밤에 갈 곳까지 정해두고 잤으면서 피곤한 몸은 이미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접은 듯했다. 오토바이 위에서 땡볕에 천천히 익을 생각을 하니 조금 끔찍하게 느껴졌다. 건기의 한복판에 들어선 해가 점점 따가워지고 있었다. 이럴 때는 에어컨이나 빵빵하게 틀어 놓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해를 구경하는 게 더 좋다.


소파에 드러눕듯 앉아 핸드폰을 한참 만지작거리다가 창밖을 하릴없이 바라봤다. 제법 멀리까지 잘 보였다. 올해는 미세먼지 시즌이 늦게 시작될 모양이었다. 다음 주도 공기가 맑아야 할텐데⋯. 새로 이사한 집도 볼 겸, 짝꿍이 짬을 내서 치앙마이에 오기로 한 날부터 늘 그 생각이었다. 공기가 맑아야 할텐데⋯. 바쁜 그 사람이 피곤할까 봐 걱정되긴 해도 역시나 기대되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비행기표를 사면 그때부터는 줄곧 공항에서 그를 만나는 상상을 하느라 바빠진다. 입국 수속하는 시간이 매번 몹시 길게 느껴져서 그가 오는 날에는 아무도 치앙마이에 놀러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치한 생각마저 든다.


삑 삑 삐익一. 어느새 빨래를 마친 세탁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빨래를 탁탁 털자, 햇빛 속에서 먼지가 흩어졌다. 궁금해서 사본 빨래 세제에서는 다행히 좋은 향이 났다. 줄 맞춰 착착 널려 있는 빨래를 보니 왠지 한껏 뿌듯해졌다. 깨끗하게 빨아 잘 널어둔 빨래만이 주는 개운한 기분, 작지만 무언가를 완수해 냈다는 감각이 활기가 되어 몸 구석구석으로 번져 나갔다. 기운이 난 김에, 집 앞에 있는 동네 카페에 가서 밀린 작업을 조금이라도 할 요량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 흥얼거리며 책, 공책, 펜, 아이패드를 챙기는 동안, 무슨 케이크를 먹을지 고민 아닌 고민이 들었다. 사장님이 직접 구우시는 귤 케이크를 떠올리니 콧노래가 한결 커졌다.


슬리퍼를 달랑거리며, 나무 그늘 아래를 느릿느릿 걸어가는 기분이 더없이 좋았다. 매일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니 걸을 일이 영 없어 가볍게 다리를 움직이는 느낌이 반가웠다. 따끈하지만 땀은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알맞게 데워졌다. ‘오늘 어땠어?’ 라고 누가 물으면 일일이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사소하고 자잘한 일상의 순간들, 그것들로 온전히 충만한 하루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때로는 이렇게나 별것도 아닌 것들로 환해지다 못해 살아야겠다 싶어지는 마음이 이상하기도 하고, 가짜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너무 강렬해서 되려 의심하게 되는 이런 생생함. 하지만 커다란 불행 앞에서는 잘 버텨내다가도 고작 짜증 난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작은 일들로 무너져버리는 게 사람 마음이라면, 대단한 구석 하나 없는 일들로 차오르기도 하는 것 역시 사람 마음 아닐까? 살뜰한 행복이 알알이 이어지는 이런 날이면 나는 괜히 조금 더 튼튼해지고 단단해지는 것만 같다.


머리 위로 넓게 드리운 나뭇잎들이 저들끼리 부딪치며 흔들렸다. 바람이, 아주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왔다. 짝꿍이 오면 같이 식물 시장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서 새 침구 쇼핑도 하러 갈까. 저번에 샀던 리넨 침구는 까칠해서 영 탐탁지 않아 했으니, 이번에는 짝꿍더러 고르라고 해야겠다. 나뭇가지 높은 곳 어딘가에 숨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이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 그러나 그 무엇도 당연하지 않은 것들로 종일 기뻤다.



안녕하세요, 모든 날이 여름을 연재 중인 하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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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앙마이에서,

하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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