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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察). Korea Town(한인타운)

짤(meme)보다는 조금 긴.

by Taster

LA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 호텔 바로 앞 작은 상가에는 동대문 엽기떡볶이와 삼겹살집이 나란히 있고, 그 앞으로 대중사우나탕과 당구장(한국말로 쓰인 당.구.장) 표지판이 보인다. 뭐지 여기? 저기 충청도에서 잠시 살던 그 때의 풍경이 자꾸 겹친다.

LA는 한국인이 너무 많고, 그래서 식상하다고 생각해서 몇 년 전 우리의 서부여행의 일정에서도 제외했던 곳. 그렇지만 미국 동부에서 생활을 해 보니, 그 식상함을 다시 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한국음식에 대한 정보 또는 그리움에 대한 얘기일 때가 많다. 보통의 대화 수준은, "한인마트가 거기 있어?" 정도일 것이고, 뉴욕같은 큰 도시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곱창 파는 집이 있다며!" 일 것이다. LA는 조금 수준이 달라 보였다. 여기는 곱창을 파느냐가 아니라, 곱창이 어디가 그래서 더 맛있냐. 이 수준이었다. 동부와 서부의 4시간 차이(비행시간 14시간: to 뉴욕 /10시간: to LA)는 그런 식으로 나타나는 것었다.

공항에 픽업 나온 이모의 차를 타고 순두부를 먹으러 가다 보니 어느 순간 한국 간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펼쳐지는 타운의 모습, 인상적이었다. 이런 한국 간판들이 수두룩하게 보이는 게 더 이상 낯선 것은 아니다. 맨하탄은 32가의 한 블럭이 빽빽하게 코리아타운을 이루고 있다(JFK가 있는 퀸즈 지역의 플러싱에 있던 코리아타운은 이제 차이나타운이 되어 간다고 한다). 그리고 뉴저지 팰리세이드팍이라든가 포트리 같은 동네에 한국인이 정말 많기는 하지만, 이거는 약간 스케일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뉴욕/뉴저지의 Ktown이 롯데월드라면, LA Ktown은 에버랜드다.

영화촬영장 투어를 다녀온 후라서 그런가, Ktown도 마치 영화 세트장 같다는 생각이 든다.’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그런 장르라고 하면 대강 맞지 않을까. 응답하라 1978? 1988? 아마 그쯤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예외를 두자면 딱 한 곳, 맨하탄의 Ktown.

맨하탄의 Ktown은 뭐 거의 강남역 분위기다. 시끄럽고 요란스럽고 지저분하다. 젊은이들이 모이고, 놀고, 먹고마신다는 얘기다. 그 거리를 지나다니기에는 불쾌함(시끄럽고 요란하고 더러운)이 많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K-pop이나 K-food 같은 한국문화의 엄청난 인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과거를 느낄 틈도 공간도 없다. 그냥 바로 지금의 서울이 뉴욕 한복판 어느 한 블럭을 차지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LA와 뉴저지들의 한인타운은 결국 과거를 상상하게 만든다. 우리 세대는 살아본 적이 없거나 아주 어린 시절 정도의 시기였을 테니, 기억이 있을 수 없는 시기다. 한국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노스탤지어 투어 컨셉으로 LA 여행(비행이 짧으니)을 해보면 괜찮지 않을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다. 그치만, 그건 잘 안될 컨셉 일거 같다. 왜냐면 한국의 과거는 가난과 고생이 너무 짙었기 때문에.

과거를 상상하는 나는, 결국 이민 1세대의 얼굴들을 떠올려보려고 한다. LA에 계셨던 작은 할아버지/할머니가 그렇다. 그리고 여기 와서 사귄 친구들의 부모님의 인상과 생김새도 상상해 본다. 캘리포니아 햇살이 아무리 좋았던들, 1세대 이민자들에게 그것이 어떻게 와닿았을지 궁금하다. 멕시코와 가까운 곳이라 그런지,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의 분위기도 내 기억 속에서 되살아 난다. 오늘 아침에 산책을 하며 흰머리의 한국인 할머니들 서너명의 무리를 보면서는, 외할머니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1주일 내내 배가 부르지만, 배가 불러도 상쾌할 수 있었던 것은 나도 한국음식이 꽤나 그리웠기 때문인 것 같다. 설렁탕, 순두부찌개 그리고 명동칼국수를 먹으며, 채워지지 못했던 뱃 속 구석구석까지도 충전되는 기분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고픈 배를 채운 후에 좀 차분히 Ktown을 둘러보니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여기가 이 town이 될 때까지 있었던 어떤 사람들. 그리고 이 사람들은 사실 우리와 무관하다거나 단절되어버린 인간들이 아니다. 왜냐면, 그 다음 세대들이 나의 친척이자 친구이자 또는 직장동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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