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va la vida

자유연상 글쓰기

by 봉봉

[사진] 세계지도


해군에 있을 때 군함을 타고 지구 한 바퀴를 돌 기회가 있었다. 경남 진해항에서 출발해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르, 싱가포르 창이, 인도 뭄바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서) 터키 이스탄불, 벨기에 안트베르펜, 프랑스 쉘브르, 영국 런던, 스웨덴 스톡홀름, 덴마크 코펜하겐, 노르웨이 오슬로, (대서양을 건너) 미국 볼티모어, 파나마 파나마시티 (파나마 운하를 넘어) 에콰도르 과야킬, (태평양을 건) 미국 하와이를 거쳐 다시 진해항으로 돌아왔다.

항해 중 가장 기억나는 건 처음 적도를 넘었을 때 했던 적도제였다. 우리는 용왕을 불러서 그를 달래는 의식을 치렀다. 용왕은 넉살 좋은 하사가 맡았고, 그의 부하인 도깨비들은 장난기 많은 수병들이 맡았다. 용왕은 멋지게 등장해서 (함장이 승함했을 때 종은 두 번만 치지만, 용왕이 승함했을 때는 거의 대통령급으로 네 번의 종이 울렸다)그 배의 고위 간부들을 하나씩 불러 그들의 죄를 물었다. 쪼잔한 조리장부터, 빡빡한 부장까지, 평소에 권위적인 그들도 그 행사에서만큼은 하사에게 허리를 굽혀야 했다. 용왕은 그들의 죄를 하나하나 읊고 곤장을 내리치지만, 그들이 찬조금을 내면 그들의 죄를 사하고 풀어주었다. 그 공연은 내가 평생 본 공연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공연이었다. 결국 공연이든 무엇이든 우리는 그 공동체에 속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볼 때 재미가 배가 되는 것 같다. 특히 내가 같이 경험한 걸,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다시 보는 일은 꽤나 묘한 즐거움을 준다.

예를 들어, 내가 오늘 우리가 점심을 먹고 나서 했던 대화를 다시 묘사한다면, 그것은 우리 멤버들에게흥미로울 것이다. 나는 사실 오늘 쓸데없는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자책하고 있다. 괜히 마음을 어지럽히는 내용을 공유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런 내 마음을 아마 다른 멤버들은 몰랐을 것이고, 이것을 글이라는 양식으로 읽으면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 들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얘기를 적어도 좋을 것이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이해 못 하겠지만, 우리한테만은 이해되는 그런 얘기들을.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한테만큼은 우리가 쓴 글이 효용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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