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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Jan 23. 2023

[믿는구석] 허지은, 이경호 감독 인터뷰

서울 아닌 곳에서 예술로 먹고 살기 : 광주편

인터뷰 개요

  - 일시/장소 : 2021. 4.24.(토) / 온라인 줌(zoom)

  - 참석자 : 허지은, 이경호, 이대현, 김은혜    


허지은이경호 감독 소개


 광주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 ‘믿는 구석’이란 이름의 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단편 <오늘의 자리>(2017), <돌아가는 길>(2017), <신기록>(2018), <해미를 찾아서>(2019), <고마운 사람>(2020)을 만들었고 이 중 <신기록>, <해미를 찾아서>, <고마운 사람>은 공동 연출작이다. <신기록>으로 제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심사위원특별상, 제39회 청룡영화상 단편영화상을 받았고 <해미를 찾아서>는 벡델데이 2021 단편영화 공모전 최우수상을 받았다.



1. 뭐 하시는 분이세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린다.

(허지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어쩌다 보니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 광주에서 독립영화 제작 활동을 진행해오고 있다.     

(이경호) 대학 진학 때문에 광주에 왔다가 계속 살고 있다. 허지은과 스토리가 거의 유사하다. 영화 동아리에서 허지은을 만나 같이 영화를 배우고 놀았다. 같은 국문과 출신이다.     

(허지은) 광주에는 영화과가 따로 없다. 진로를 어렸을 때부터 영화로 정한 것은 아니다. 이경호의 경우 문학동아리 활동도 하고, 글을 쓰고 싶어서 국문과를 왔다고 하는데, 뒤늦게 ‘아, 글을 쓰려면 문예창작과를 가야되는 구나.’ 라고 깨달았다고 한다. 나의 경우, 문학을 공부해보고 싶었기도 했고 특별한 생각이 없이 대학에 갔는데, 우연히 ‘상상공작실’이라는 신생 영화제작동아리의 플랜카드를 보게 되었다. 영화를 어떻게 찍는지 막연한 호기심에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고 거기서 이경호를 만나게 되었다. 그 동아리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직업으로서 영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순간이나 계기가 있었나?

(이경호) 사실상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체성이라고 생각할 뿐.     

(허지은) 직업은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사실 영화로는 수입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아직 장편을 찍지 못한 상황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영화 관련 교육 등 다른 일들도 하고 있다. (이경호에게 물으며) 영화와 관련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다면 뭐가 있나?      

(이경호) 어쩌다보니인 것 같다. 왜냐하면 생각이 났으니까 시나리오를 써야 되고, 시나리오는 영화로 만들어져야 하니까.      

(허지은) 학교 다닐 때는 지원 사업이나 이런 게 전혀 없어도 우리끼리 연습하면서 만들고 그랬다. 서로 품앗이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 만들어보고 싶다는 로망 같은 것들이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계속해서 작업을 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학교 다니면서 했던 일들의 대부분이 다 영화 만들고, 영화관에서 만나서 놀고, 술 먹고 이런 것들이라 뭔가 정상적인 취업 루트를 밟은 사람이 없다.(웃음)     

(이경호) 맞다. 다 취업에 실패한 것이다.(웃음)     

(허지은) 남들 다 하는 스터디, 영어 공부를 하던 사람들은 이미 동아리를 그만두고 떠났고, 남아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 처음에 선배 중에 한 분이 “지역에서 우리가 굶어 죽지 않으면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생계에 대한 대안을 강구해보자” 라고 제안했고, 영상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사회적기업을 만들었다. 그래서 대학 졸업하고 자연스럽게 그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막상 거기서는 진짜 생계를 위한 일들을 위주로 하게 되면서 영화에 좀 멀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여러 가지 많은 것들, 사회생활도 배우고 그랬던 것 같다.     

(이경호) 그 회사도 둘이 같이 들어갔다. 작가, 기획, 회계 주어진 모든 것을 다 했던 것 같다. 돈을 벌 수 있는 영화 관련 업무들을 거기서 배우고 나와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었다.     

(허지은) 프리랜서로 나와서는 미디어 강사, 영화진로강사 이런 것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체성’은 영화감독으로 하되, 일들은 필요할 때 여러 곳에서 하면서 지내고 있다.     

      


(좌) 이경호 감독, (우) 허지은 감독


공동 작업 방식에 대해서 궁금하다공동 연출이라고 하면 프리현장 단계에서 어떻게 분담을 하는가?

(이경호지금 인터뷰하는 것 보면 알겠지만 허지은이 할 수 있는 한 다하고 (모두 웃음) 정보의 오류가 있거나 내 의도와 다르다면 개입한다. 내가 끼어들지 않았다는 것은 거의 100% 일치하는 정보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허지은내가 주로 나서긴 한다.     

(이경호) 허지은이 주로 하다가 잘 모르겠거나 너무 힘들면 나한테 넘긴다. 나는 위기 관리만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각본의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

(허지은) 단편 같은 경우, 우리가 평소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던 아이디어, 소재 이런 것들이 딱 맞아떨어질 때가 있다. 그 때 같이 해당 아이템을 어떤 이야기로 발전시키면 좋을까 하고 먼저 회의를 한다. 그렇게 계속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 정도 개괄이나 방향성이 나온다. 

 <해미를 찾아서>라는 단편영화 같은 경우 시나리오를 구글 문서를 통해 함께 작업했다. 보통 시나리오는 이경호가 먼저 쓴다. (이경호가) 전체적인 안이나 구조, 플롯에 강한 면이 있다. 그 후 시나리오 초안을 같이 보면서 각색 혹은 윤색 작업을 같이 한다. 

 시나리오 작업 후부터 영화를 찍고 완성하기까지는 계속해서 전쟁인 것 같다. 서로 미루기도 하고 그때마다 힘을 낼 수 있는 사람이 그 부분을 끌고 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림 팀명이 “믿는구석”이다. 편집하다가 힘들어 누워있을 때 지은 거다. 내가 “그래, 그래도 괜찮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하면서 (이경호에게) 가서 “편집 좀 하세요.”라고 말했고, 그렇게 이름을 만들게 되었다.     

   

영화 <해미를 찾아서>(2019) 스틸컷. 퍼플레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3. 코로나19는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꿨나요?

코로나가 우리나라 사회 전반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데코로나가 예술가와 영화인들한테 작업 방식이나 생활적인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었나?

(이경호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오디션, 대본 리딩 등을 화상으로 시도해봤다. 생각보다 좋더라. 시간상의 절약도 있고 코로나가 많은 부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지만 긍정적 변화를 가져다 준 점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업설명회, 정책설명회나 행사들을 직접 가서 들어야 됐었는데(대부분 서울로 직접 가야했었다.) 온라인 설명회가 종종 나오니 “어, 안가도 볼 수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온라인 GV도 한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게 잘 진행되었다. 수화 통역도 진행되기도 했고, 댓글로 관객들이 반응을 주거나 질문하기도 했다. GV가 아니라 개인방송 하는 느낌이 들었던 독특한 경험이었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신기한 장면들이다.          

(허지은) 작년 코로나 터지고 3월 정도였던 것 같다. 우리는 원래 일이 한 4월쯤부터 많아지기 시작하고 겨울이 좀 비수기여서, “이제 곧 일 시작되니까 바빠지겠네, 좀 열심히 놀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뭔가 그 시기가 길어졌던 것 같다. 특히나 광주는 5월이 되게 바쁜 달이다. 영화인들에게도 영상 제작이나 촬영 의뢰도 많이 들어온다. 작년의 경우 5·18 40주년이었지만, 대부분의 행사들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거나 축소되어 일감이 줄면서 4-5월에 그런 상황을 많이 실감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지역에 살다 보니, 관심 가는 문화 콘텐츠나 이런 게 있어도 서울에 가기 망설여졌는데, 작년에는 유튜브로 많은 공연 콘텐츠를 공개해 처음에는 막연히 좋았던 점도 있었다. “우와, 이렇게 좋은 공연을 볼 수 있다니! (물론 현장에서 보내는 거랑 전혀 다른 느낌이긴 하지만) 이게 이런 내용이구나!” 하면서 접하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이경호장소 섭외가 가장 어려워진 점 중에 하나인 것 같다. 그리고 실제 작업을 할 때는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여름에 좀 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재작년에 광주 내 영화인들이 모이는 광주영화IN네트워크파티를 작게나마 개최되었고 그게 상당히 유익하고 좋았는데 코로나 때문에 갑자기 취소되어 아쉽기도 했다.    

(허지은) 사실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서 부산에서 영화를 찍게 된 거기도 하다. 우리가 받은 사업이 원래 해외 교류에서 코로나로 인해 지역 교류로 방향을 바꾸었다.       

         

예술인이나 프리랜서 대상 코로나19 지원사업을 받은 것은 있나있다면 효과가 궁금하다.  

(허지은나는 프리랜서 지원금을 신청해서 4차까지 받았다. 초반에 통과가 된 사람들은 특별히 뭔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계속 받더라. 아마 2차 지원금을 부산에서 영화 찍을 때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작년에 처음으로 예술인 창작지원금을 신청해서 받았고 상반기에 그걸로 좀 버티는 것도 있었던 것 같다. 작년에 광주영화영상인연대 주최로 광주영화학교라고 외부 강사님을 초청해서 수업하는 게 있었는데, 장편 시나리오 과정을 수강하며, 아 일도 별로 없는데 공부나 하자 약간 이런 느낌으로 예술인 창작지원금을 받아서 버티면서 했었다.

아까 말씀드린 믿는구석이라는 팀명이 개인사업자명이기도 하다. 일을 받을 때 개인한테 주기보다 사업자를 선호하는 데가 많다 보니까 사업자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걸로도 지원금을 받았다.     

(이경호) 소상공인 지원금을 받았는데, 당연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이게 나에게는 어느 정도 도움 된 정도지만 진짜 많이 도움이 되는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                

 


 - 코로나19 특고‧프리랜서 지원금 : 코로나19로 인해 소득‧매출이 감소하였음에도 직업적 특성상 고용보험의 보호를 받지 못한 특수형태근로노동자*, 프리랜서의 생계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현금 지원 정책. 차수별 50만원~200만원 정도 지급되었으며, 2022년 8월 현재 총 6차 지원금까지 지급되었다.


 * 특수형태근로노동자: 택배기사, 학습지 방문강사 등 근로자가 아니면서 노무제공계약을 체결한 사람



(허지은) 생활적으로는 좀 방어적으로 사는 편이라 잘 안 쓰고 저축하는 타입이다. 프리랜서 생활을 몇 년을 하다 보니까 이 시기는 되게 힘든 시기, 그러니까 좀 아끼면서 다른 일을 해야 되는 시기로 생각했다. 

 근데 생각보다 일이 많이 줄어 들어서 틈틈이 들어오는 지원금들이 도움이 많이 됐었다. 영화진흥위원회 뉴미디어 콘텐츠 코로나 지원사업라는 사업을 광주에서 다른 팀이 신청해서 우리도 거기 스텝으로 참여하여 같이 찍었었다.             



 - 일자리 연계형 온라인 뉴미디어 영상콘텐츠 제작지원사업 : 현장영화인의 단기 일자리 창출하기 위한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지원사업으로, 지원대상자로 선정된 영상물 제작팀(3인 구성) 300개팀 내외에게 5~10분 사이의 숏폼 영상물 제작 및 제출, 유통을 조건으로 인건비(1인당 220만원x3명) 및 제작비(330만원) 등 총 990만원 지원하는 사업이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홈페이지)



(이경호) 그리고 보니까 지역별로 특색 있는 코로나 지원사업도 있더라. 그 중 광주에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조금 특별한 사업이 있었다. 광주 예술인들에게 30만원씩을 지원하면서 한 가지 임무를 주는데 자기의 얼굴을 걸고 코로나 시민들에게 응원이 되는 어떤 아름다운 문구 응원이 되는 한 줄 문구를 쓰는 것이다.     

(허지은) 그게 광주 시내의 중심가에 현수막으로 걸린 거다. 밖에 잘 안 나가니까 몰랐는데 지나가다가 누가 보고 “야 네 얼굴에 무슨 문구가 적혀 있어.”     

(이경호) 그냥 글자만 한 게 아니라 얼굴까지 넣어버리니까 약간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게 이 사람들이 공연이나 전시가 취소되고 해서 사라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예술가들의 얼굴을 거리에 걸어버리니까 그들이 여전히 이렇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결과적으로 좋은 기획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술가들이 자기 얼굴이 걸렸으니 그 글을 정말 열심히 쓴 거다. 그래서 ‘거리는 멀게 마음은 가깝게’ 이런 천편일률적인 포스터만 보다가, 예술가마다 다양한 의견을 봐서 좋았다.     

       


 - 300, 소리 없는 아우성: 광주문화재단의 코로나19 극복 예술배너사업으로 코로나19 극복의 메시지를 통해 광주 시민들과 연대감을 형성하면서 침체된 예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기획된 사업이다. 문자언어로 이루어진 메시지 ‘한 마디’와, 시각이미지 ‘한 컷’ 두 유형으로 작품을 접수하였고, 1개 작품 당 지원금 30만원이 지급되었다.  (출처: 광주문화재단 보도자료)



4. 예술가로서 광주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허지은) 영화제작 지원사업이 따로 생기기 전에는 5·18에 대한 부담감, 벽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 전엔 광주에서 영화에 어떤 투자나 지원이 이뤄진다고 하면 5·18 소재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좀 다르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순 없을까’, ‘언젠가는 우리도 5‧18 영화를 만들어야 될까’, 고민이 많았다. 

 5‧18을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다루기 위해선 많은 공부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원사업을 신청할 때 ‘5·18 소재를 연계시켜야만 통과가 될 거야. 심사위원들이나 광주는 그걸 좋아해.'라는 말이 돌 정도로 우리 세대는 이 부분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전보다 더 다양한 소재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지역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계속 ‘이렇게 가는 게 맞는 건가?’ 헤매는 느낌, 뭔가 먼 길을 돌아가는 느낌이다. 광주에는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루트가 별로 없다. 누군가가 밖에서 배워서 돌아오면 그 사람한테 배우고, 아니면 내부에서 조금 더 잘 아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한테 배우는 상황이다. (이경호 “광주에 문익점이 몇 명 있다”(웃음))

 그럼에도 다들 광주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이곳에서만 할 수 있는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다 각자의 이유였었던 것 같다. 서울에 가면 너무 집이 비싸고 거기에서 새로 정착하는 것이 여기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보다 무섭고 그런 것들. 거기서 적응하려고 애쓸 힘으로 조금 헤매더라도 여기서 남아서 해보자 이런 식으로 버티는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와중에 올라가서 또 잘 정착해서 하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광주라는 지역성이 작품 내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례가 있는지?

 (이경호)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광주에 대해 읽고 보고 듣고 공부하게 될 수밖에 없는 계기들이 훨씬 많긴 하다. 예를 들면 집 옆에 광주 역사와 관련된 공원이 있다면, 저것은 왜 있지 저 동상은 왜 저 모양이지 궁금증을 가지고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면 의미를 알게 되고, 언제든 로케이션으로 쓸 수 있는 장소로 머릿속에 각인이 된다. ‘지역성’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내가 더 잘 안다는 것, 특히 독립영화는 예산이 작기 때문에 편하게 내가 알고 있는 공간을 찍는다는 점에서 더 지역이 잘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다.      

 (허지은) 예전에 다른 지역에서 영화 상영을 하러 갔었는데 누군가가 ’광주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했는데 인물들이 사투리를 안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러고 보니 사투리를 쓰지 말라고 배우들한테 디렉션을 주거나 하는 게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영화 속 인물들이 사투리를 안 쓴다. 그런데 왜 꼭 사투리를 써야 하지?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그냥 내가 겪는 시대에 직장에서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룬 건데. 그리고 사실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친구나 부모님하고 대화할 때는 사투리를 써도 공적인 영역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사투리를 안 쓰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투리를 안 쓰는 방향으로 갔는데,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가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아니라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서 그랬구나, 나중에 스스로 다시 보게 됐던 것 같다. ‘여기라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겪는 사람이 여기에 살고 있다’, 이런 정도의 지역성인 것 같다.      

(이경호) 우리 영화의 연출 목표 자체가 한국의 전반적인 내용이기 때문에 지역성을 일부러 빼는 경향이 있지만, 어쨌든 거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식이라든가 뭔가 배경 지식 같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겠다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다.     


배우와 스태프 분들은 주로 광주 분들이 많은지아니면 외부에서 모시는 편인지?

(허지은) 광주는 영상연기를 주로 하는 배우들이 생각보다 많이 없고 연극은 무대가 되게 활발하다. 처음에는 연극 활동을 오래하신 중년 이상의 배우님들과 많이 작업을 했었는데, 우리가 단편에서 해왔던 이야기들이 주로 2030 세대를 다루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2030 배우 분들을 찾기 위해 외부도 살펴보게 되었다. 많이 작업했던 이태경 배우 같은 경우는 서울이나 인천에서 생활하는 배우로 다른 사람의 소개를 받아 같이 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배우들이 영화 찍는다고 하면 광주에 와줄까? 20대 때는 그렇게 생각하고 좀 엄두를 못 냈더라면, 이제는 예산이 이 정도이고 때 교통비랑 숙박비를 같이 제공해드린다고 하면 다들 같이 작업을 하러 오겠다고 하시고, 이런 것들이 좀 당연하게 됐다. 배우들은 마음에 맞는 작품이 있으면 어디든 가는 사람이구나,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2020년도에 부산 유네스코 창의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부산에서 단편영화를 만드는 레지던시를 진행하였는데그때의 경험은 어땠는지? (광주와 부산 영화계의 차이점 혹은 연대의 가능성은?)   

 (이경호확실히 오래된 건물들이 남아 있는 도시를 가면 거기서만 나오는 비주얼들이 있는 거 같다. 특히 부산은 산 위에 건물들이 많은 점이 독특하다. 이번 영화에서 창밖을 보는 학교 씬이 있는데, 산에 빼곡하게 건물이 들어서 있으니까 광주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라 특이했다. 지역에서 찍으면 그런 게 조금씩 담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지역교류 관련해서는 광주 영화제에서 2~3년 전 대구 영화인들을 초청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저녁에 술도 먹고 감독님들의 작품도 보고 이런 시간 가졌는데 그게 참 좋았다. 한 명씩 보는 게 아니라 한 지역의 감독님들 3~5명을 한 번에 부르니 그 지역의 영화 현장 분위기 같은 게 한 번에 느껴졌다. 연대는 원래 마음이 가까워지는 것부터 시작이지 않나? 영화제 등에서 지역영화인끼리 교류의 장이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

      

영화 <고마운 사람>(2020)

(허지은) 항상 광주 예산으로 광주에서 영화를 찍다가 부산 예산으로 부산에서 영화를 만드니 특별한 경험이었다. 현지 스태프를 구하고 싶었는데 코로나로 밀린 영화들을 막 찍고 있는 시기라 현지 스태프를 구하기 어려웠고, 결국 스태프를 거의 전부 다 광주에서 데려갔다. 배우 분들은 서울에 오신 분들과 부산 배우 분들을 고루 캐스팅했다. 다 같이 부산에서 숙박도 같이 하며 영화를 찍으니 뭔가 워크숍 느낌도 나고 좋았다. 광주도 이런 프로그램이 생겨서 부산이든 다른 지역의 감독이 광주에 와서 영화를 찍는데 우리가 스태프로 참여를 하기도 하고 또 광주의 감독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줘서 거기서 영화를 찍고 오는 사업이 있으면 진짜로 지역 교류가 창작으로 일어나겠구나, 싶었다. 이번 기회로 부산에 좋은 배우들이 많다는 걸 알았고 만약에 스태프들도 함께 할 수 있었다면, ‘아 부산에 가면은 이 스텝이 있는데 같이 해야겠다.’ 이렇게 되기도 했을 것 같다.    


지역 예술가로서 현재 정부나 지자체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 의견이 있다면?

(이경호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타 종류 예술가와 협업할 수 있는 그런 행정이나 사업이 있으면 되게 재미있는 시도가 될 것 같다. 무용이랑 영화가 만난다든가. 기술과 영화가 만난다든가.      

(허지은문화예술 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도시일수록 일회성의 이벤트로 사업을 추진하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재작년인가 광주영화영상인대에서 영화예산 더 늘려달라고 시에 요구를 했는데 그걸 이해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적극적이신 공무원 분들도 분명 있지만 위에 분들의 경우 ‘우리 광주에 왜 독립영화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냐. 그냥 상업영화를 광주에서 찍게 하면 되지 않느냐. 예산 이 정도 몽땅 투입해가지고 <택시운전사> 같은 영화 하나 더 만들어야 되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분도 있었다. 결국에는 그게 어느 정도 설득이 돼서 예산이 계속 늘어나고 있고 또 생태계를 만드는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 중인데 항상 관에서는 생태계 보다는 단기적인 결과물, 눈에 띄는 만족스러운 수치 이런 것을 원한다. 그러면서 ‘왜 지역의 예술가들 청년들이 남아 있지 않은지’에 대해서 뒤늦게 생각을 한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다른 지역으로 가야 되고 남아 있어도 지원사업처럼 계속 지속적으로 그걸 해내갈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않으니까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생태계 구축이 되어 하나 둘씩 ‘여기 있어도 할 만하구나. 여기 있어도 2~3년 뒤가 보이네.’ 이런 걸 좀 가늠해 볼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은? ‘믿는 구석이나 아니면 개인적으로 어떤 계획이 있는지     

(허지은) 작년에 부산에서 단편 영화 찍고 나서 광주에 돌아와서 더 예산도 작고 준비기간도 짧은 단편영화를 하나 더 찍었다. 어쩌다 보니 코로나 시국에 영화 두 편을 찍게 되는 상황이었다. 

 단편 <해미를 찾아서> 이후로 오랜만에 영화 작업을 했었던 건데 이제 단편을 꽤 많이 찍으면서 어느 정도 단편에 대한 아이디어나 이런 고민들이 좀 많이 고갈되고 소진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장편을 어떻게 쓰는지도 궁금하니까 공부하면서 써 보자 했던 시기에 그 (장편 준비) 기간이 좀 길어져서 어떡하지, 심란하던 시기에 부산에서 제안을 받아서 다시 단편을 찍은 거였다. 

 그래서 뭔가 이야기의 길이에 상관없이 단편이든 장편 영화든 영화를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게 되게 중요하구나 이런 생각을 다시 했고, 여러 가지 지원사업이나 공모 사업들을 살펴보면서 그걸 마감을 삼아 열심히 해나가려고 한다. <고마운 사람>도 여러 관객들한테 보여줄 수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경호작품 상황은 똑같다. 시나리오 공부를 하고 있는데 악에 받친 멘탈로 일을 하고 싶진 않고 꾸준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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