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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 Dec 17. 2018

가짜 수상소감

자유연상 글쓰기

[영상] Cecil B. DeMille Award Jodie Foster - Golden Globe Awards (Korean sub)

https://www.youtube.com/watch?v=jQY82kTJb5A


여러분, 모두 조촐한 저의 수상식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한테 이 공로상을 주신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수십 년 전, 저의 스물일곱  때의 밤이 생각나네요. 그때 저는 맥주 두 캔을 마시며 미래의 수상소감에 대한 글을 썼었죠. 흐릿한 미래와 질퍽한 인정욕구와 함께요, 삶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없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은 미련이 있었죠. 오래된 꿈이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가져온 꿈. 언젠가 내가 쓴 글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거야. 언젠가 내가 쓴 글로 모두의 사랑을 받을 거야. 어쩌면 저는 예술을 하기 보단 예술가가 되고 싶었는지 몰라요.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제가 쓴 글로 인정을 받는 것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좋은 글이 나올 리가 있나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를 쓰려다가 실패를 거듭했죠. 그 후로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어요. 제 능력에 대한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냥 이렇게 조용히 살다가 죽겠구나, 싶었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삶에 만족할 수 없었어요. 그냥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려고 해도, 평균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없었어요. 평균에 못 미쳤거든요. 진짜 행복하고 삶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글 따위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어딘가 불만족하고 불안한 사람들한테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거죠. 저는 평균을 쫓아가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도달할 수 없었고, 결국 다시 글로 돌아왔죠. 그리고 그때 쓰게 된 글들은 온전히 저를 위한 글이었어요. 남들을 의식하고 쓴 글이 아니라, 제가 쓰면서 즐거운 글. 휘발성 있는 글들. 순간의 감정에 치우치는 글들. 과장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풀어놓는 글들. 물감을 물에 풀어놓고 그것을 지켜보는 아이처럼, 저는 그런 놀이 같은 글들을 매일 썼어요. 저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좋아해줄지 몰랐어요. 아, 쓰는 게 즐거워야 하는 구나, 저는 깨달았죠. 그때부터 저는 매일 글을 썼고, 그래서 지금 여기에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무대 위에, 이 텅 빈 관중석 앞에 말이에요.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아무도 안 계시군요. 아무도 안 계시니 저는 모자를 벗고, 탭댄스도 추고, 슬라이딩도 하고, 별 짓을 다 합니다. 그래도 아무도 없으시네요. 저는 이 마이크를 놓고 싶지 않은데, 아무도 안 계시니 결국 무대를 내려와야겠죠. 현실로 돌아가야겠죠. 이렇게 제 가짜 수상소감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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