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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온 Jun 03. 2018

나는 가출을 하기로 했다

스물 여덟에 온 성장통


회사가 쉬는 날이라 조금 일찍 서울집에 돌아왔다.

자취한지 1년이 되어간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제외하곤 매주 서울집에서 주말을 보냈다.


- 금요일 밤엔 퇴근을 하고 집에 오도록 하여라. 도착 시간은 카톡으로 남겨놓고.

- 제가 원할 때 올거예요


말은 저렇게 해놓고서 나는 나를 보고 싶어할 엄마 아빠가 신경쓰여 매주 주말을 집에서 보낸다.

딱히 하는 일은 없다. 금요일 밤엔 이마트에서 혼자 와인 한 병을 사다가 하트 시그널을 보고 약속 없는 주말엔 집 앞 스타벅스에 나가 사진 편집을 하거나 글을 쓴다.


“어? 왠일이고 아이고 아빠가 밥을 못해놨는데”


이틀 내내 밤을 샌지라 말을 할 힘 조차 없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엔 집에 가면 엄마 밥을 먹는 행복이 있었다. 살림을 아빠가 맡게 되면서 늘 밥상은 같다.


계란 말이.

올리브유를 얼마나 부었는지 한입 베어물면 분명 완숙의 계란 말이인데 촉촉하다.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챙겨먹을게요.”


힘 없는 목소리로 나는 대답한다.

부모님은 굴하지 않는다. 뭐도 있고 뭐도 있고.

아빠가 밥 먹고 이마트 가서 사다 놓을게 뭐 먹고 싶은거 있니.


“없다니까요.”


점점 목소리가 높아진다.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웠다. 방이라도 컴컴했으면 그냥 쓰러져 잘텐데 초여름의 여섯시는 한낮처럼 밝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누군가 물었다.

- 자취하니 뭐가 제일 좋아?


부모님은 자녀를 향한 관심을 마치 통제를 하듯 표현했다.

섹스는 드러내놓고 이야기 하면 안된다고 교육 받으면서 자랐다. 남자친구와의 여행은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예쁜 외모보다 더 매력포인트가 된다는 ‘자취하는 20대 싱글녀’가 되었다.


자취를 해서 좋은 점은 단 한가지였다. 밤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되거나 애인과 집에서 알콩달콩 놀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게 큰 이슈가 아니었다.


나의 모든 행동에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요거트와 바나나로 끼니를 때우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나는 부엌에 부모님은 안방에. 냉장고 문 여는 소리 하나만으로도 부모님의 말씀이 성능 좋은 모터를 달고 부엌까지 쫓아온다.


- 냉장고에 요거트 있어

- 요거트에 꿀을 넣어 먹으면 맛있어

- 꿀은 찬장에 있고

- 필요한거 있으면 사다줄까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요거트 하나도 내 맘대로 조용히 먹을 수 없는 내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부모님은 나를 생각하시는 거다. 애가 여기서 화를 낼 이유는 없다.


- 아이고 아빠랑 거리를 둔다더니 아예 연을 끊으시겠어.

- 깔깔깔


아빠의 비아냥 거리는 말 소리와 거기에 호응하는 엄마의 웃음 소리에 태어나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내가 내 마음대로 그냥 요거트 하나 먹는다는데 왜 내 행동 하나 하나 통제하려고 해. 나 진짜 집에 오기 싫어.”


울면서 뭐 먹는거 딱 질색인데.

짓이겨진 바나나가 마치 내 마음인듯 희고 꾸덕한 요거트를 부어 상처난 단면이 눈에 띄지 않도록 마구 휘저었다.

우울할 때 보면 좋다는 미드를 틀었더니 저질스러운 성적 농담은 나를 더 화나게했다.


아무래도 여기를 나가야 할 때가 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에게 도덕 강박이 있음을 알게 된 이후 부모님에게 퉁명스럽게 대하는게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나도 가족 안에서 나 스스로의 목소리을 낼 수 있는 사람을 받아들이고 있다. 나를 희생하면서 부모님의 기쁨이 되어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은 부모님이 행복해 하면, 언니가 기뻐하면 그것이 내 기쁨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행복은 내 안에서부터 찾아야 하는 것임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스물 여덟에 가출보다는 출가가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부로 가출하기로 했다. 내 삶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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