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두번째 방문 후
첫번째 정신과를 다녀온 날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당장의 나의 불안이 사라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나의 성격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들뜬 마음으로 동료는 물론이고 부모님께도 정신과 방문기를 공유했다.
아직 부모님 세대에서는 ‘정신과’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가 썩 유쾌하지는 않으신지 비보험으로 하면 얼마 정도 하려나? 물으셨다.
“정신과는 더 나아지려고 하기 때문에 가는 거예요.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거고 그것을 이상하게 보면 그 사람들이 이상한거예요.”
기세등등한 개선장군처럼 나의 정신과 진료 후기를 이곳 저곳에 공유했던 첫 날과 다르게 두번째 진료 후엔 누구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최근에도 불안을 자주 느껴요?”
“네. 평소와 비슷한 것 같아요. 아! 정말 자주 느끼는 건데 너무 익숙해져서 말씀 안 드린게 있어요.”
단순히 높은 건물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 이외에 아주 예전부터 자주 상상한 것이 있다.
좁은 골목길에 차가 내 옆으로 바짝 붙어 지나가면 혹시나 바퀴에 발이 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특히 헬게이트 같은 강남역 근처 골목길에서는 지나가려는 자와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려는 자의 묘한 기싸움이 존재한다.
“혹시 그런 상상이 실제 이미지로 떠오르나요? 아니면 뭐가 떨어질까봐 겁먹고 지나다니지 않는다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어때요?”
“명확한 이미지로 떠오르진 않아요. 그냥 기분이 그래요. 꿈을 꾸고 나면 아 그런 꿈을 꿨지 하는 것 처럼요. 바람이 부는 날이라... 사실 한국에선 바람이 불어봤자 사람이 날아갈 정도는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안 무서워요.”
실제로 내가 잠시 살았던 섬 나라는 태풍이 오면 실제로 사람과 오토바이가 날아갔다. 간판이나 교통 신호등은 예삿일이고 문이 구겨진다거나 창문이 깨지는 일이 허다해서 한국의 태풍은 ‘아 여름이네?’ 싶었다.
아무리 이야기 해도 선생님은 원인을 찾으실 수 없으셨는지 계속 갸우뚱 거리셨다.
뭐라도 이야기 하고 싶어서 첫번째 상담 후기를 가족과 공유했던 이야기를 했다.
“가족 분위기가 정말 좋다. 언니도 있었어요?”
“언니는 그 자리엔 없었어요. 그치만 따로 이야기 했어요. 친하거든요.”
“언니는 어떤 사람이예요?”
어린 시절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묘사했던 언니의 모습은 한결 같았다. ‘우리 언니는 예쁘고 날씬하고 공부도 정말 잘해요. 그런데 싸가지가 없어요.’
나의 언니 이야기에서 무언가 발견하신 것처럼 계속해서 언니 이야기를 물으셨다.
엄마의 이목구비와 아빠의 체형. 그리고 우수한 유전자가 몰빵이라도 된듯 언니는 동네에서 유명한 얼짱이자 전교 1등이었다. (심지어 얼짱의 영예는 대학에서도 이어져 모 대학 얼짱이라고 치면 언니가 검색에 걸리기까지 했다.)
언니는 공부를 잘하고 이기적인 맏이었다면 나는 공부는 좀 못했지만 부모님에게 한 번도 대든적 없는 착하고 밝고 상냥한 재주 많은 딸이었다.
“언니랑 싸운 적 없었어요?”
“많죠.”
“보통 왜 싸워요?”
“음... 직접적으로 싸우진 않고 엄마한테 언니 흉을 봐요.”
선생님은 그제서야 내가 왜 이 ‘굿걸 컴플렉스’가 생겼는지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sibling rival’
우리는 서로 다른 열등감을 가지고 커온 것이다.
언니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배려심. 온화한 성격이기에 나는 그것을 더 많이 가지려고 애썼고 그렇게 커온 세월은 내가 타인에게 베풀고 좋은 에너지를 주지 않으면 스트레스 받게 만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계속해서 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끄집어 내게 하셨을 때, 나는 언니의 흉을 보는 것이 괴로워 울음을 터트렸다.
사람은 누구나 사회적인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그 가면의 모습과 나의 속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아주 꼭꼭 숨겨 놓을 수도 있는데 아주 오래도록 속마음을 숨기면 결국 무너져 버리는 경우가 많다.
누구에게나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나는 ‘타인이 나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서 많은 불안 요소가 생기는 거다.
속 시원한 해결책도 정답도 없이 상담이 끝났다.
언니를 미워한 적이 없는데 갑자기 미워해야 하나 라는 생각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회사로 돌아와 모든 상담 내용을 심리학자 친구에게 공유했다. 망연자실하고 해답 없는 문제를 맞닥뜨린 것처럼 마치 지금까지의 삶이 부정 당한 기분이라고 (착하고 싶은 그게 왜 나쁜거야! 억울했다.) 이야기하니 친구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특히 선생님이 ‘삶을 정말 어렵게 사네요’ 라는 말에 큰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가?
이번 상담은 계속해서 날 울게 만들었고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지도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에 잔뜩 구겨서 책상 서랍 구석에 숨겨둔 나의 치부를 살살 긁어서 꺼낸 것 같았다.
두번의 상담을 마치고 나니 적어도 나의 불안이 어디에서 오는 지는 알게 되었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라는 의문이 시작되었다.
과연 내가 느낀 행복은 가짜의 행복일까? 나는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미소 짓는 나의 모습이 참 좋은데 이런걸 버려야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걸까?
인생이란 해답을 찾는 과정이라던데 이거 어째 내가 무의식으로 꼬아 놓은 실타래를 손톱이 나갈 정도로 힘을 줘 풀어보려는 시도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엉켜버린 실도 결국은 풀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손끝이 아파와도 어떤 일이든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뤄낸다.
이 과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언젠가 홀가분해질 그 날을 상상하며 계속해서 나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