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온 May 30. 2021

평안한 새벽을 기도하며


하루 일과를 마치기 전 습관적으로 인스타그램 스크롤을 움직이다 부고를 봤다.

암 투병 중이었던 뷰티 유튜버 새벽이 세상을 달리했다는 글이 옮겨지고 옮겨져 전혀 연관성 없는 나에게까지 떴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지만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멀리했다.


몇 년전 친구가 나에게 '너 누구 뷰티 유튜버 닮았어'라고 말하는 덕에 알게된 새벽. 예뻤고 발랄했고 귀여웠다. 그때는 구독자가 적은 편이라서 악플도 없었고 자기가 좋아서 컨텐츠 만드는게 눈에 보여서 보는 내가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그녀의 매력을 알아본 사람들이 많아져 채널이 커졌고 내가 구독하는 채널들 중에서 유독 새벽의 채널에서 악플이 많이 보였다.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구독을 끊었다. 새벽이 미워져서 끊은게 아니라 그녀의 영상을 보는 것은 즐겁지만 거기에서 파생된 시끄러운 이야기들이 싫었다. 조금이라도 내 마음의 평화로운 호수에 돌이 날아들것 같으면 펜스를 쳐버리는데 이 성격이 이 때도 발휘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녀의 암투병 영상들을 몇편 보게되었고 가족을 간병하는 나로서는 아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그저 그 상황에서도 저렇게 밝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최선의 시간을 다하는 것이 참 보기 좋았다. 물론 꾸준히 챙겨보진 않았는데 혼자 있을 땐 한없이 조용한 나에게 새벽의 채널은 지나치게 밝았던것 같다. 그저 열심히 지내는 사람이구나. 친구들이 좋아요를 누르기에 나한테 둘러보기에 뜨는 정도로 간간히 관심을 주었는데 오늘 그녀의 영상 두 편을 한번도 쉬지 않고 계속 봤다. 심지어 끝나지 않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내가 왜 우울하지? 왜 우울한지 몰라서 어떻게 극복해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너무 행복하다.


영상 속에서 새벽이 하는 말이 너무 무슨 말인지 잘 알 것 같았다. 어머니와 함께 산책을 가는 길이었나 행복하다고 연신 말하는데 나도 행복하다는 말을 너무 자주하기에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다. 모든 것 순간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것. 아픈 순간에도 드립을 쳐서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들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묘사하는 말들에 괜히 내 자신이 투영되어 한참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와이에 온 뒤로 아프고 싶은 것인지 정말 아픈 것인지 컨디션이 제멋대로였다. 술을 예전처럼 마시는 것도 아니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닌데 하루는 너무 어지럽다가 하루는 두통이 심하다가 이랬다. 어젠 몸을 움직일 힘도 없어서 하이킹도 취소했는데 저녁 되니 진토닉을 만들어 마실 만큼 살아나서 놀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골프를 치고 쇼핑까지 했는데 저녁이 되서 심한 두통에 결국 진통제 하나를 꺼내먹고 몸에 중심이 잡히지 않는 혈압이 낮아지는 기분에 미약한 떨림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타이핑을 하고 있다.

마음이 육체에 지배된 건지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건지 모르겠지만 최근 컨디션 난조를 겪으면서 '글을 써보라'라는 조언을 들었는데 글을 쓰고 자야 그나마 편히 자지 않을까 싶어 이렇게 마음을 풀어내고있다. 사실 나도 내가 무서운거다. 아플까봐. 그나마 발전했다고 느끼는건 예전엔 '내가 아프면 엄마가 더 슬프고 가족들이 좌절하기 때문에 안돼'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는데 적어도 지금은 '아 아프면 내 인생이 아쉬워서 안되지' 정도로 바뀐것 같다. 대단한 발전이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건 하늘이 정하는 일이고 우리는 그저 엄청난 우주에 아주 보이지도 않는 작은 우주먼지만하다라고 늘 생각해오면서도 그놈의 우주먼지가 스스로 느끼는 무게는 어찌나 이렇게 강력할까 생각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하늘의 뜻이다 그러니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 이것만 생각하다가도 마치 들숨과 날숨이 바뀌는 순간의 멈춤처럼 그 사이사이에 잡념들이 들어와서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애쓴다. 태어나기를 이렇게 태어났기에 어쩔수 없지 하지만 그럼에도 가끔 다가오는 현실이 버겁고 무서울 때가 있다.


내가 뭐라고, 내가 그녀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그녀에게 추모의 글을 쓸 수 있을까.

그저 혹여나 이 글을 쓰는 내 마음이 공기로 흩어져 그녀가 있는 곳에 닿는다면 마음으로 전해주고 싶다.


당신의 모든 이야기들을 그 힘들고 슬픈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이야기 하려고 해줘서 고맙다고.

그 노력 덕분에 분명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용기를 얻었을 거라고.

엄마 아빠에게 힘들다는 말도 안하다가 신경계 부작용으로 인해 처음으로 살려달라는 말을 했다고 했는데 잘했다고. 그런 말을 참았기에 행복했었을테니까 그냥 잘한거라고. 말을 한것도 말을 참은것도 다 잘했다고.

우리는 태어나고 숨을 쉬고 말하고 그 모든걸 하는 자체로, 아니 존재하는 자체로 참 잘한거라고.

잘 살다가 가는거라고. 그러니 다음 생에서 먼저 사랑하는 이들을 기다려주라고.

아프고 힘든 와중에도 만들어놓은 컨텐츠들은 앞으로도 수많은 아픈 사람들을 위로 할거고

오랜시간 수없이 쌓인 영상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워할 때 언제든 울고 웃는 스스로를 볼 수 있음에 행운이라 여길거라고. 그래서 사랑하는 이들은 영상을 보면서 함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할거라고.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사는게 참 쉬운일이 아니라는걸 오늘도 느낀다.

말로는 참 쉽게 내뱉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런데 정말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무너진다는 걸 깨달았다. 무너지다가 나아지다가 이렇게 다양한 모습으로 깨져가면서 나의 오늘이라는 조각들이 모여 내 삶이 이루어지겠지. 그저 흐르는 시간에 잘 올라타서 여유롭게 파도를 즐길 수 있도록만 노력하길.


+

글을 쓰니 하나 좋은 건 있네. 슬픔이 몰려오거나 몸이 아프거나 하면 자연스럽게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지는데 글을 쓰니 그런 기대고 싶은 마음이 다시 사라져 좋다. 글로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어서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젠 만으로도 서른이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