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좋아해
드라마에 나오는 케이스들은 낫거나 낫지 않아 죽거나 둘 중이니까 희귀난치병을 가진 엄마를 둔 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버겁게 느껴졌다. 특히나 엄마처럼 아무말도 못하고 움직일수도 없고 온갖 기계를 꽂고 있는 흉부외과 환자가 나온 3회를 본 뒤에는 감정이 폭발해 오랜만에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드라마에도 나오듯이 병원에서의 생활은 또 하나의 사회같았다.
엄마가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그리고 마침내 일반병실로 옮기신 후에 엄마를 보러 처음 간 날이 생각이 났다. 병실 문을 열었는데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거라는 생각에 일단 뒤돌아섰지만 휴지를 찾을 수가 없고 옷으로 닦으면 눈치 빠른 엄마가 더 슬퍼할까봐 책가방 문을 열어 눈물을 후두둑 후두둑 떨어뜨렸다.
분명 지난번에 본 엄마는 말도 할 수 있었는데 움직일수 있었는데..... 이제 정말 눈만 깜빡거릴 수 밖에 없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소아중환자실 보호자 엄마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서로 반찬을 챙겨와 나눠먹고 서로 일에 기뻐해주는 에피소드들. 드라마 보기 직전 아빠에게 통화를 했다. 자가격리를 하다보니 오늘이 주말인지도 모르고 조금 늦게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고 아빠도 누워계셨는데 그 사이 다른 침대의 보호자가 아빠에게 와서 빵 하나를 주고 가셨다. '이것 밖에 없어서 죄송해요'라는 말이 들리고 아빠가 웃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시는게 화면으로 보였다. 드라마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진 않지만 적어도 뭔가를 먹을 때면 꼭 서로를 챙긴다.
같은 보호자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참 신경을 많이 써준다. (물론 그러지 않은 분들도 정말 많지만)
다음 날 병동을 옮겨야 하는데 엄마의 열은 떨어지지 않고 엄마는 자면서 꿈을 꾸는건지 불안해보였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는 나는 현기증이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그 새벽에 엄마의 소변통을 갈아주시던 간호조무사님이 나를 보더니 말씀하셨다.
"늘 병원에 있는 것 같은데 잠은 자요? 밥은 먹어요?"
"네 교대해서 있는거라 괜찮아요"
"엄마가 참 예쁘세요. 아프시기 전엔 더 예쁘셨겠어요"
"맞아요. 엄마 지금도 너무 예쁘죠"
"어머니 인지도 좋으시고 잘 웃으시고 얼른 나아서 금방 일상생활 하실거예요."
아마 새벽 세시쯤이었던 것 같은데 마지막 말에 눈물이 왈칵 차올라서 목례로 대신했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많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차라리 죽고 사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기나긴 싸움이 되지 않게 그랬으면 좋겠다.
엄마가 대학병원에 오래 계셨을 땐 추운 겨울이었는데 집에서 대학병원까지는 버스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추운 날 늘 아빠는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집에 가는 길엔 꼭 버스를 탔다. 버스 타러 가는 내내 엉엉 울며 이런 생각을 자주 했다.
차라리 내가 팔 한쪽을 잘라 엄마를 낫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팔 없이 사는게 무서워서 정말 자신 있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누가 내 팔 잘라간다고 한적도 없는데 말이야.
그렇게 겨울과 봄을 보내고 이러다 내가 죽겠다 싶어 미국을 잠시 다녀오기로 했다.
다녀오기 직전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물었다.
"어떤 모습이 되길 원해요?"
"저는 캔디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그 캔디요"
"지금 제가 보기엔 이미 충분히 캔디같은데요."
그동안 나의 슬픔을 마음껏 말하지 못했던 이유가 나의 슬픔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서 사람들이 날 떠날까 무서워했던 것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늘 밝고 강한 에너지 있는 나의 모습을 나 스스로 좋아했기에 이런 슬픈 내 모습이 싫어서 사람들도 싫어할거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슬픈 모든 감정을 부정하고 나쁜 감정이라 여기고 홀대했다.
그래서 그렇게 좋아하던 슬기로운 의사생활도 자꾸만 보기 힘들어하고 나를 부정적인 감정에 들게하는 어떠한 트리거도 다 차단하고 싶었던 거다. 부러워 하는 감정, 슬픈 감정, 화나는 감정, 그런거 다 자연스러운 건데 인정하지 않고 기쁘고 밝은 나만 보여주려고 하는거.
돌이켜 보니 내가 유일하게 힘듦을 토로했던 상대가 있었다. 나의 가장 든든한 보호자이자 친구인 엄마 아빠가 더이상 나를 보호해줄 힘이 없다고 느끼자 자연스럽게 보호받고 싶은 대상을 연인으로 옮겨갔던것 같다.
그런데 어느날 그도 힘들었는지 나에게 말했다.
엄마가 아픈건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왜 힘든 쪽으로만 생각하냐고. 불행은 자신의 마음에서 결정되는거다. 모든 불행은 스스로 만들어내는거니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건 어때.
헤어진 후에 그를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말했다. '너가 우는게 너무 싫었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는것 같아서 그래서 우는 널 보는게 너무 힘들었어.' 돌이켜보면 그와 다퉈서 운적은 없었다. 그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잘못을 했을 때도 나는 울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런데 늘 엄마에 관해 감정이 흔들리면 늘 숨도 못쉬게 그에게 안겨서 울었다.
그와 헤어진 직후에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엄마가 안아파서 내가 슬프지 않았으면 그가 날 떠나지 않았을까?' 그래서인지 슬픈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감정을 드러내면 나를 떠날까봐 무서워진 것도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감정을 드러내는게 무서워진다. 내 슬픈 감정에 혹여나 그 사람도 슬프거나 힘들어질까봐. 그래서 나랑 더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질까봐.
올해 초에 너무 많이 울어서 정말 한동안 울음을 터트린적이 없었는데 오랜만에 소리내어 울다 와인 한잔을 마시면서 이렇게 글을 쓰니 말랑말랑한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다.
마음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빌었는데 막상 딱딱해지니 나의 소중한 모습 하나를 잃은 기분이었다. 장마비 덕분인지 그 굳은 마음의 틈새로 물기가 들어가 다시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다시 해가 나면 틈은 더 좁아지고 마음은 더 단단해지겠지.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 처럼. 마음이 말랑해졌다가 굳었다가 그렇게 반복되면 지금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이미 과거가 된 이후일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