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찾아 떠났던, 다사다난한 나의 20대를 돌아보며 쓴 이야기
외항사를 위한 영어학원 1년 치 등록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던 나는 오로지 영어만을 위한 1년의 시간을 갖긴 어려웠다. 매달 월세와 생활비라는 빠듯함이 옥죄어 왔기 때문이다. 저녁에는 호프집 알바로 돈을 벌었고, 아침에는 영어 수업을 들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된 지 어느새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서울엔 수많은 학원들이 있어서 영어학원 고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지만, 나를 잘 알았기에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있었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게으른 성격 때문에 ‘스파르타’라는 단어에 눈이 갔고, 단계별로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곳에 나를 던지기로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스터디는 꼭 해야 했다. 선생님 대신에 조교 한 분이 돌아다니며 체크하기 때문이다. 매시간 주어지는 과제도 있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틈이 없었다. 아침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고 학원 친구들과 어울려 점심을 먹고 스터디를 하면 금세 시간은 4시를 향해 있었다. 온종일 영어와 가까워지는 시기였다.
제각각 다른 성향들의 사람들 6명이 모여 하나의 조가 이루어진다. 그룹으로 하는 과제들이 많아 나 혼자서가 아닌, 영어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다. 그 전날 일어났던 일들이나 나의 감정 표현 같은 영어 일기를 2명씩 짝지어 각 파트너에게 영어로 이야기하는 시간도 따로 가졌다. 써놨던 내용을 힐끔 봐도 되긴 하지만, 영어 공부를 위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책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은 궁금한 내용을 질문할 수도 있다. 그러면 바로 영어로 대답하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세세하게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지만 동시에 긴장되기도 했다.
그 안에서도 나와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항공서비스학과를 처음부터 나와서 영어를 좀 더 보충하기 위해 학원을 다닌 사람들도 있었고, 영어의 매력에 빠져서 외항사를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같은 공간에서 하하 호호 웃었지만 선의의 경쟁자가 더러 있었다. 그래도 모집공고나 면접 스터디 같은 것도 공유하기도 하고 서로 동기부여도 되며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며 아침부터 한나절 공부하고 저녁에는 알바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다. 꿈을 좇으러 서울에 왔지만 중간중간 현타가 오는 시점도 많았고, 체력도 바닥이었다. 영어학원에 있는 과정들을 마무리해 갔을 땐 온전히 영어만 신경을 쓸 수 없었고 그렇게 흐지부지되었다. 나에게서 점차 영어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언어라는 게 꾸준히 할 때는 계단식으로 느리게 성장하지만, 조금이라도 사용하지 않으면 공부하기 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조금은 겁이 났다.
쑥스러움이 많은 나에게 한 달은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매일매일 영어와 부딪히는 나날을 보내니 학생 때로 돌아가는 듯했고 어쩌면 도전의 연속이었다. 한 달의 한번, 마지막 주, 영어팝송 하나를 정해 그 노래에 맞춰 같이 수업 듣는 친구들 앞에서 춤과 함께 노래를 불러야 했다. 나 혼자가 아닌 그룹 활동이라 다행이었다. 한 명의 이탈도 없이 의상까지 맞추며 최선을 다했다. 맘마미아 ost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가사를 들으면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