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휴가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걸 배운 시간

by 권명숙

마음속 방황과 달리 공방은 잘 되기 시작했다.

어차피 내가 시작한 일이니 잘 맞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달렸다.

그 노력을 알아주듯 수업이 이어졌다.

특히 출강 수업이 많아지면서 수입도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포항에 있는 대기업 계열사에서 온 전화였다.

세정제 사업을 추진 중인데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연락이었다.

공방도 잘 되는데 굳이 회사생활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사업이 잘 되면 공장 책임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자꾸만 맴돌았다.

'내가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가겠지?' 그걸 지켜볼 자신이 없었다.

큰맘 먹고 이력서를 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약 20년 만에 회사생활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일단 계약직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공방은 계속 유지했다.

연차 휴가를 이용해 출강 수업을 나갔다.

수업준비는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했다.

몸은 두배로 바빠졌지만,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선보여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일과 쉼이 확실히 구분 지어져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중 회사 근무시간에 변동이 생겼다.

이주일에 한 번은 금, 토, 일 3일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마침 선거일과 겹쳐 목요일부터 사흘을 쉬게 됐다.

모처럼 생긴 긴 휴가였다.


그냥 보내긴 아쉬워 혼자 여행을 계획했다.

단 한 번도 혼자 가본 적은 없다.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어본 적도 없는 내가

무슨 끌림에서인지 제주로 떠나게 됐다.

제주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건 자신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제일 먼저 찾아간 책방은 오래된 가정집의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수많은 책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듯 놓여 있었고, 벽면은 운영자의 필사로 가득했다.

책의 옆면에는 마음에 남은 문장들에 색색의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장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작고 아담한 그곳에서 천천히 쉬었다 가라고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눈물이 핑 돌만큼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한 울림이 차 올랐다.


밖으로 나와 바람소리와 먼바다 냄새가 섞인 골목에서

나는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2박 3일 내내 이런 내 마음을 글로 옮겼다.

글을 쓰는 동안 붕 떠 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순간을 몇 번이나 마주했다.


그것이 이번 여행이 내게 남긴 가장 분명한 감각이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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