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

2024년 7월 21일 어느 오후

by 센테

잘 살지 못하면 안 될 것 같은 요즘이다. 인터넷 어디에선가 ‘갓생’이라는 말이 탄생하고 난 뒤로 항상 마라톤처럼 끊임없이 달리고만 있어야 하며, 그렇지 못하면 잘살긴 글러버린 낙오자로 암암리에 찍히는 느낌이 든다. 심지어 유튜브가 등장한 이후, 여가나 취미생활조차 물질적 이득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만 할 것 같아 마음 편히 즐길 수가 없다. 책을 읽으면 교훈을, 영상을 찍으면 조회수를 얻으며 항상 성장하는 과정에 있어야만 한다는 게 시간이 갈수록 당연해져 간다. 그런 기조 속에서 이미 가진 졸업장을 버리고 또 새로운 학교에 입학한 나는 가끔 남들보다 일곱 발자국 정돈 늦은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고민을 하는 게 나뿐만은 아닌지, 요즘은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근황 삼아 직장 얘기를 꺼냈다가도 금방 화제를 바꿔 실없는 얘기를 나눈다.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얘기해봤자 결론은 비슷하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삶을 살아내기 바쁘고 낭만이나 여가는 사치로 여기며 하루하루 늙어가기만 하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크지 않을 거라 다짐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정신 차려보니 내가 그러고 있다. 아마 무작정 글을 쓰겠다고 대학에 들어온 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는 게 무겁거나 시시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로 어떻게 벌어먹을 거냐는 얘기를 들으면 무시하는 능력도 생겼다. 예전엔 누군가 나이를 언급하며 내가 한참 늦었다고 얘기하면 화를 내기도 했는데 이제 그런 소린 귀에 들여놓지도 않는다. 빨리빨리를 원하는 풍조 속에서 청춘이니 젊음이니를 느껴볼 새도 없이 빨리 닳아버린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학기 내내 이미 첫 발부터 다르게 내딛어버린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고민을 했다. 그래도 죽을 때 ‘잘 살았다’라고 말하는 삶을 살고 싶어서 다시 진로를 잡고 학교에 들어온 것까지는 좋은데, 그 이후는? 무조건 작가가 될 건지, 회사에 취업은 할 건지,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거고 취업하려면 또 뭐가 필요하고, 어디까지는 타협해야 하고 어디까지는 밀고 나가야 하는지, 만약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다음엔 또 뭐가 있는 건지. 다양한 가능성이 되려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점점 더 늦어져 갈 텐데 이렇게 생각만 하고 있어도 될까, 생각하느라 또 시간을 허비했다. 그렇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구석이 있는 건 아니었다. 부모님은 나와 너무 다른 시대를 살아왔고 친구들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으므로 답을 얻고자 한다면 새로운 구석을 또 찾아야 하는데 그 방법은 또. 그렇게 보이지 않는 것에 쫓겨 살다 보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다.


그러다 요 며칠, 변덕스러운 장마 때문에 발이 묶여있었다. 해야할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멍하니 시간을 보내 보니 뭐든 빠르게, 남들처럼 해내야 할 것 같다는 압박에 괜히 머리 굴리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냥 흘려보냈는가가 체감됐다. 벌써 인생 망했다는 듯 굴던 모든 생각이 바보 같아졌다. 잘해보려다 너무 앞서가는 바람에 가는 길목에 놓여있던 것들을 전부 놓치고 엉뚱하게 산 느낌이다. 흘러가는 대로 지나왔어도 될 뻔했는데, 사실 재촉해서 얻은 건 아무것도 없는데.


그렇게 집에 갇혀있는 동안 생각이 정리됐다. 어차피 잘 모르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면 흐르는 대로 살자. 학교의 장점이 뭔가. 다니는 것만으로도 시간 따라 흘러가 준다는 거니까, 당장 예측할 수 없는 일을 잡으려 애쓰기보단 그냥 되는 대로 살아보자.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생길 때까지라도, 하고.